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

악어와 악어새 사이에서

by Marisol

사무실 인테리어 공사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유통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공개채용 공고를 통해 경리과 여직원 한 명과 인포메이션 여직원 한 명을 보충 채용했다.


그녀는 일주일에 이틀 오전에 대학교 강의를 나가는 것을 조건으로 기획실 과장직으로 정식 입사했다.


강한나는 새로 채용한 여직원들이 깡패들이 우글거리는 사무실 환경에 적응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걱정과는 달리 여직원들은 깡패들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흔하게 경험할 수 없는 직장환경이라며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즐거워했다. 그녀는 여직원들의 순진한 반응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하루하루가 살얼음을 걷는 것 같이 불안했다.


조지혁 이사와 똘마니들은 조이사가 정해준 자리를 하나씩 차지하긴 했지만, 책상 앞에 진득하니 앉아있는 꼴을 보지 못했다. 우르르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담배를 피우던가 아니면 회의실에 둘러앉아서 잡담들이나 하고 있었다.


하긴 깡패들이 컴퓨터를 사용할 줄도 모르니 책상 앞에 앉아서 뻘쭘하게 있으면 뭐 하겠나 싶어 그녀도 그들의 근무상태에 개의치 않았다.


오상도라는 이름의 짝퉁 에르메스 셔츠를 즐겨 입는 남자는 그녀의 예상대로 짝퉁 상품을 판매하는 일을 했었다고 한다. 명품 브랜드의 지갑, 핸드백, 벨트, 의류 등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물품을 들여와 유흥업소를 드나들며 역시 그 업장에서 근무하는 종업원들이나 호스티스들을 상대로 제법 돈푼깨나 벌었다며, 회의실 소파에 누워 팔걸이에 발을 올려놓고 떨면서 자랑질을 하는 몰상식한 장면을 몇 번이나 보았다.


그래도 깡패들은 그녀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강사라는 설명을 조지혁 이사에게 들은 후부터는 깍듯하게 인사하며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되었다.


깡패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사람은 유치원 선생님먹물 냄새나는 사람(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소리를 하며 조지혁 이사는 강한나에게도 꽤 신사적으로 대해줬다.


게다가 그녀가 일본 유학까지 갔다 왔다는 이야기를 조니 뎁, 아니 이종태 사장에게 듣고는 담배를 피우려고 담뱃갑을 꺼내다가도 그녀 앞에서 쭈뼛쭈뼛 인사를 하고는 멀찌감치 자리를 옮기는 착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사무실의 탕비실과 회의실 부근을 스쳐 지나가며 깡패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떠들어대는 이야기와 이사장을 방문하는 지인들과의 대화를 조각조각 주워듣고 종합적으로 정리하면서 조니 뎁 이종태 사장의 과거를 유추할 수 있었다.


이종태 사장은 남대문에서 의류도매상을 운영했던 젊은 시절, 흔히 ‘일수 아줌마’‘달러 아줌마’들과 유착관계를 가지면서 그 일대의 깡패들을 몰고 다니며 일명 ‘못 받은 돈 받아 줍니다’라는 잡무를 겸했다고 한다.

그때, 대학교 패션학과에서 강사로 활동하면서 패션 디자인과 마케팅 업무를 도와줬던 그녀의 동기녀 서혜련 씨의 남편과 접점이 있었고, 그 우연과 인연이 그녀가 이종태 사장의 양재동 사무실로 면접을 보러 가게 이끌게 되었던 것이다.


이종태 사장이 뒤를 봐주었던 ‘일수 아줌마’와 ‘달러 아줌마’들 중 박여사라는 여성은 유독 오랫동안 이종태 사장을 신임하며 서로 가정사에도 왕래를 해 가면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고.


그 박여사라는 여성이 집에서나 입는 허리 벨트 대신 고무줄로 된 주름치마를 입고 사무실에 서류더미를 가지고 와서 대량으로 복사를 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아마도 박여사에게 돈을 빌린 사람들이 채무기한을 서약한 서류일 것이라고 그녀를 포함한 사무실 직원들은 암묵적으로 지켜보곤 했다.


강한나는 바람결에 들리는 이종태 사장과 박여사와의 은밀한 대화에서 박여사가 이종태 사장의 뒤에 숨어있는 ‘쩐주’ 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돈을 빌려주고 갚지 않는 사람들에게 으름장을 놓거나 거친 행동으로 ‘못 받은 돈 받아 주는’, 그래서 그 대가로 깡패들의 사업에 돈을 대주는,


마치 악어와 악어새와 같은 공생관계.


상황을 그리 추리하니 이종태 사장의 정체와 유통사업을 한다며 갑자기 금싸라기 땅인 강남 논현동에 100평이 넘는 사무실을 만들고 한 물 간 깡패들을 불러 모은 정황이 자연스럽게 납득이 갔다.


그녀는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는 한기를 느꼈다.


공생(共生)할 것인가, 기생(寄生)할 것인가.


아니면,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이 상황에서 한시라도 빨리 탈주할 것인가.


아니다.


어차피 발을 들여놨으니, 이제 와서 도망갈 수는 없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깡패들은 깡패들끼리,

사채업자는 사채업자들끼리.

민간인은 민간인들끼리.


각자 살 길이 있겠지.


그녀는 체념도 아닌, 각오도 아닌.

각자도생을 속으로 외치며 벌떡 일어났다.


책상에 놓인 전화기에서 아까부터 사장실에서 호출신호가 깜빡거리는 동안의 무거운 번뇌를 떨치고 사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고급스러운 정장을 입은 중년 여성과 조지혁 이사가 소파 양쪽에 앉아서 신경질을 얼굴에 잔뜩 담고 심각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강한나 과장, 일본 유학 갔다 왔다고 했지? 그럼 일본어는 제법 하겠네?”


“당연하죠.”


“일본에 전화 한 통 넣어봐.”


“네?”


“일본 야쿠자 다나까 구미 사무총장한테 물어볼 것이 있어.”


“네? 야쿠자요?”


헉!


각자도생이 아니라,


빨리 도망가야 한다.


더 깊이 발을 들여놓기 전에!



각자도망(各自逃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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