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면 거기 꼭 가봐요. 주중에 가야 경쟁이 덜해서 회사 다니면서 가기는 어렵더라고요.
전 직장 동료의 강력한 추천으로 방학 체험학습 후보지로 바로 올려 둔 박물관, 오디움(Audeum)이다.
무료 전시로 운영되어서 티켓팅의 경쟁이 상당히 치열하다고 하던데, 정말로 예약이 열리는 화요일 오후 2시엔, 시간 맞춰 접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약 500여 명의 접속자들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아마 Prime time 인 금요일 오후나 주말 시간으로 사람들이 몰렸는지, 내가 노리던 평일 오전 시간은 많은 타임에 선택지가 남아있었다. 역시 방학을 맞이한 자 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Audio + Museum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오디오(음향) 박물관이다.
KCC의 회장님이 만든 문화재단에서 운영하고 있고, 상당히 오래된 역사적 가치가 있는 음향기기들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년에 개관 후 상설 전시로 이어오고 있는 전시 '정음'은 역사 속의 Hi-Fi 오디오를 다루는 꽤나 규모 있는 전시다. (웹사이트 링크)
100% 도슨트와 함께 이동하는 투어인 줄 모르고 나의 예약 시간인 10시에 맞춰갔더니, 막 투어가 시작된 뒤였다. 재빠르게 가방을 락커에 넣고 직원분들의 안내에 따라 전시 투어에 합류했다.
박물관에 입장하기 전부터 특색 있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외벽에 파이프로 마감이 되어있었는데, 소리의 파동, 박물관의 테마인 음악을 보여주는 듯했다.
나중에 이러한 테마는 건물 내부의 방음구조와 화장실의 파이프 세면대까지 연결되는데, 음악이라는 테마를 건물 전체에 심어두는게, 그만한 자유도를 가지고 건물을 만들고 전시를 꾸려간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 (역시 돈의 힘!)
전시관에 입장하는 방식 역시 독특했는데, 입구가 큰 길가가 아닌 뒤편에 있었다.
입장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바깥 계단을 통해 지하층으로 내려가야 했다. 이 경험 역시 독특하다.
(아무래도 급할 때 입구 찾기는 어렵겠다.)
10시 예약 시간에 맞춰 도착하니 이미 도슨트 투어가 막 시작된 직후였다.
빠르게 짐을 맡긴 뒤 안내에 따라 합류했다.
도슨트와 여러 다른 관람객들과 함께 전시관을 따라 이동하며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상당히 컸다.
전시실은 1번부터 7번까지 나뉘어 있었고, 테마에 따라, 혹은 스피커의 발전에 따라 따라갈 수 있었다.
먼저는 원목으로 제작되어 멋지게 생긴 가정용 Hi Fi 스피커들이 반겨주었다.
소형화의 전신이 된 JBL의 초기 스피커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이동하다 볕 좋은 곳에서 멋진 홀을 만났다.
이곳에는 음향기기의 전신이 된 축음기가 위치해 있었다.
에디슨의 축음기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에디슨 축음기는 틴 포일(Tin foil) 실린더에 녹음본이 저장되는데, 대량 생산이 어려운 구조였다고 한다.
청음 하니 소리가 깨끗하진 않지만 꽤 컸다.
홀 끝에는 대형 괘종시계처럼 생긴 최초의 상업 주크박스가 위치해 있었다. 아쉽게도 청음은 어려웠다.
거진 랜덤으로 작동이 되었다 되지 않았다고 한다고 하니, 아쉬울 따름이다.
열정적인 도슨트 님의 설명과 청음 시간들이 알차고 즐거웠다.
특히 웨스턴 일렉트릭 사의 스피커 청음이 즐거웠다.
도슨트님은 다른 도슨트님들과 함께 각 스피커에 잘 어울릴 곡들을 고르신다고 이야기해주셨다.
현실감 넘치는 사운드로 재즈 곡들을 들려주셨는데, 그렇게 귀가 즐거울 수가 없다.
오르골만 모아둔 홀을 투어의 끄트머리에 만날 수 있었는데 엄청 고급지게 생긴 오르골이 전시되어 있었다.
상자 안에 담긴 음악이라니. 그 시절의 사람들에겐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
차근차근 발전한 오르골은 정교함의 수준이 점점 시계만큼 높아져, 결국 스위스가 이 정교한 기술의 정점에 서게 되었다고 하더라.
크게 방식은 원통형 '실린더' 방식과 '디스크'방식으로 나뉘는데, 둘은 차후 두 가지 스타일의 축음 방식의 전신이 된다.
앞서 본 에디슨의 원통형 축음기와 에밀 베를리너의 디스크 레코드가 이를 계승한 것이라고 한다.
(에밀 베를리너의 디스크 레코드는 후에 LP(바이닐)로 이어지게 된다.)
역시 하늘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는 법.
이 오르골을 청음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모두 너무 청아하고 고급스러운 소리를 들려주었다. 단순히 음계뿐만 아니라 타악기와 함께 음악을 들려주는 버전도 직접 들어보았는데, 라이브 음악 외엔 선택지가 없던 그 시절에 고가로 팔릴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부자들의 혼수품으로 많이 팔렸다고 한다)
도슨트 투어의 종착지는 지하의 청음실이었다.
이 곳은 수십만장의 LP와 수만장의 CD도 함께 저장되어있었는데, 그 가치 또한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한다. 그것들 뿐일까, 현재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스피커 세트와 백년 가까이 된 댄스 오르골이 보관되어있다. (심지어 작동하는 제품이라고 하니, 충격적이다)
이곳에서는 대형 Hi Fi 스피커와 마치 놀이공원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웅장한 대형 오르골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마지막 청음은 조금 더 긴 시간 동안, 여러 곡을 연달아 진행되었는데,
재즈곡과 크리스마스 성가, 이은하의 봄비(재즈버전)를 들을 수 있었는데, 조용히 음악에 집중해보았다.
마치 실제 공연이 앞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아쉽게도 Th. Mortier의 댄스 오르골은 불과 몇 주 전 기능에 이상이 생겼다고 한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면 와서 꼭 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오르골은 약 120년의 시간을 차지했고,
물리적으로 녹음하고 재생하는 축음기는 약 50년,
그 이후 약 100년은 전기로 작동하는 스피커가 거의 같은 메커니즘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생각보다 길지 않은 역사다.
그리고 생각보다 빠른 진화다.
이제 음향 기술은 어디로 갈까.
완전히 새로운 방식일까, 아니면 또 다른 해석일까.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다음 100년은 궁금해진다.
오디움 탐방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