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리엔 보따리 장사 2

‘秋季新品进货’ POP의 위력

by Marisol

따리엔으로 가는 비행기에는 이상하게도 스님들이 많았다. 스님들도 외국출장을 다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목사님이나 신부님, 수녀님들도 외국에 종교활동을 하러 다니는 경우가 많으니 스님들도 그렇겠군 하면서 내 좌석을 찾아 앉았다.

조니 뎁 사장은 나와 대화할 때에는 볼 수 없었던, 니코틴으로 찌든 이빨이 드러나는 사교성 있는 미소를 지으며 몇 명의 스님들과 명쾌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까만 아이라인 눈매가 양쪽으로 처진 눈웃음으로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느라 이륙하겠다는 안내방송이 벌써 몇 번이나 흘렀는데도 선 채로 분주하게 비행기 안에 있는 스님들과 계속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의외의 모습이었다.

깡패와 스님의 화기애매한 조우랄까...


옆 자리에 앉으며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조니 뎁 사장의 얼굴은 썩은 군밤이라도 씹은 듯 검은 아이라인 눈초리를 째리며 원래의 조폭의 얼굴로 돌아왔다.




따리엔은 한참 도시개발 중이었다. 백화점이 있다는 장소에는 여기저기에 고층건물을 건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높은 크레인들이 하늘 높이 솟아있었고, 넓은 도로에는 세련된 벤츠와 아우디 등 외제차들과 흙을 잔뜩 실은 트럭, 자전거, 우마차들이 신호등을 무시한 채 복잡하게 공생하고 있었다.


화물선으로 보낸 물건들은 벌써 도착해 백화점 매장으로 옮겨졌다며 2박 3일 일정으로 마무리하려면 서두르라고 재촉을 하는 바람에 난생처음 본 따리엔의 도시풍경을 먹다 만 밥상처럼 물리고 백화점 매장으로 뛰어 올라갔다.


말이 백화점이지 우리나라에서 인정하는 고급스럽고 품격 있는 백화점과는 사뭇 달랐다. 동대문이나 남대문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의류매장이라고 하는 것이 훨씬 이해하기 쉽다고 할까.


매장에는 조니 뎁 사장과의 대화가 가능하도록 고용한 조선족 여성 직원 2명이 낑낑대며 바위 덩어리 같은 이민가방들을 열고 힘겹게 물건들을 빼내고 있었다.


며칠 전에 조니 뎁과 그녀가 가방 옆구리가 터질 정도로 발로 꾹꾹 눌러 채운 가을 신상품들이다.


십 수년 동안 백화점 디스플레이 디자이너로 활약했던 그녀는 능숙하게 의류제품들을 분류하여 선반에 정리하여 진열하도록 조선족 직원들에게 지시하며 마네킹에 가을 신상품들을 입혀 모자와 스카프 등으로 멋지게 코디네이트 해 놓았다.


그 작업과정을 구경하러 온 옆 매장의 직원들과 손님들이 중국어로 뭐라 뭐라 떠드는데 무슨 말인지 몰라 조선족 직원에게 물었더니 신상품이냐, 얼마냐, 뭐 그런 내용이라고 했다.


그녀는 한참 생각하더니 직원에게 문방구에서 큰 도화지와 포스터칼라, 붓 등을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흔히 백화점에서 상품내용을 고지하는 POP라는 것을 활용하기로 했다.


직원에게 ‘가을 신상품 입하’, ‘메이드 인 코리아’를 중국어로 수첩에 써 달라고 부탁하고 파란색, 초록색 포스터칼라를 물에 개어 두꺼운 통 붓에 묻혀 큰 도화지에 직원이 써 준 글씨를 보며 큰 글씨로 그렸다.


‘秋季新品进货’


‘韩国制造!’


지난여름 상품들을 진열한 선반 위에는


‘夏季商品大甩卖’

(여름상품 대 바겐세일)


POP를 써서 매장 곳곳에 붙여놓고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한 그녀는 그제서야 시장기를 느꼈다. 기내식을 먹은 것이 그날 하루 동안의 식사였던 것이다.


식당이 있다는 다른 층으로 옮겨 간단하게 끼니를 때운 그녀는 조니 뎁 사장을 찾아다녔지만, 헛일이었다. 사람한테 일을 시켜놓고 대체 어딜 다니고 있는지 하면서 툴툴거리며 매장으로 돌아갔다.


매장에서 직원들과 손님들이 시끄럽게 다투고 있는 듯 서로 목에 핏줄을 세워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진열선반에 있는 상품과 같은 물건이라고 설명해도 굳이 마네킹에게 입혀 놓은 옷을 벗겨 달라는 손님과 직원이 말싸움하는 중이었다. 손님의 완강한 부탁에 직원은 할 수 없이 마네킹의 옷을 벗겨 손님에게 넘겨주었다.


그녀는 또다시 마네킹에게 다른 옷을 입혀야 했다.


뭐 달리 할 일도 없으니 이번에는 좀 촌스러운 컬러의 옷으로 입히자고 생각했다. 손님들이 또 벗겨달라는 소동을 피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녀의 전략은 빗나갔다.

손님들은 유독 마네킹이 입었던 옷을 사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그녀는 그렇게 팔려나간 상품을 대체하기 위해 수십 번 그 작업을 반복했다.


마치 ‘마네킹 패션쇼’ 같았던 그 작업으로 바위 덩어리 만한 이민가방에 꽉꽉 넣어 가져갔던 상품들이 거의 팔려나갔다.


가을 신상품을 알리는 POP를 보고 매장으로 들어온 손님들 중 길림성(吉林省)에서 옷 가게를 한다는 손님은 그녀가 풀어놓은 이민가방 하나 정도의 상품을 쓸어갔다.


영업시간이 끝날 즈음에는 선반에 쌓아 놓았던 상품이 텅 빌 정도로 매상을 올렸다. 직원들은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그녀의 센스 덕분이라며 과하게 큰 소리로 칭찬을 해댔다.


폐점시간에 맞춰 돌아온 조니 뎁 사장이 마침 그 상황을 보고 받고 그녀를 쳐다보았는데, 아까 비행기에서 스님들과 대화할 때 보였던 ‘힘을 풀은 눈동자’였다고 그녀는 아주 잠깐 동안 생각했다.


상상 외의 매출실적으로 만족한 조니 뎁 사장은 수고했다며 유명 맛 집이라는 식당으로 직원들과 그녀를 데리고 갔다.


생전 처음 보는 회전식 대형 원형 테이블에 끊임없이 차려지는 음식으로 배가 터지도록 먹은 그녀는 비행기 값에 인색한 조니 뎁 사장이 예약해 준 별 네 개짜리 호텔의 넓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떡 실신이 되어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 아침, 어제 물건을 거의 다 팔아서 오늘은 별로 할 일이 없네, 하면서 택시를 대절해 줄 테니 조선족 가이드 아주머니와 따리엔 관광을 하고 오라며 중국 돈이 들어있는 봉투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건 어제 일한 일당인가, 보너스 인가.


아무렴 어때!

맛있는 음식 먹고 좋은 구경 하면 됐지!


그녀는 과장스럽게 친절한 가이드 아주머니의 어수선한 관광지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등 고개를 끄덕이면서 조니 뎁 사장이 돈 봉투를 주면서 한 말을 되새겨 봤다.


“강한나 씨 제법 하는데!”


칭찬인지 비아냥거리는건지 애매한 말이라 그녀가 조그만 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장사 한 두번 하나!"


그 말을 들었는지 거무스레한 입술 한쪽을 올리면서 검은 아이라인의 눈동자에 일부러 더 힘을 주는 것 같았다. 조폭의 사악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 분위기에 눌려 그녀는 직접 물어보지 못하고 입술을 씰룩거리며 입 속으로 우물거렸다.



진짜로 일당에서 비행기 값 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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