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굴, 너구리 굴, 깡패 소굴
따리엔 백화점 매장의 조선족 직원들에게 간단한 상품 코디네이트 방법과 POP를 쓰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웬만하면 그녀가 따리엔까지 출장을 가지 않아도 될 만큼 연습을 시키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하면 비행기 티켓 값과 호텔 숙박료를 절감할 수 있어서 영업이윤을 더 남길 수 있다는 그녀의 주장에 조니 뎁 사장은 납득을 했는지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강의가 없는 날이라 오랜만에 느긋하게 늦잠을 자고 있는데 조니 뎁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영업 종목을 확장해야 해서 사무실을 옮겨야겠다며 논현동으로 오라는,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어 버리는 짤막한 내용이었다.
침대에 누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조디 뎁 사장의 양재동 사무실을 처음 방문했을 때, 가득 쌓인 박스에 타일이나 카펫 등 인테리어 자재들이 굴러다니는 것을 보고 인테리어 사업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뜬금없이 나일론 이민가방에 의류제품들을 꽉꽉 눌러 담아 중국 따리엔으로 보따리 장사를 하러 갔었다.
도대체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네, 하면서 이번에는 정확하게 물어봐야겠다고 다짐하며 조디 뎁 사장이 찍어 보낸 핸드폰의 문자를 확인하며 주소지의 논현동으로 향했다.
꽤 유명한 병원의 사거리에서 도보 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6층 건물의 6층으로 올라갔다.
100평 정도 되는 넓은 사무실 입구에서 몇몇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던 조니 뎁 사장이 그녀가 도착한 것을 보고 손가락 다섯 개를 앞으로 흔들며 불렀다.
“인테리어 공사를 해야 해. 도면 그릴 줄 아나?”
“당연하죠.”
“내 방에는 7인용 소파, 책상, 책장이 들어가도록 공간 잡고,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인포메이션 데스크, 회의실 두, 세 개 정도 넣고, 나머지 공간에 직원들 책상 몇 개가 들어가는지 도면 좀 그려봐.”
“네~~?”
“무슨 일을 하는지, 직원은 몇 명인지를 알아야 그리죠.”
100퍼센트 강압적인 명령에 기분이 상한 그녀는 팔짱을 끼고 조니 뎁 사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장과 대화를 나누다가 그녀를 힐끗 쳐다보면서 한 남자가 조니 뎁에게 물었다.
“형님, 저 여자는 누굽니까?”
“응. 우리 회사 직원.”
“그럼, 우리 사업을 저 여자랑 같이 하는 겁니까?”
“응.”
뭐지 저 남자는?
사장한테 형님이라고 하는 남자는 친 형제지간은 아닌 것 같았다.
왼쪽 겨드랑이에 조그만 일수 가방을 끼고 화려한 패턴이 그려져 있는 에르메스풍 셔츠를 입은 남자는 틀림없이 영화에 나오는 조직 폭력배나 동네 건달들의 행색이었다.
그런 생각에 도달하자 그녀는 등골이 오싹함과 동시에 조니 뎁의 정체가 더욱 의심스러워졌다.
아니다. 그럴 리가…
조니 뎁사장을 소개해 준 대학원 동기녀 서혜련 씨는 자기네 부부의 생활은 수채화처럼 화사하고 아름답다며 늘 자뻑에 가까운 자랑을 해 댔고 그 수채화 속의 남편과 사업을 같이한 분이라며 조니 뎁을 소개해 주었다.
그녀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생각했다.
수채화에 그려진 인물은 아니더라도 깡패들이 나오는 무시무시한 액션 웹툰의 조직 폭력배 두목은 아니겠지.
그녀는 슬금슬금 화장실을 가는 것처럼 보이면서 서둘러 이 자리에서 도망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엘리베이터로 다가갔다.
그 순간,
“강한나 씨. 어디 가나?”
오른손으로 담배를 꼬나물며 왼쪽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비스듬하게 얼굴을 숙인 조니 뎁이 까만 아이라인 눈동자로 째려보며 불렀다.
“아, 화장실에 갑니다.”
“아직 한 사람이 더 올 거니까 빨리 다녀오라고.”
조니 뎁 사장이 입술에 문 담배를 오른손 검지와 가운데 손가락 사이로 옮겨 끼면서 사무실로 얼굴을 돌렸다. 가운데 손가락에 용이 승천하는 듯한 모양의 금반지가 반짝, 빛났다.
도망을 가면 더 위험한 상황으로 전개될 것 같았다.
꼼짝없이 그녀는 깡패들 소굴로 들어온 격이다.
그러나,
그녀는 등뼈에 힘을 주고 일부러 신발 소리를 크게 내면서 적을 향해 돌격하는 군인의 걸음으로 조니 뎁과 화려한 에르메스 셔츠의 남자가 둘러앉아 있는 테이블에 간이 의자를 붙여 앉았다.
두 남자가 연실 피워대는 치사량이 넘는 담배연기로 호랑이 굴이 아니라 너구리 굴이 된 사무실에서 입과 코를 막으며 담배 연기를 없애려 두 팔을 허우적대는 그녀를 에르메스 셔츠가 어울리지 않게 순진한 척하고 있냐고 비아냥거리는 듯 코와 입술을 움찔하며 피식, 비웃고 있었다.
그녀는 오른손 주먹을 꽉 쥔 채로 에르메스 셔츠의 코를 스트레이트로 세게 한 방 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참고 있었다. 어금니를 꽉 물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키가 크고 운동께나 한 것 같은 근육질 맵집의 남자가 역시나 마찬가지로 일수 가방 같은 조그만 백을 왼쪽 옆구리에 끼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형님, 저 왔습니다.”
“응. 왔어? 시간 없으니 빨리 이야기하자고.”
화려한 에르메스 셔츠와 호랑이 셔츠 사이에서 얼떨떨한 얼굴로 어설프게 앉아있는 그녀에게 청사진으로 된 도면을 펼쳐주며 조니 뎁이 담배에 찌든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양재동에 있는 대형마트 도면이야.
1층 이곳에 한과 매장을 개설할 건데 어느 장소가 좋지?”
백화점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알게 되었던 지식 중 두 가지는, 아이스크림 매장은 백화점 주인의 친척이 한다는 것과 가장 노른자위 장소는 1층 에스컬레이터 부근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들은 마치 자신들이 그 대형마트 주인의 친척이나 되는 듯 제일 좋은 장소를 찍으면 자신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냥,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사장님. 좋은 자리라고 찍으면 그 자리가 우리 자리가 되는 건 아닐 텐데요.
그리고 이 도면으로는 정확하게 어디가 최상의 자리인지 찍을 수가 없습니다. 정면 출입구가 어디인지, 에스컬레이터가 상향인지 하향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에르메스 셔츠가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이 딴 여자’라는 말에 빈정이 상해 순간적으로 뒷 일이 어찌 되건 알 바 아니라는 듯, 겁 대가리 없이 에르메스가 박찬 의자를 발로 홱, 차버리며 소리를 질렀다.
담배 연기를 막으려고 입과 코를 가렸던 순진하고 말 없던 그녀가 느닷없이 일어나 양손을 허리에 올린 채 에르메스를 노려보며 험한 얼굴로 폭력적인 행동과 함께 소리를 질렀다.
아주 잠시 찰나의 순간,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아있는 깡패들이 기가 막힌 듯한 얼굴로 꼼짝 않고 얼이 빠져 있었는데, 그녀는 깡패들이 입고 있는 화려한 에르메스 풍 페이즐리 무늬와 호랑이가 그려진 셔츠가 마치 중국 음식점에 장식된 싸구려 동양화 병풍 같다고 생각했다.
조니 뎁이 한 번 더 소리치자 영화의 폭력장면을 스톱 버튼을 눌러 멈춘 것처럼 어색하게 조용해졌다.
그녀는 그녀가 발로 찬 의자를 세워 에르메스에게 던져주며 비장의 각오를 한 듯 조니 뎁 사장에게 말했다.
“사장님, 무슨 사업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같이 도모할 사업은 아닌 것 같습니다.
더욱이 이 딴 남자들하고요. 죄송합니다.
거대한 코끼리 부대를 향해 썩은 나뭇가지로 저항한 어리석은 로마 군인 꼴이 되어 버렸다. 그녀는 얼른 꽁무니를 빼야겠다고 생각하며 저벅저벅 사무실을 뒤로했다.
그녀는 알아채지 못했지만, 아까부터 눈을 내려 깐 채 이 소동과는 전혀 관계없다는 듯 핸드폰을 쓰다듬던 호랑이 셔츠의 남자가 입술을 오른쪽으로 추켜올리며 썩은 미소를 지었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잠깐 드러났다. 그녀가 그 얼굴을 보지 못한 것은 그녀의 정신 건강을 위해 진정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와 휴~ 가슴을 쓸어내리며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도중에 핸드폰으로 문자가 왔다.
조니 뎁이 보낸 것이다.
‘사무실 도면 내일까지 되겠지?
완성하면 바로 연락해. 이 사무실에서 보자고’
사람 말을 들어 처먹지도 않네!
에잇 몰라! 안 가면 되지 뭐. 연락은 무슨.
하면서 버스에 올라타 찾아 앉았는데 또 문자가 띠링, 하고 들어왔다.
소개를 못했네.
……
그녀는 호랑이 셔츠를 입은 남자의 매서운 두 눈을 생각하며 또다시 소름 끼치는 두 팔을 끌어안고 속으로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