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묘했던 일요일에 대해 다루어본다.
# 1
우선 그날 새벽 4시, 자던 중에 갑자기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무언가를 내내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린 것 같았다. "그건 우리가 가치관이 안 맞아서 그래!"라는 커다란 음성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내가 무언가 답을 찾고 있었던가? 혹은 꿈을 꾸고 있었던가? 그건 아니었는데. 깊진 않지만 그래도 새카만 잠을 자고 있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정신이 그런 와중 몸 또한 혼란스러웠다. 그 누군가 나를 아주 강하게 꽉 안아주면 좋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번도 겪어본 적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분리 불안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태아가 엄마로부터 떨어지게 되었을 때 겪는 감정이 이럴까? 왜 이러지? 왜? 그런 와중 육신은 그런 결핍감을 이기지 못하고 막 어디론가로 뛰쳐나가야 될 것 같다라는 느낌에 휩싸였다. 아닌 밤에 기운이 넘쳤고 그것이 주체가 안 되었다. 아주 아주 참으면서도 팔다리를 이리저리로 뻗었다. 이날은 본가에서 엄마의 옆에서 자던 날이었는데, 그 탓에 엄마도 살짝 깼다.
이게 무슨 일인고. 누가 나를 저주라도 했나… 혹은 축복했는데 역효과가 났나…라는 생각이나 했다. 요근래 귀신과 악마와 저주가 등장하는 오컬트, 판타지 웹툰 등등을 보고 있던 터라 상상이 그런 쪽으로 미쳤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카페인의 부작용이었을까 싶다만, 몸과 마음 모두 한 사람을 떠올리고 있었기에 기묘했다.
# 2
해가 뜨고 나서부터는, 그동안 묵혀왔던 것들을 까놓는 일들이 연쇄적으로 벌어졌다.
첫 번째로는 오후 2시, 선배한테다. 그는 조금 화난 듯한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대책이 필요할 것 같은데? 너가 개고생하고 너를 갈아서 이렇게 유지가 되고 있는 거잖아."
"난 지금 중요한 건 너야. 너 심폐소생 하기."
나는 그에 웅얼웅얼 투정부리듯 말했다.
"그래서 내가… 대책을 고민해봤는데… 잘 모르겠어… 이렇게 하는 방식 말고 뭐가 있을까……."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라고 말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것 외에는 별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여튼 같이 고민해보니 대책이 나왔다.
그동안 내가 무언가를 책임지는 방식은 단지 무리하는 것뿐이었다. 누군가 옆에서 먼저 말해주지 않는 한 책임을 잘 분담하지 못했다. 이런 방식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지해왔는데, 이젠 정말로 그러지 말아야겠다. 중요한 것들만 남기고 그것을 잘 챙길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야겠다.
다음으로는 저녁 6시, 형제한테다. 큰이모부 칠순 생신잔치를 하면서 가족들과 섞여 있었을 때에 그에게 슬쩍 내 현황을 공유했다. 그와 나는 돈 얘기를 꺼내게 되는 순간이면 자주 다투는데 이때는 그렇지는 않았다. 복작복작한 분위기 틈에 섞여 내가 그동안 날서 있었던 이유를 말하자 그는 이해를 하는 듯 했다. 그것을 토대로 그의 현황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어떤 부분에서 내가 그를 오해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다음으로는 밤 9시, 애인한테다. 벽에 기대어 앉아 그와 통화하던 중이었다. "나 요새 싱숭생숭~ 일이 그렇게 많은 건 아닌데 왜 그러냐면, 그게 그…… 아니 우리 너무 랜선 연애 같자나……" 이런 이야기를 듣는 그는 파하핫 웃었다.
다음으로는 밤 10시, 동료한테다. 전화 일정을 예약하고 몇 달 동안 참고 정돈해온 말들을 꺼냈다. "회의에 무단으로 15분 늦거나 중간에 나갔다 돌아와도 설명해주지도 않고. 그냥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들이 빈번했잖아. 그래서 나는 사실 저번에 회의를 진행할 때 너무 기분이 나빴어. …… 그건 대표와 집행부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으로서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나는 오빠가 그걸 모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거든. 근데 왜 자꾸 그러는 거야? 이유가 있어?" 그는 조금 감정적이게 된 나의 말을 끝까지 잘 들어주었고, "맞아."를 반복하며 대꾸했다.
이 하루를 보내며 나는 이날 나의 기력을 말끔히 소진했다. 이날은 선배와, 가족들과, 애인과, 동료와 묵혀둔 대화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고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담]
"오늘 참 완벽한 하루^^" 그리하여 그날 자정까지 제출해야 하는 과제를 제출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