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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sol Sep 29. 2024

무섭고 어두운 일본의 신호등, 공포의 멜로디

지나가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일본 후쿠오카(福岡)에서 사는 동안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신기하게 생각한 것이 있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시각 장애자들을 위해 초록색 신호등이 켜지면 멜로디로 횡단보도를 안전하게 건널 시간을 알려주는데 남북(南北) 방향으로 건널 때와 동서(東西) 방향으로 건널 때 울리는 멜로디가 다르다.


 그중 하나는 스코틀랜드의 민요 「고향의 하늘」의 멜로디이고, 또 하나는 에도시대(江戸時代)부터 전해져 오는「わらべ歌(와라베우타:전래동요)」 りゃんせ(토오랸세)라는 노래의 멜로디이다. りゃんせ(토오랸세)는 「지나가세요」라는 의미로 아이들이 놀이를 할 때 부르던 노래라고도 알려졌다.


 노래의 내용은 일곱 살이 된 아이를 축하하기 위해 아이를 데리고 신사에 찾아가는 과정을 노래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아이가 3살, 5살, 7살이 되면 신사에 데리고 가서 아이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七五三(시 찌고 산)[1]」이라는 기념일이 있는데, 이 노래에서는 7살이 된 아이를 위해 신사에 가는 모양이다.

 


 노래의 가사 내용이다. 


りゃんせ りゃんせ           지나가세요 지나가세요

ここはどこの 細道じゃ           여기는 어디의 좁은 길인가

天神さまの 細道じゃ              텐진님(天神さま)의 좁은 길이지

ちっとして しゃんせ        잠깐 지나가게 해 주세요

御用のないもの しゃせぬ        용무가 없으면 지나가지 못해요

このつの おいに           7살이 된 이 아이를 축하하기 위해

めに まいります           봉헌하러 왔답니다

きはよいよい りはこわい      가는 것은 좋으나 돌아가는 것은 두려워

こわいながらも                       무서워도

りゃんせ りゃんせ[2]           지나가세요 지나가세요



「토로랸세」의 발상지라고 알려진 神奈川県小田原市 山角天神의 「通りゃんせ」



 특별한 내용이 있는 것 같지 않은데 「가는 것은 좋으나 돌아가는 길은 두려워」에서 뭐가 두렵고 무섭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얼마 전 후쿠오카를 방문했을 때 마침 가라쓰시(唐津市)에서 전통 있는 료칸(旅館)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오카미상:女将さん)을 만나게 되어 공포의 신호등 멜로디에 대한 궁금증을 여쭈어봤다. 


 그런 게 뭘 그렇게 궁금해, 하시고는 검지를 바쁘게 움직여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면서 직접 りゃんせ(토오랸세)노래를 불러주시고는 눈을 동그랗게 하고 작은 입술에 힘을 주면서 설명해 주셨다. 


 「이 노래에는 에도시대의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생활을 알 수 있는 내용이 있어요. 그 시대의 서민생활은 궁핍하기 짝이 없어서 식구들이 많은 집은 먹고 살 식량이 부족해서 굶기가 일쑤였다고 해요. 아이들이 둘, 셋 늘어나면 그중 제일 많이 먹어야 하는 큰 아이가 7살이 되는 때가 되면 신사에 데리고 가서 「七五三」 축하를 한다는 핑계로 산속 깊은 곳에 아이를 버리고 왔다고 해요. 그것을 「口減らし(くちべらし: ‘입’이라는 ‘구찌’와 ‘줄이다’라는 ‘헤라시’의 합성어 ‘구찌베라시’)」라고 한답니다. 먹는 입을 줄인다는 뜻이죠.


 신사로 가는 좁은 길을 가는 것은 아이의 7살이 된 것을 축하하러 가는 길이지만, 돌아오는 길은 아이를 산속에 버리고 와야 하니 아직 어린아이를 버리는 부모의 가슴 찢어지는 고통과 홀로 버려진 아이의 공포와 두려움이 노래 속에 담겨 있어요.


 아이러니하게 이 노래는 어린아이들이 가족들과 또 친구들과 놀이를 할 때 부르기도 한답니다. 혼자 남겨진 아이의 공포와 부모의 고통을 유희 놀이로 삼더니 현시대에서는 신호등 멜로디로 사용하는군요.


 요즘에는 이 암울한 멜로디가 아니고 「삐약 삐약」이나 「뻐꾹뻐꾹」하는 새소리를 신호등 알림으로 사용하는 지역도 있어요.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 시각 장애자를 위한 가장 좋은 신호 알림은 노래 멜로디도 아니고 새소리도 아닌 횡단보도에서 같이 청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친절한 손 도움이라고 내가 알고 있는 한 시각 장애자의 말이 생각나는군요.」 


  브런치 스토리에 올린 필자의 스토리 중, 「일본 사람들의 미스터리 기념일- 7, 5, 3 소수를 사용한 아이들의 날」을 읽고 어느 작가님이 일본 횡단보도 청신호의 멜로디의 가사가 「七五三」을 소재로 한 음울한 노래라는 내용의 댓글을 남겨주셔서 나름 진심을 다하여 본격적으로 알아보게 되었다. 


 어린이 고려장(高麗葬). 


그런데 하필이면 왜?


 지나가긴 가는데 돌아가는 길이 두렵다는 노래를 신호등 멜로디로 사용한 것인지 


 지나가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횡단보도의 청신호 알림은 어떤가?


 시각 장애자를 위한 점자블록은 제대로 되어 있는지, 동서, 남북 방향의 횡단보도 신호 알림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


 그러고 보니 횡단보도에 시각장애인이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도록 알려주는 음향신호기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기는 했다. 하지만 음향신호기를 사용하려면 먼저 작동시키기 위한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시각장애인에게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버튼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조차 어려울 것이다.


 지나가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속도와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는 자동차로 꽉 찬 도로의 횡단보도 앞. 


 시각장애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음향신호기보다, 


 지나가긴 가는데 돌아갈 길이 두려운 


 일본 횡단보도에서 울리는 공포의 멜로디가 차라리 덜 공포스러울 수도…





[1] 필자의 브런치 스토리 「일본 사람들의 미스터리 기념일- 7, 5, 3 소수를 사용한 아이들의 날」 참조

[2] 참조 : https://utaten.com/specialArticle/index/7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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