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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솔 Oct 25. 2024

[프롤로그] 갈색 눈의 장군. 삶, 죽음.

의료인의 내 반려견 호스피스


  유기견 센터에서 처음 만난 장군이는 겁에 질린 듯했지만, 그의 깊은 갈색 눈은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듯했다. 움츠러든 모습이었지만, 큰 머리 덕분에 가장 눈에 띄었다. 다른 강아지들이 나를 보고 좋아서 날뛰는 것과는 달리, 장군이는 구석에 앉아 표정 변화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2016년 1월, 장군이는 유기견 센터 생활을 끝내고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처음 집에 왔을 때, 귀를 쫑긋 세우고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조심스럽게 집안 냄새를 맡더니, 크고 동그란 갈색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마치 "나 잘해볼게!"라고 말하는 듯했다.


  장군이는 3살로 추정되는 나이에 우리와 만났고 8년 동안 함께 했다. 밥을 잘 먹고 산에 올라가는 걸 좋아했으며, 고라니나 오소리 같은 산짐승이 나오면 쫓아가고 싶어 했다. 엄마를 하루 종일 쳐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아빠를 보면 기가 막히게  표정이 한 톤 죽었다. 둘째인 8살 푸들 누룽지와는 데면데면했고, 산책하다 다른 친구들과 만나기라도 할 때면 조심스럽게 상대방의 의사에 따라 살짝 냄새 맡고 조용히 가는 성향이었다. 겁이 많았다. 장군이는 외모와 달리 온 세상 겁을 다 잡아먹은 듯한 겁보였다. 절대적인 실외 배뇨, 배변 생체 시스템을 갖고 있는 탓에 매일 빠짐없이 2번 이상, 그러니까 총 6천 번가량 함께 산책하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느끼고 같이 뛰는 게 장군이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다. 특히 장군이는 겨울을 가장 좋아했다. 덥지도 않고 진드기도 없어서 좋아하는 산에 가서 마음껏 뛸 수 있었고, 특히 엄마, 아빠랑 같이 뛸 때면 장군이는 금세 눈코입이 크게 벌어지고 혀가 많이 나와 오른쪽으로 축 늘어져 학학 거리면서 입김을 뿜었다. 사람 언어가 아닌 감각과 감정과 규칙으로 대화했으며, 때로는 눈으로 대화했다. 장군이와 뛸 때면 나도 장군이처럼 눈코입이 벌어지고 숨을 헐떡이며 온갖 스트레스가 숨과 함께 나가버렸다.


  장군이는 11살의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났다. 좋아하는 겨울을 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싶었는데, 힘겹게 올 가을을 버티다 자연으로 돌아갔다.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건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가는 곳마다 장군이가 있는 것 같다. 바람으로 산으로 나무로 흙으로, 때론 비가 되어 내린다. 어디라고, 무엇이라고 할 것 없이 그저 내가 있는 곳곳마다..



  2024년 6월 25일은 장군이가 비장 종양 진단을 받은 날이다. 병원에서는 높은 확률로 악성이 의심되고 크기가 커서 파열이 될 경우 생명이 위독할 수 있기 때문에 응급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수의사 선생님께서는 수술을 하지 않으면 1개월, 수술을 할 경우 2~3개월이라는 기대 여명도 말씀하셨다. 말문이 턱 막힌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나는 목구멍에 뭐가 걸린 것 마냥 말을 못 했고, 눈엔 어느새 눈물이 솟아 올라와 얼굴로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겁 많은 장군이는 우리 옆에 앉아 9시 15분 방향으로 귀가 쳐져 동그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았지만, 이미 여러 장기로 전이가 되어 호스피스 케어로 전환했고, 장군이는 2024년 9월 22일에 사망했다. 나는 가급적 장군이의 삶과 죽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려 한다. 직접적인 표현이 장군이의 생로병사 모두를 더 잘 포용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나 슬프다. 하지만 아름다운 삶이란 단순히 빛나는 순간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한 편의 영화 같은 우리 인생 전체를 의미한다.


  첫 진단부터 수술을 하더라도 길어야 3개월이라는 시한부 판정이 있었기에, 호스피스 케어는 사실상 진단 순간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3개월간의 호스피스 케어 동안 우리 가족은 장군이를 깊이 사랑했지만, 동시에 처음 느껴보는 어려움을 겪었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장군이를 전혀 모르겠는 시간이었다.

점점 걷기 힘들어하는 장군이를 매번 들어 산책시키는 일은 고됐다. 폭염주의보와 장마를 피해 나가는 산책은 나를 녹초로 만들었다. 예전엔 뭐든 잘 먹던 장군이가 갑자기 편식왕이 되어, 온갖 고기와 사료, 간식을 구해 먹이는 일에 지쳐갔다. 기력이 없으면서도 ‘쉬와 응가는 반드시 밖에서’라며 고집부리는 모습은 마치 완고한 할아버지 같았다.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개를 획 돌려버려 산책이 3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였다. 시간이 갈수록 어려움은 늘어만 갔다. 너무나 힘들었지만, 그만큼 장군이를 사랑했다. 반려인에게 반려견은 가족 그 자체다.


  우리는 새롭게 변한 환경에서 다시 서로를 이해하고 규칙을 만들었다. 개모차를 타고 산책하다 장군이가 고개를 획 들면 "이 구간이 마음에 드니 내리겠다"는 신호, "내릴래?"라고 물었을 때 고개를 돌리면 "여긴 아니다"라는 신호였다. 장군이도, 남편과 나도 새로운 소통을 위해 노력했다. 갑자기 장군이에게 온갖 스포트라이트가 비쳐 누룽지는 꽤나 피해를 본 것 같다. 결국 온 가족이 노력한 셈이다.

15킬로가 넘는 장군이를 매번 들어 산책할 만한 곳에 내려줄 땐 허리가 아팠지만, 장군이를 안는 촉감이 좋아 내심 "또 안아야지" 했고, 품에 안으면 미소 지었다. 더운 여름 날씨를 피해 새벽에 산책을 나가 장군이 산책이 끝나면, 남편과 잠시 벤치에 앉아 캔 맥주 한 잔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편식 대마왕 같은 똥고집을 부릴 때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동안 정말 착하게만 지내온 장군이가 이제야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리나 싶기도 했다.


  장군이의 보호자인 남편과 나는 장군이를 돌보는 기간 동안 평소보다 자주 다투었다. 한 번은 싸운 후 4시간 넘게 대화를 나눈 적도 있다.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더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된 징한 4시간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언쟁은 장군이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와 남편 모두에게 장군이가 너무나 소중했기에,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돌봄을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각자의 견해가 너무 확고했던 것이다. 타협할 줄 모르는 열정이 충돌을 일으켰다. 하지만, 비가 온 뒤에 땅이 더 단단해지듯, 우리는 많이 싸우고 많이 견고해졌다. 결국 우리는 장군이를 돌보는 무적의 한 팀이 되었다고 느꼈다.



  사랑하는 반려견의 죽음은 슬프다. 입 밖으로 내거나 생각으로 떠올리면 언제나 가슴이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한편으로 평온하다. '나 아무렇지도 않아'의 괜찮음이 아닌,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보냈기에 슬프고 마음이 아파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미다. 장군이를 더욱 세심하게 돌보며 매일을 선물처럼 여기며 보냈고,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이 경험은 슬프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마치 한 편의 감동적인 영화처럼. (그럼에도 슬프다!)


  장군이는 행복했을까? 난 장군이를 모른다. 아무리 노력해도 장군이의 언어를 다 알 수 없다. 마지막 3개월 동안 장군이가 많이 아팠을 거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그의 고통에만 집중하지 않으려 한다. 삶은 아픔으로만 채워져 있지 않다. 아픔도 있지만 행복도 있고, 인내해야 할 순간도 있지만 즐거움도 있다. 장군이의 삶도 그러했으리라—이 점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갑작스러운 상황이 많았지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집중하면서 최선의 결정을 내렸다. 남편과 함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면서 한 팀으로 역할을 잘 수행했다.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학교에서 보건선생님으로 15년간 쌓은 돌봄 경험이 장군이의 호스피스 케어에 큰 도움이 되었다. 회사에서 기획 업무를 많이 하는 덕에 꼼꼼한 남편은 세심하게 장군이를 관찰했고, 마치 정보를 물어다 주는 새처럼 살뜰히 역할을 해냈다. 덕분에 처음 겪는 반려견 호스피스 케어였음에도 불구하고, 담당 수의사님께서는 "장군이는 높은 수준의 간호를 받고 있어요"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내 경험을 남기고 싶다.

나의 경험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닿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나이 들고 아픈 반려견을 돌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리고 싶은 마음에,

반려인에게도 비반려인에게도 평화로운 문화가 정착되길 바라는 마음에,

그리고, 중요한 순간을 다시 직면하면서 나 자신에게 충분히 슬퍼할 시간을 주고 싶은 마음에.


2023년, 겨울을 좋아하는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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