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솔 Oct 27. 2024

[#2] 환자, 보호자, 의료진은 팀이니까

목표는 단 하나!


  환자, 보호자, 의료진은 하나의 팀이다.

  치료 기간 내내 이 사실을 내면화하고 서로 존중하며 협력할 때 치료 효과가 극대화된다.

  임상 간호사로서 의료진의 입장을, 그리고 장군이의 호스피스 케어 기간 동안 동물 환자의 보호자로서의 경험을 통해 얻은 통찰이다.



  먼저, 의료진으로서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임상 간호사로 일하며 여러 병동을 거쳤는데, 마지막으로 근무한 곳은 혈액종양내과 조혈모세포 이식병동이었다. 이곳에는 주로 성인 백혈병 환자들이 항암 치료나 조혈모세포 이식을 위해 입원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환자 한 분이 계신다. 백혈병은 단순한 상처처럼 치료하면 금방 나아지는 질병이 아님에도, 이 환자분은 치료 효과가 좋았을 뿐만 아니라 그 효과가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이 분은 정해진 항암 스케줄에 따라 여러 차례 입퇴원을 반복하며 치료를 받으셨는데, 매번 한결같은 모습으로 병동에 입원하셨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입원하실 때마다 환자분은 늘 정갈하고 말끔한 모습이셨다. 깔끔하게 정돈된 숏컷 헤어스타일, 깨끗하고 단정한 옷차림, 세정을 잘하고 로션만 살짝 발라 윤기 나는 피부, 그리고 과장되거나 위축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미소와 적절한 몸짓이 인상적이었다.

  입원 기간 동안 치료 과정에서도 이 환자분의 태도는 일관되었다. 대화 중 드러나는 적절한 적극성은 나에게 협조적으로 느껴져, 간호 업무에 활력을 주곤 했다. 입원부터 퇴원까지 정해진 시간에 기상하고, 식사와 약을 빼먹지 않고 챙기셨다. 더불어 폐쇄된 병동임에도 불구하고 복도에서 꾸준히 걷기 운동을 하셨다.

  나에게 이 환자분은 본인의 치료에 주체적으로 임하고, 의료진에게 협조적이며, 꾸준한 생활 습관을 가진 분으로 기억된다. 이분은 항암 치료 후 효과가 좋은 편이었는데, 주목할 점은 그 효과가 나타나는 패턴의 일관성이었다. 내가 본 다른 환자분들의 경우 치료 효과가 들쭉날쭉한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이 환자분은 예측 가능할 정도로 일관되게 좋은 항암 효과를 보였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질병 치료에 있어 좋은 시설과 기구를 갖춘 병원, 실력 있는 의료진, 보호자의 지지도 중요하지만, 환자 본인이 치료 과정에 얼마나 주체성을 가지고 협조적으로 임하는가 역시 회복에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내가 환자의 보호자가 되었다. 비록 사람이 아닌 동물이지만, 장군이의 보호자로서 겪은 경험과 그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나는 장군이가 다니던 동물병원을 과감히 옮긴 적이 있다. 의료진으로 일한 경험 덕분에 수의사 선생님과 병원 직원들의 노고를 이해하고 협조적으로 대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소통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고 느껴 결국 병원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장군이의 주치의 수의사 선생님은 건강검진이나 병원에서 시행하는 검사 결과를 명확하게 설명해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걸리는 것 같았다. 장군이가 혈뇨와 혈변 증상으로 지속적인 진료를 받았을 때, 그 개운치 않았던 느낌의 원인이 무엇인지 갑자기 깨달았다. 눈앞에 느낌표가 확 나타난 것처럼 말이다.

  주치의 선생님은 보호자의 말을 경청하는 모습이 부족했다. 장군이에게 필요한 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진료하는 것은 잘 이루어졌지만, 아쉽게도 그것에만 국한된 느낌이었다. 사실 장군이는 병원에 잠깐 오는 것보다 집에서 보호자와 지내는 시간이 훨씬 많다. 따라서 집에서 관찰된 혈뇨, 혈변의 양상 변화는 중요한 정보다. 병원 검사 결과는 객관적 자료로 중요하지만, 이는 특정 시점의 상태만을 반영한다. 환자나 보호자의 관찰 자료를 검사 결과와 함께 진료에 활용해야 하는데, 이런 정보가 무시되는 듯했다. 특히 장군이는 동물이라 말을 할 수 없어 보호자의 관찰이 더욱 중요하다. 보호자의 의견을 듣지 않고 오직 검사 결과만으로 진료하는 곳은 마치 혼자 돌아가는 실험실 같았다.


  동물 진료에서는 보호자와 의료진 간의 의사소통이 사람 환자를 돌볼 때보다 더욱 중요하고 필수적일 수 있다. 환자와 직접 소통할 수 없어 보호자를 통해 의사소통해야 하는 것이 수의사들의 주요 고충 중 하나일 것이다. 쉽지 않은 과제지만, 반려견을 돌보는 데 있어 보호자와 의료진 간의 원활한 소통은 매우 중요하며, 양측 모두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이상의 내용은 두 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담고 있다. 첫째, 의료진으로서 환자의 주체성과 협조적 태도가 질병 회복에 중요한 요소임을 경험했다. 둘째, 동물 보호자로서 의료진과의 원활한 소통이 치료 과정에 필수적임을 깨달았다.


  위와 더불어, 보호자로서 장군이의 상태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의료진이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보를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보호자와 의료진 간의 필수적인 소통에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나는 장군이의 호스피스 케어 과정에서 이를 직접 실천하며 그 중요성을 체감했다.

  장군이가 혈관육종 진단을 받고 공식적인 환자가 되자, 그의 행동을 관찰하는 일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예를 들어, 전에는 귀엽게만 보이던 '똬리를 트는 모습'도 이제는 불편함 때문에 자세를 바꾸는 행동일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으로 봐야 했다. 나는 이런 세세한 관찰에 서툴렀다. 체계적인 일 처리를 선호하지만, 나는 세부사항보다는 전체적인 그림을 더 잘 본다. 다행히도 남편이 내가 부족한 이 부분을 보완해 주었다.

  남편은 평소 관찰력이 뛰어나고 패턴 파악을 즐기는 편이다.

  잠깐 다른 얘기지만, 남편의 이런 특성 때문에 짜증이 날 때가 있다. 때때로 “자기는 이런 성향 같아. 왜냐하면 평소 이런 패턴을 보이니까.”라고 말하곤 한다. 아무리 남편이라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를 정의하는 것 같아서 짜증 나는데, 맞는 말 같아서 또 짜증 나는, 결국 짜증 나는 일들이 가끔 있다. 가끔.....

  다시 돌아와서 얘기하자면, 남편의 이런 관찰과 분석 능력 덕분에 장군이의 행동을 세심히 관찰하는 역할을 잘 해주었다. 나는 남편이 수집한 정보를 간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해석하여 주치의와 상담할 내용을 선별했다. 이를 토대로 우리는 장군이의 케어에 관해 주치의 선생님과 최대한 효과적으로 소통하려 노력했다. 예를 들어, 주치의 선생님과의 상담—대면이든 전화든—을 앞두고 항상 미리 내용을 정리했는데, 주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준비했다.

상담의 목적 파악하기

장군이에 대한 우리의 관찰 내용 정리하기

주치의 선생님께 문의할 사항 명확히 하기


  예를 들어, 가정에서 호스피스 케어 중의 핵심적인 요소인 통증 조절에 대한 상담이 예정되었을 때,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준비하는 것이다.   

상담의 목적: 장군이의 통증 조절 — 현재 투약 중인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패치 50 마이크로그램 용량에서 추가적인 통증 조절이 필요한지 확인.

장군이 관찰 내용: 지난 상담 이후 간헐적으로 상기된 모습 관찰됨. 펜타닐 패치 교체 후 1-2일간은 안정적이나, 3일째부터 변화 있음.

   —구체적 증상:

    - 수면 장애: 호흡수 증가(평균 분당 60-80회, 최대 100회)

    - 각성 상태: 눈을 크게 뜨고 있음

    - 불편함 표현: 다리에 힘주기, 자세 변경 시도

    - 식사, 배변 양상: 이전과 유사

주치의 선생님께 문의할 사항: 현재 증상이 통증의 징후인지?, 통증 수준에 대한 평가, 추가적인 통증 조절의 필요성  

  이는 장군이의 보호자로서 그의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고, 의료진과 효과적으로 소통하며 그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과 실천이었다.



  의료인과 보호자로서의 경험을 통해 환자, 보호자, 의료진이 환자의 회복을 위한 하나의 팀이라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이 깨달음을 장군이의 호스피스 기간 동안 내면화하여 주치의 선생님과 상호 존중과 협력을 실천했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낀다.


  환자, 보호자, 의료진은 하나의 팀이다.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동시에 협력해야 한다. 목표는 단 하나—환자의 회복이다. 물론 호스피스 케어에서는 '회복'이 환자의 안위 증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환자를 위해 모두가 최선을 다하는 하나의 팀이라는 점이다. 사랑하는 가족 반려견의 호스피스 케어 과정은 어렵고 힘들다. 그렇지만, 환자, 보호자, 의료진은 한 팀이라는 생각만큼은 잃지 말고 힘을 내면 좋겠다. 분명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사랑하는 반려견의 회복과 안위 증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장군, 수술 후 3일차 입원실에서.


작가의 이전글 [#1] 수술을 해야 되는 건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