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리엔 보따리 장사 1

때로는 깡으로!

by Marisol

“따리엔(大连)에 가봐야 될 것 같아”


면접을 봤던 양재동 사무실의 사장은 밑도 끝도 없이 전화를 걸어와서는 갑자기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그녀가 무슨 일로 오라는 것이냐고 묻기도 전에

“내일 오전 10시까지.”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예의도 경우도 없는 전화를 받고 어이없어하는 나에게 그 사장을 소개해 준 대학원 동기녀가 이빨을 보이지 않는 보조개 미소를 지으며 부연설명을 해줬다.


“원래 그런 분이셔. 그래도 나쁜 분은 아니야. 주어, 서술어가 없이 명사만 사용해서 말하는 습성이 있어서 듣는 쪽은 약간 기분은 나쁘겠지만, 상대방을 무시해서 그러는 건 아냐.”


‘아! 상세한 설명 고맙습니다.’ 하고 그녀는 입 속으로 인사하고 ‘따리엔은 뭐지?’ 혼자 주절거리는데, 동기녀가 자기 어깨로 그녀의 어깨를 툭 치며 “내일 가보면 알겠지!”하면서 빙글 돌더니 A4 종이의 리포트 자료가 꽉꽉 들어있는 묵직한 가방을 들고 저만치 가버렸다.


아침인데도 아직도 태양이 뜨거워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한숨 돌리기도 전에 사장은 외출 채비를 마쳤다고 바로 출발하자고 했다.


어디로 뭘 하러 가는지 물어보기도 전에 사무실 앞에 주차했던 커다란 캠핑카 운전석에 올라타더니

“설명은 가면서 할 테니 빨리 타라고.”

하면서 재촉했다.


차 앞에 은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벤츠의 엠블렘을 장착한 캠핑카는 연예인들만 타고 다니는 차종인줄 알았는데 그런 건 아닌가 보군, 하고 생각하면서 조수석에 올라탔다.


창문 쪽에 납작하게 붙은 미니 주방에 침대로도 사용할 수 있는 뒷좌석, 작은 간이 화장실, 창문마다 흰색 레이스 커튼이 달려있는데, 절대로 이 조니 뎁 사장의 센스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설마 지금 캠핑 가는 건 아니죠?”


“그럴 리가.”


“……”


그럼 도대체 어딜 가는 것인지, 위험한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닌지, 조수석 의자에 90도 직각으로 앉아서 언제라도 여차하면 차에서 탈출을 할 수 있도록 빳빳하게 몸에 힘을 주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주행하는 방향을 향해 눈의 시선각도마저 180도로 주도 면밀하게 굴리고 있었다.


“여권은 있지?”


“당연하죠!”


“따리엔에 있는 백화점 내에 내가 운영하는 패션매장이 있어. 동대문에서 물건을 매입해서 인천 국제 여객선 터미널에서 화물로 부치거든. 지금 거기 가는 거고, 어떻게 보내는지 직접 가서 설명할 테니 잘 들으라고. 다음 주에 매입한 짐을 싣고 그 배를 타고 따리엔에 도착해서 매장으로 짐을 옮기고 진열까지 하는 것까지가 강한나 씨의 일이야.”


“잠깐만요!”


“뭐야?”


“보따리 장사네요. 전 배 안타요.”


“무슨 말이야? 배를 안 타면?”


“듣자 하니, 처음부터 끝까지 꽤 노동력이 필요한 일인 것 같은데 힘들게 열몇 시간씩 배를 타고 가야 합니까?”


못 합니다.

안 합니다.

하는 의미의 답으로 강력하게 얼굴에 힘을 주고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이제 와서 못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해!”


아니, 이 양반아.

그러니까 출발하기 전에 설명을 했으면 이런 상황이 안 벌어지지!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으나 캠핑카 조수석에 안전벨트를 맨 채 버둥거리다가는 정말로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꼿꼿한 자세로 입을 꼭 다물고 무표정한 얼굴로 인천 국제 여객선 터미널까지 가고 말았다.


“그럼, 비행기 타고 간다면 할 수 있어?”


“비행기요? 그렇다면야 뭐…”


“이봐. 강한나 씨! 강하게 살아왔다며.

옷 그거 중국에 내다 팔아서 얼마 남는다고 그 비싼 비행기를 타고 다니나?”


“그게 아까우면 제 비행기 티켓 값을 제 일당에서 까세요.”


“으이그!”


어쩌다 보니 일의 흐름새가 그렇게 생각하지도 못했던 ‘따리엔 보따리 장사’의 길로 흘러버렸다.


중국이라고는 가보지도, 가고 싶지도 않았는데, 그것도 처음 들어 본 낯선 도시에 가게 되니 은근슬쩍 겁이 나기도 했다.


더군다나, 조니 뎁 사장의 무서운 눈초리는 약간 공포를 느끼게 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조폭 두목에게 있는 악(惡)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할까…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라서 모험심이 발동해 따리엔 보따리 장사를 해 보기로 결정은 했지만, 조니 뎁 사장의 까만 아이라인의 눈매가 꺼림칙하게 마음에 걸렸다.


새로운 세상으로 발을 들이기 망설여져 고민하던 그녀에게 오래간만에 술 한잔 하자며 찾아온 전 직장 후배가 술잔에 술을 따르며 의아하다며 물었다.


“선배, 어울리지 않게 걱정 있는 얼굴이네. 무슨 일 있어요?”


눈치 빠른 녀석.


그녀는 조니 뎁 사장의 일을 이야기하며 왠지 사기당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다고 했다.


푸훗! 하며 웃더니 후배는 그녀의 걱정을 발로 빈 깡통을 차버리듯 말을 내던졌다.


“선배, 사기당할 돈은 있어요?

진정한 사기꾼은 선배가 버는 잔돈푼 따위는 건드리지도 않아요.”


이 자식이 돈 따위로 자존심을 건드리다니…


“새우젓 배에 노예로 강제로 끌려가도 선장 모가지를 비틀고 구명보트를 탈취하여 맹렬하게 탈출할 여전사의 기세는 어디 갔습니까?”


그렇다.


그녀는 총도 없고 총알도 없고 사기당할 게 아무것도 없어서 남은 것은

밖에 없는 여전사이다.


그래! 한번 해 보자고!


강한나!


때로는 깡으로!


일보 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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