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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네 Feb 08. 2021

회사를 다녀야 하는 이유?

그냥 다닐 수 있을까...

죽겠구나, 곧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던 20살.

이대로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때, 이 세상에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컸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데, 이름은 커녕 누군가에게 뭔가 도움을 준 것이 있을까? 이 세상에서 어떤 역할이라도 한 게 있을까?’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컸다. 아쉬움이 컸기에 조금이나마 의미 있는 존재고 되고 싶은 욕심에 시민단체에서 무작정 봉사했다. 그리고 살아있는 한, 주변에 민폐 끼치지 말고 혼자 앞가림을 하기 위해 직업을 가져야겠다 생각했다.


입사할 때, 어떤 일을 하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저 ‘사람’으로서 열심히 하겠단 생각이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열심히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했다.

선배에게 일을 더 달라고 했을 때, “신입은 여기까지만 하면 돼”라고 했다. 그래서 점점 의욕이 사라진 건가?


이직을 한 것도 좀 더 오래, 그리고 좀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 바쁘게 일하고 있을 때 연필 깎아오라고 시킨 것이 놀라워 할 말을 잃고 쳐다보자 “너 일안 할 거야?”라는 소리를 들었다. 자욱한 담배연기에 코를 막고 들어갔다가 회의실에서 쫓겨났다. 의견을 말했다고, “싸가지 없는 가시내”라는 소리를 들었다. 아이 낳았다고 승진 못할 거란 얘기를 들었다.  


왜 회사를 다니는 거지?

왜 회사를 다녀야 하지?


배운 것을 써먹고 싶다고 생각한 게 잘 못 됐나 보다.

여자인게 문제인가 보다.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면, 박사를 하지 않았다면, 시키는 대로 연필을 깎아오고 마시라는 대로 술을 잘 먹었다면 회사를 다니는 이유를 생각하지 않아도 됐을까?


그들의 말처럼,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진짜 승진을 했을까?


김차장,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승진만 못하는 게 아니라, 아예 회사를 못 다녔을 거다. 박사도 진즉에 포기했을 거다. 아마도 웅크리고 앉아서 세상에 나가는 것을 피할 이유만 찾고 있었을 거다.


아이 엄마가 돼서, 힘들어도 더 버티고 끝까지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 나오게 한 아이를 생각하며, 김차장과 같은 딸들이 겪을지도 모를 상황에 힘이 되어 주기 위해 한 발자국이라도 더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리천장, 소수자로서의 위치를 대놓고 말하는 비겁한 상황을 그냥 피할 수 없었다. 딸들 엄마로서,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고자, 고민을 조금이라도 더 해봐야 한다는 책무감마저 들었다.


그런데 과연 지금, 이게 딸들에게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 아이들과 떨어져 원거리에서 혼자 회사를 다녀야 하는 건가?  


회사를 왜 다녀야 하지?

처음엔 분명 회사에 다니고 싶어 했던 것 같은데, “왜”인지 보다, “어떻게”, “무엇을” 할지 생각했던 것 같은데, 20년 차 김차장, “왜”를 생각한다. 그리고, 잘 모르겠다.


무엇 때문에 회사를 다녀야 하는 거지?

분명 회사에서 주는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이들과 떨어져야 할 만큼 필요한가?


술, 정말 맛없다.

아이 낳기 전처럼, 못 마시는 술을 마시고 싶진 않다.


아부, 진짜 못한다.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척 웃을 수 없다.


김차장, 과연 아이들과 떨어져 혼자 회사 다닐 수 있을까?

회사 왜 다니는 거지?

회사 왜 다녀야 하는 거지?


머리를 매일 빗겨주고, 숙제를 봐주고, 끼니를 챙겨주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김차장은 회사를 다니면 안 되는 건가?


아이 도시락을 직접 싸고 출근한 김차장이 문제인가? 아이 옆에서  출근하겠다고 생각한 김차장이 문제인가? 돈, 시간, 건강을 투자해 박사까지 한 김차장이 문제인가? 여전히 술 안마시고, 일 열심히 하고, 정의로움을 생각하는 김차장이 문제인가?


잘 모르겠다.

딸들의 엄마인 건 분명했으면 좋겠다.

딸들을 생각하며, 김차장의 길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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