아무 계획이 없어도 괜찮아, 함께라면!!
즉흥적이고 무모한 실수로 시작하게 된 싱가포르 한달살기, 어느덧 28일 차다.
“엄마”니까, 매일 아이들과 붙어 있는 “엄마”니까, 어디에 있건 다를 게 없다고, “고작 1달”이라고, 생각하고 호기롭게 출발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막상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 덩그러니 아이들과 놓이게 되는 것이 현실이 되니, 두려움의 폭풍이 몰아쳤었다. 대비 안 하고 마주친 갑작스런 폭풍에 “엄마”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31일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멀게 느껴져 첫날부터 울고, 몇 날 며칠을 두려움에 몸서리치며 밤새웠는데, 어느덧 시간이 훌쩍 흘러 이제 4일 후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
아이들 미소가 보이고, 어렴풋이 “엄마” 가 된 듯한 지금은 하루하루가 너무 짧게 느껴진다. 순간순간이 더욱 소중하고 아쉽다.
오늘은 뭐할까?
다시 오지 않을 오늘, 소중한 시간인 만큼 아이들 마음에 온전히 맞추고 싶다.
6살, 7살 두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떠난 무모했던 31일간의 모험을 회상하면 “즐거움”이 가장 먼저 떠오르길 바라며, 물었다.
루지!!
그래!! 그럼 루지 타러 가야지!!
비가 부슬부슬 아직 내리고 있지만, 루지 타는 것을 막을 정도는 아니기에, 루지를 위해, 망설임 없이 센토사섬으로 향했다.
이번 한달살이 기간 중 4번째 센토사섬 방문이지만 버스 타고 가는 건 처음이다.
처음 센토사섬 가던 날은 정말 긴장을 많이 했다. 첫 번째 게이랑로드에 있던 숙소 바로 앞에는 Aljunied MRT 역이 있었는데,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혹여나 길을 잃을 까 봐 핸드폰 지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아이들 얼굴을 보기는커녕 아이들이 하는 소리조차 전혀 듣지 못했었다. 오늘은 MRT도 아니고 안내방송도 안 나오는 버스타고 나오는 데 마음이 한 결 가볍습니다. 지금 머무는 이스트코스트에선 MRT 역이 없어 버스 아니면 택시를 타야 하는데, 이제는 길 잃어버리는 순간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기에 전처럼 절망감이 들거나 두려움이 앞서지 않는다. 함께한다면 어디든 그 시간이 충분히 가치 있다는 진실을 몸소 느껴서 그런가 보다.
요 며칠 오전 내 햇빛 한 줄기 보이지 않는 캄캄함 하늘에서 무섭게 비가 쏟아졌었다. 오늘 아침도 잠깐 갰다가 비가 다시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하늘을 보니 곧 쏟아부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구름이 잔뜩 끼었다. 그래서 얼른 비가 쏟아지기 전에 루지를 내리 연속 4번 탔다.
루지!! 타면 탈수록 재미있다.
Once is never enough!!
루지 슬로건 볼 때마다 절로 고개가 끄떡여진다.
오늘까지 11번을 탔지만, 여전히 루지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아이들의 아쉬움 가득한 발걸음 옮겨 해변으로 향했다.
오늘은 팔라완 비치 분수 놀이터가 ‘청소 중’이라고 이용을 제한해 놓았다. 아쉽다!! 그래도 아이들은 금세 상황 파악하고 모래 사변으로 가서, 일회용 컵만 들고도 한 참 놀아준다.
몸에 모래가 묻는 것이 어색해 신발을 신고, 혹시나 모래가 신발에 들어갈까 조심조심 걷던 아이들이었는데, 이제는 신발이 거추장스러운지 자연스럽게 신발을 벗고 있다. 덕분에 신발의 행방을 한 참 찾았지만, 자유스러워 보이는 맨발을 보니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기대했던 분수 놀이터를 이용하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일회용 컵으로 금세 놀이를 만들어내며 한 참을 집중해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막연했지만 이곳으로 오고 싶어 했던 목적이 뭔지 느껴지는 것 같다. 아이들 덕분에 내가 해야 할 엄마의 모습이 ‘이거구나!’ 싶은 어렴풋한 깨달음을 얻는다.
모래 속에 스스로 몸을 묻기도 하고 해변에서 한 참 놀고 우리의 또 다른 목적을 위해 하버프로트 역으로 향했다.
음력설 전이다 보니 센토사섬에 소원나무가 설치되어 있다. 첫째는 주렁주렁 걸려있는 소원들을 보더니 메모지를 찾아 열심히 소원을 적는다. 둘째는 그런 언니를 유심히 보면서 배운 적도 없는 글자를 하나하나 따라 그린다.
이제 갈까 하는데, 머뭇머뭇 외국인 아저씨가 우리를 보며 걸어온다.
“ 왜?? 무슨 일이세요?”
“저, 괜찮으면 사진 좀 찍어주시겠어요?”
아저씨 옆으로 가족들로 보이는 일행이 있어서 그들과 단체 찍으시려나보다 생각하고, “네”하며 그 아저씨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저씨, 무릎을 꿇더니 우리 딸들 사이에서 포즈를 취한다. 무슨 상황인지 잠시 이해 못하고 바라보다, 얼떨결에 딸들과 아저씨 사진 찍었다. 아이들 너무 예쁘다며 한 동안 눈을 못 떼시는 모습이 좀 많이 당황스럽긴 했지만, 아이들을 귀엽게 봐주시는 감사한 마음 전하고 하버프론트역으로 향했다.
사실 저희가 오늘 이곳에 오면서 하고 싶은 게 또 하나 있었다.
바로 이거, 입은 옷 흠뻑 적시며 분수에서 노는 것이다. 지난번에 해변에서 가지고 온 옷을 이미 갈아입어서 분수를 보고도 맘껏 몸을 적시지 못했다. 그때 갈아 신은 운동화를 안타깝게 바라보다 못 참고, 분수 사이사이를 뛰어다녔는데, 결국 신발이 젖었었다. 축축한 운동화를 신고 MRT 타고 집까지 오면서 찜찜해했기에, 오늘은 해변에서 놀고도 옷 갈아입지 않고 왔다. 그리고 맨발로 분수에 풍덩 몸을 맡겼다.
분수뿐만 아니라 조형물에도 아이들이 많다. 우리 아이들도 오르려고 하니, 먼저 올라가 있는 싱가포르 남자아이가 매너손을 내밀어준다. 손 내밀어준 싱가포르 오빠와 함께 놀다가, 다시 우리 아이들 둘이서 놀다가 또 다른 한국 언니를 만나서 같아 놀다가, 그렇게 아이들은 금세 어울려 논다.
놀다 보니 캄캄해졌다. 배도 고프고, 이제 슬슬 갈까 했는데, 너무나 아쉬워하는 표정이 마음에 걸려 아이들에게 “먹을 거 사 와서 여기서 더 놀까?”라고 물어보니 좋다며, 얼굴 표정이 더 밟아진다. 그리고 전에 여기 왔을 때 어두운 밤인데도, 사람들이 앉아서 센토사섬에서 나오는 빛이 비친 바다 풍경을 보며 앉아서 음식을 먹는 모습을 봤을 때 부러웠다며,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는 말도 해준다.
그래서 같이 먹을 거 사러 가자고 했더니, 아이들이 나보고 혼자 아무거나 사 오란닼 우리집 근처도 아니고, 둘이서만 잠깐 있어야 해서 잠시 망설였는데, 엄마인 나와 달리 아이들 표정에는 망설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걱정 말라며 다부진 표정으로 “천천히 다녀오세요”라는 말을 건네준다. 먹을 거 사러 같이 가겠다는 마음이 일절 보이지 않는닼 할 수 없이 몇 번이나 다른 곳에 절대 가지 말라고, 둘이서 떨어지지 말라고 당부하고 혼자 쇼핑몰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서도 진짜 아이들끼리 괜찮을지, 내가 없으면 잘 놀지 못할까 걱정돼서 계속 뒤돌아봤는데, 아이들은 놀이에 집중해서 나를 보지도 않는다. 더 이상 망설이는 것보다 가능한 아무거나 빨리 사오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뛰었다.
마음이 급한데, 쇼핑몰 안이 너무 넓다.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뛰어서 일단 내려왔는데, 마트 표시도 안 보이고, 결국 지도앱 켜서 찾아갔다. 몇 번 사 먹어 본 오븐 치킨이 보여서 바로 포장해서 계산하러 갔는데 줄이 너무 길다. 줄을 서서도 급한 마음에 발을 동동거렸다. 그런데 이런, 계산이 잘 못 됐다. 집에 와서 계산 잘 못 된 걸 몇 번 겪고 나선, 정신없더라도 바로바로 확인하고 있다. 바로 계산원에게 말했는데, 고객센터로 가야 한단다. 여기서 계산을 다시 할 수 없단다.
고객센터가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아서 그냥 갈까 했는데, 잘못된 것을 보고 그냥 가자기 이방인으로서 괜히 자격지심 같은 것도 느껴지고, 일단 고객센터 찾아 또 뛰었더. 물어 물어 지하에 있는 고객센터까지 갔는데 제가 계산이 잘 못됐다고 하는데 직원이 수긍을 안 한다. 계속 같은 말 해봤자 해결될 것 같지 않아 즉석조리 코너 가서 가격표 사진 찍어서 보여줬더니 그제야 알겠다며 정산을 해준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한 숨 쉬며 정산해 주는 모습에 순간 기분이 나빠지려 했는데, 지금 중요한 건, 계산을 올바르게 했고, 날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다는 거다. 누가 제 뒷 통수를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지만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발걸음을 돌려 아이들 있는 곳으로 또 뛰었다.
정신없이 뛰어 분수대 있는 곳 문을 열었다. 너무 캄캄해서 잘 안 보여 눈에 힘을 주고 바쁘게 고개 돌렸다.
앗 저기!! 첫째가 보여요.
그곳으로 한 걸음에 달려갔는데, 둘째가 안 보인디. 어디 있지?? 첫째 옆에 서서 아찔한 마음 접어두고 다시 바쁘게 두리번 가리는데, 문을 열고 둘째가 쇼핑몰 쪽에서 걸어 나뉸다. 제가 너무 늦어서 절 찾아 헤맸나 하는 생각도 들고, 미안한 마음으로 “어디 갔다 왔어?”라고 물었어요. 제 걱정스런 목소리에 아이가 주눅 들었는지, 아이가 어리둥절해하며, 작은 목소리로 “화장실”이라고 말한다. 내 걱정에 아이들에게 오히려 겁을 준 것 같다.
다행이다.
몰아치는 걱정의 마음을 쏟아내는 대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엄마가 아이들 걱정 안 할 수는 없겠지만, 지나친 걱정으로 오히려 아이들에게 기회를 뺏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또 드는 순간이다.
한달살이를 즉흥적으로 하게 되고, 별로 준비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해 가벼운 마음으로 한국에서 출발했다.준비하지 않은 마음은 싱가포르 공항에 도착한 순간, 갑작스럽게 두려움으로 채워졌었다. 그 두려움은 나 혼자 어른이니, 알아서 다 해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을 느끼게 했다. 그 부담에, 그 두려움에 갇혀 아이들을 제대로 봐주지 못하고,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하면서 늘 정신없어하고, 힘들어하기만 했는데, 이제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내게 “이렇게 사는 거야”라고 가르쳐 주는 것을 이제 조금이나마 보게 된 것 같다.
내일모레면 다시 원래 집으로 돌아간다. 늘 여행은 아쉬움이 남는 것 같지만,
이번 여행은 더더욱 끝이 안 왔으면 한다
직원이 있는 호텔이 아닌, 아무도 없는 빈집을 빌려하는 한달살이라 매일 밥과 빨래를 챙기고, 문단속도 해야 하고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여행은 익숙한 곳을 떠난다는 점에서 새로운 것 같다. 아무 기대를 미처 못했어도 얻어가는 게 많다. 여행, 한달살이 참 매력적인 것 같다.
신혼여행 갔을 때 현지 가이드를 해주신 분이 호주에서 박사 유학하다가 방학 때 한국으로 들어오는 길, 보루네오 섬에 들렸는데, 보루네오에서 느낀 감정, 깨달음이 좋아서 10년째 못 떠나고 계신다고 하셨었다. 다시 익숙한 곳, 예전의 곳으로 돌아가는 게 두렵다고 하셨었는데... 그 마음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단 한 달이었기에, 즉흥적인 시작으로 많이 부족했을 수도 있지만, 제가 못 보던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제가 가야 할 엄마의 길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돼서 싱가포르 한달살이를 마무리해야 하는 아쉬움이 크다. 아쉬움 마음, 소중한 시간에 대한 감사하고 벅찬 마음에 잠이 오지 않아, 밤새 아이들과 함께할 다른 곳을 찾아봤다.
아이들의 마음, 얼굴을 보게 해 준 이곳의 감동을 잊지 못할 것 것 같다.
어쩌면, 낯선 곳, 이곳에서의 한달살이가 제 인생, 엄마의 길을 깨닫는 충분한 경험, 기회인지도 모르겠닼 아이들 엄마로서, 참 감사하다. 한 번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한 경험이다.
Once is ever enou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