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세상에 나아갔어요.
이번 주 내내 일기예보는 뇌우다.
그래서 그런지 낮인데도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고 해가 사라져 어두컴컴하다.
어두컴컴하지만, 이른 아침 창문이 부서질 듯 세차게 내리던 비가 조금은 잦아들어서, 비가 다시 많이 오기 전에 빨리 해변에 가자고 집을 나왔다.
해변으로 가늘 길,
익숙하게 지나가던 쇼핑몰,
오늘은 잠시 멈춰 안으로 들어갔다. 딱히 쇼핑몰 안에서 뭘 사야 한다거나 뭘 봐야 한다는 목적이 있었던 것 아닌데, 뭔가에 끌리듯 그냥 안으로 들어가게 됐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쭉 올라가다 보니 앗!! 분수가 있다!!
아이들 표정이 밝아진다.
아이들의 환한 미소를 본 그 순간,
동시에 어느새 아이들은 물속에 있다.
넓은 공간에 우리 아이들 밖에 없다. 아이 둘이서 입은 옷 그대로 폭포 속에 들어갔다가, 허공에 물대포를 쏘기도 하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놀았다.
해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보슬보슬 비가 내리고, 세찬 바람이 불어오니, 아이들을 지켜보는 엄마는 턱이 덜덜 부딪힌다. 아이들은 온몸이 젖어 더 추울 텐데, 계속 논다.
턱을 부딪히며 추위를 참고 아이들을 한 참을 지켜보고 있으니 드디어 집에 가자고 한닼
이제야 추위가 느껴지는지 완전 한 겨울이라며, 손으로 몸을 부둥켜안고 오돌오돌 떨며 종종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단지 5분 거리인데 집이 엄청 멀게 느껴진다. 못 견디게 추워하면서도 아이들 입가에는웃음이 가시지 않는다.
겨우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나니,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단다. 이제 제법 익숙해진 동네인 것 같아 둘이 다녀오라고 했다. 만 6살, 7살 도도자매는 잠시 얘기하더니 둘이서 역할 분담을 한 듯 첫째는 제게 돈을 받아 지갑을 목에 걸고, 둘째는 집 열쇠를 목에 걸고 “다녀오겠습니다”하고 선뜻 집을 나선다. 제가 해보라고 하긴 했지만 선뜻 나설 줄 몰랐는데, 제법 씩씩하게 나서는 아이들 모습 보고도 잘 갔다 올지 걱정이 가시진 않는다.
이제 곧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따라갔다 올걸 그러지 못한 것에 뒤늦게 후회하고 있는 찰나, 열쇠로 문 여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든 봉지를 내미는 모습에서 본인들 스스로 얼마나 뿌듯해하는지 느껴진다.
영수증까지 챙겨 계산까지 야무지게 해서 잘 사 왔다. 오늘 아이들의 세상이 한 걸음 더 넓어진 것 같다.
이른 저녁 먹고 도서관 가서 책 보다가 스토리텔링 시간에 참여했다. 제법 진지하게 보고 듣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도서관 근처 마트에 용과 사러 가기로 했는데, 음력설 기념으로 꾸며놓은 길이 예쁘다. 아직 못 본 게 많은데 곧 이곳을 떠나야 한다니 골목골목 걸을 때 보는 풍경이 더욱 애틋하게 보인다.
용과, 아직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지만, 아이들에게 체험해주고 싶어서 미리 용과에 대해 찾아서 사진으로 보고 읽어보게 했다.
첫 한 입, 물컹하니 약간 싱겁다. 이 맛도 저 맛도 잘 느껴지지 않는 약한 맛에 아이들이 안 먹을까 봐 긴장하며, 아이들을 봤는데, 왠 걸, 아주 잘 먹는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용과의 좋은 점에 대해 미리 들어서 그런지 아이들에게 좋은 이미지가 생겼나 본다.
사온 용과 순식간에 다 먹고 또 사달래요.
아이들 아쉬워하는 표정이 느껴지지만, 더 이상 먹을 용과가 없어요.
이제 수영하러 가야죠.
아이들이 알아서 야무지게 준비운동을 하고 물에 들어갈 준비를 한다.
구름 가득해 해 한 번 느끼지 못한 날의 밤이 되니 더욱 쌀쌀하고 추웠지만, 아이들은 물놀이 시간이 즐거운가 보다.
무심코 사이트 구경하다 결제해버렸던 집이 사라지고, 다시 급하게 집 구하면서 다른 것은 다 상관없는데, 수영장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버리지 못했었다. 무모하게 시작한 한달살이라 뭐 특별히 정해놓은 일정은 없었지만, 낯선 곳이니 만큼 “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고, 더욱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아이들 모습을 보니 ‘수영장’ 조건을 버리지 않길 잘할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곳에 이사 온 이후 수영장에서 우리 아이들 외에 노는 사람을 못 봤다.
쳐다 보는 사람도 없지만, 조용히 30분 정도만 하고 집으로 올라왔다.
어떤 대상이 눈 앞에 분명히 있더라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다른 대상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매일 지나치다 보면, 익숙함에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보이더라도 그 가치 인식이 다를 수도 있다.
본인의 세계관에 맞춰 세상을 걸러내고 바라보다 보니, 다른 사람들을 통해 정보를 얻기보다는 각자의 지식, 경험 등에 따라 받아들인 정보를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자신의 믿음을 확인받으려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러한 습관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한다면, 세상을 좀 더 넓게 볼 수 있는 것 같다. 매일, 매 순간 그대로 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아이들과 무작정 시작한 싱가포르 27일 차(2017년 1월 25일), 이제는 정한 것이 있어도, 순간 보이는 것, 그때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것이 조금은 자연스러워졌다. 조금 더 엄마가 되고 있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