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가 없다> 해석-
만수는 왜 치아를 뽑았나

영화, 심층, 리뷰, 결말, 의미

by 마커

*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 줄거리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줄거리

주인공 만수(이병헌)는 25년간 일하던 제지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는다. 만수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다른 제지회사에 재취업을 시도한다. 하지만 일자리가 없어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자신이 쌓아온 것들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만수. 결국 만수는 본인이 취업하고 싶은 회사의 직원과 유력한 경쟁자들을 모두 죽여 버린다. 덕분에 만수는 취업에 성공한다.



enm_media_250909_28-717x1024.jpg

해석 요약

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는 우리 사회가 감추고 있는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일자리를 두고 펼쳐지는 치열한 경쟁을 긍정적으로 묘사하지만, 본질은 다른 사람의 생계를 빼앗는 것에 불과합니다. 바꿔 말하면 취업이란 내가 먹고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어떻게든 짓밟고 억눌러야 하는 것입니다. 일자리를 얻지 못한 근로자는 목숨을 잃게 됩니다. 만수에게 죽어나간 다른 경쟁자들처럼. 죽음에 내몰린 노동자들은 절규를 쏟아내지만 사회에 들리진 않습니다. 시끄러운 공장 기계 소리에, 화려한 조용필 음악 소리에 파묻히거든요. 나와 내 가족이 삶을 영위하려면 타인을 어떻게든 짓밟아야 하는 우리 사회. 정말 어쩔 수가 없습니다.




경쟁의 불편한 진실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종종 듣는 말이 있죠. ‘자신만의 경쟁력을 갖추라.’ 원하는 일자리를 얻으려면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 자격을 갖추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자격증을 따고, 공모전에 나가고, 봉사활동에 참여합니다. 소위 말하는 스펙 쌓기 활동입니다.


너도 나도 스펙을 쌓다 보니 수준도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영어는 당연히 할 줄 알아야 하고, 해외 거주 경험을 가진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다 같이 노력하면 모두가 좋은 일자리를 얻는 걸까요?


영화 <어쩔 수가 없다>는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합니다. 기업은 치열한 경쟁 시스템을 통해 유능하고 충성심 넘치는 근로자를 뽑을 수 있습니다. 일자리를 구하는 근로자들도 극심한 경쟁을 ‘어쩔 수 없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경쟁을 이겨내고 일자리를 따낸 근로자는 사회의 축하와 인정을 받고요.


영화 어쩔수가 없다 스틸컷_2, 사진=CJ ENM.jpg

하지만 돈을 많이 주는 일자리는 한정돼 있습니다. 누군가는 일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적은 월급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모두가 노력해도 반드시 도태되는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는 ‘선의의 경쟁’, ‘효율적인 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구인구직의 이면에 타인을 어떻게든 짓밟아버려야 내가 생존할 수 있는 잔인함이 숨겨져 있다고 고발합니다.


영화 초반 만수는 구조조정에 반대하면서 이렇게 외칩니다. “해고란 도끼로 모가지를 댕강 내려치는 것과 같다.” 일자리는 사람의 목숨만큼 중요하다는 의미겠죠? 그래서 만수는 자신의 일자리(목숨)를 지키려 노력합니다. 다른 사람의 일자리(목숨)를 빼앗아버리는 방식으로요. 합격 가능성이 높아 보였던 구범모(이성민), 고시조(차승원)를, 원래 일하고 있던 박선출(박희순)도 죽여 버리죠. 다른 사람의 목숨(일자리)을 제거해 결국 자신의 목숨(일자리)을 거머쥐는 만수를 통해 일자리 경쟁의 본질을 비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절규는 들리지 않는다

영화 어쩔수가 없다 스틸컷_3, 사진=CJ ENM.jpeg

그런데 우리는 왜 불합리한 경쟁 체제를 깨닫지 못할까요?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자비한 경쟁에 절규하는 노동자의 목소리는 여러 이유로 파묻히기 마련입니다. 영화 초반 만수는 구조조정을 성토하는 발표문을 준비해 연습합니다. 하지만 시끄러운 공장 기계 소리에 잘 들리지 않죠. 책임이 있는 기업 담당자는 외면해 버립니다. 구범모가 죽음 직전 외친 절규도 마찬가집니다. 조용필이 부르는 고추잠자리 노랫소리(대중문화)에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박선출도 사실은 외롭고 고독한 사람입니다. 박선출도 자신의 고충을 토로하고 싶지만 주위에 남아 있는 사람이 없죠.


우리는 스스로 침묵합니다. 지금의 경쟁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를 애써 외면합니다. 영화 속 미리(손예진)와 시원(김우승)은 시간이 흐르면서 만수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미리와 시원 모두 사람을 죽이는 행위가 나쁘다는 것을 알죠. 하지만 만수의 살인을 애써 모른 척합니다. 그래야 좋아하는 테니스를 치고, 사랑하는 반려견과 함께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거든요. 그러니 정의롭지 않고 모순적이어도 참아야 하죠. 어쩔 수가 없습니다.




만수는 왜 치아를 뽑았나

해고를 당한 만수는 썩은 치아 때문에 치통에 시달립니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볼을 움켜쥐게 만드는 아주 거슬리는 존재죠. 썩은 치아와 치통은 ‘모순에서 오는 고뇌’를 의미합니다. 내가 먹고살기 위해 타인을 짓밟아도 되는 걸까?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분명 나쁜 행동인데? 그럼 나와 내 가족은 이대로 길바닥에 나앉아야 하란 말인가?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받는 고민이죠.


그래서 만수는 치통에 시달리는 동안에는 살인을 계획하면서도 주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구범모의 머리에 화분을 떨어뜨리려 고민할 때만 해도 만수는 살인이 얼마나 나쁜지 잘 알고 있습니다. ‘내 일자리를 위해 과연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하죠. 구범모를 죽이는 일은 머뭇거리다 겨우 해냈고요. 고시조를 죽인 후에는 뒤처리를 위해 시체를 잘라야 했는데, 끔찍한 일이라는 생각에 결국 하지 못했죠.


하지만 박선출의 집에서 술에 취한 만수는 깨닫습니다. 내가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이 이들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을요. 영화 제목처럼 ‘어쩔 수가 없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 이후 만수는 불합리하고 모순적인 시스템에 대해 고민하지 않기로 합니다. 썩은 치아를 강제로 뽑아버리는 거죠. ‘앓던 이를 뽑아버린’ 만수의 표정은 고통스럽다기보다 속 시원하게 그려집니다.


이후 만수는 더 이상 살인에 고민하지 않습니다. 박선출을 죽이는 방식은 굉장히 끔찍한데요. 만수는 예전처럼 망설이지 않죠. 오히려 만수는 박선출을 살해하지 않으면 앞서 죽여 버린 구범모와 고시조에게 미안한 일이 된다는 소시오패스 같은 말을 내뱉습니다. 살인 도중 아내에게 영상 통화가 걸려오자 태연하게 받는 모습도 보여주고요. 끝내 제지회사 재취업에 성공한 뒤에도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이나 미안한 모습은 전혀 드러내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enm_media_250909_21-2.jpg

먹고 살려면, 자녀가 사랑하는 반려견과 살려면, 아이에게 수준 높은 음악 교육을 제공하려면, 아내를 지키려면, 내가 좋아하는 온실 공간을 지키려면,



정말 어쩔 수가 없거든요.




환경을 파괴하는 독서

현대사회의 모순은 일자리 경쟁에서만 나타날까요? 박찬욱 감독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영화 도중 만수는 유튜브에서 박선출의 인터뷰를 시청합니다. 박선출은 이렇게 얘기하죠. “제지회사가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다. 재활용을 열심히 한다” 하지만 영화 맨 마지막에는 제지회사 기계가 나무를 베어버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종이는 본질적으로 나무를 베어 만듭니다. 우리가 종이책을 더 많이 읽고 구매할수록 우리는 환경 파괴에 가담하는 꼴이죠. 제지회사, 출판사, 서점,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들이 감춘 진실입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종이와 환경파괴의 관계처럼 현대 사회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숱한 불편한 진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울릉도 괭이갈매기는 비행기를 피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