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옵션보다 값진 것

스타트업이라 다행이야 | 2편

by 마케터호야

스타트업을 첫 회사로, 혹은 커리어 초반의 선택지로 고민한다면 꼭 계산해 보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대체 연봉은 얼마나 낮은지, 스톡옵션은 몇 주나 받게 되는지, 상장하면 얼마쯤이 될는지.

스프레드시트를 켜거나,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거나 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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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스타트업의 연봉은 낮은 경우가 많습니다.

중소기업 수준이면 다행이고, 엄청난 투자자를 안고 시장에 뛰어드는 태생부터 거대한 스타트업이 아니라면, 대기업은 애초에 비교 대상이 아닌 경우 대부분이죠. 그래서 보통 이러한 연봉 격차를 상쇄해 주는 중요한 장치로 스톡옵션을 부여합니다.


그렇다면, 스톡옵션의 현실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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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벤처기업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스타트업의 IPO 가능성은 0.21%입니다.(5년(2018~2022년) 평균 기술기반 법인 창업 기업 수 43,556개 대비, 코스피·코스닥 연평균 상장 성공 기업 92개를 나눈 것.)


다시 말하면, 500개의 회사 중 1개 회사만 상장에 성공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설령 상장이 된다 해도, 락업 기간이나 주식 시장의 흐름에 따라 실제로 손에 쥐는 금액은 계산과는 크게 다를 수 있고요. 스톡옵션만 바라보고 합류하는 건 사실 말이 안 됩니다.


저는 어땠냐고요? 물론 저도 그 계산을 해봤었는데요, 스톡옵션을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로 취급하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이미 합류한 구성원들, 그리고 사업 아이템을 보면서 희망을 가질 수 있었거든요. 좋은 일이고, 이 사람들과 이 기술이라면 잘 될 거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꽤 낙관적인 판단이었는데, 일을 하며 점점 가시화되는 걸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불가능한 꿈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여기서 배우면서 성장하고, 저것까지 보너스로 현실로 만들어볼 수 있겠다는 일종의 야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건 분명히 기억해야 해요. 상장은 극히 희박한 확률입니다. 스톡만 바라보고 버티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요.


실제로 중간에 나간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스톡옵션을 포기하고요. 각자 이 회사에서 기대하던 것들이 달랐기 때문일 겁니다. 더 높은 연봉, 더 빠른 성장을 위한 환경. 그걸 찾아 나간 거예요. 특히 초기에 합류한 팀원들 대부분은 이미 경력이 있는 기술자들이었고, 본인에게 필요한 것과 이곳에서의 아쉬움을 측정할 명확한 기준이 이미 세워져 있었을 거예요.

그렇다면 저는 왜 남았을까요?


비교는 했습니다. 그래도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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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합류 초기엔 많이 비교가 됐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와, 스타트업이라고? 멋진데?'라고도 얘기했었던 것 같지만, 글쎄요.


대기업에 간 친구들은 연봉이 달랐어요. 다루는 일의 스케일도 달랐고요. 수억짜리 캠페인, 이미 수백만 명이 쓰는 제품, 글로벌 기업, 좋은 복지. 전문직은 말할 것도 없고요.


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서비스를 알리고 있었죠. 번듯한 회사가 생각보다 많은 걸 해줄 수 있다는 걸, 그때 주위를 보며 느꼈습니다.


그래도 나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선택한 길이었으니까요. 괴로워하기보다, 여기서 만들 수 있는 최선의 경험을 쌓아가자고 했어요. 이게 내 길이라는 걸 확인해 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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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이나 되는 시간을 이곳에서 보낼 수 있었던 건, 사실 일이 재미있었기 때문이에요.

수십 번의 시도 끝에 콜드 이메일 마케팅에서 처음으로 research collaboration 파트너십 계약이 발생했을 때.

첫 뉴스레터 오픈율이 시장 벤치마크를 넘겼을 때. 첫 웨비나에서 양질의 ICP 리드가 모였을 때.

Salesforce 육성 자동화가 작동하는 걸 확인했을 때.

처음 만든 것들이 눈앞에서 작동하는 걸 볼 때마다, 만족감이 있었습니다.


회사가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 한다는 것.

마케팅 전략 하나도, 채널 하나도, 다 처음 시도해 보는 것들이었기에, 잘 되면 우리가 맞은 거고, 안 되면 다시 짜는 거였죠. 틀려도 괜찮은 환경에서, 정답을 함께 찾아가는 그 과정이 생각보다 즐거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도 같이 성장하고 있었어요. 처음엔 시키는 걸 해내는 게 전부였는데, 어느 순간 먼저 제안하고, 먼저 기획하고, 결과를 설명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할 줄 아는 것이 많아진다는 것, 나의 회사에 대한 기여도가 높아진다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요.


회사가 달라지면 나도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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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비즈니스의 확실한 체크포인트는 2023년, 그러니까 입사 4년 차쯤이었어요.

매출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처음으로 가시적인 매출 성장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4년 차에 30억, 5년 차에 50억, 6년 차에 100억대. 마이너스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왔다는 게 실감이 됐어요.


그리고 그 매출 안에 마케팅 기여 고객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걸 직접 확인했을 때 — 내 선택에 따른 결과, 그 영향력이 크구나 싶었습니다.


흔히 한 회사에서 2-3년 넘게 있기 어렵다고 하지만, 이렇게 회사가 다이내믹하게 달라지는 환경이라면 또 다릅니다. 직원이 열 명 남짓이던 시절, 서른 명이 넘어가던 시절, 예순 명, 백 명. 숫자가 바뀔 때마다 회사는 달라져야 했어요. 같은 회사인데 다른 회사 같은 느낌이랄까요. 시스템이 생기고, 역할이 세분화되고, 대화하는 방식도 바뀌었습니다.


저의 역할도 바뀌었어요. 마케팅 사원으로 시작해서 마케팅 리드로도 역할을 맡아보게 됐습니다. 단순히 실행하는 사람에서, 조금 더 깊은 고민으로 나아가 방향을 잡고 팀을 이끄는 사람으로. 그 변화가 또 제게 새로운 도전과제가 되었습니다.


리드로 일했던 1-2년간은 그 확신이 더 깊어진 시간이었습니다. 방향성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숫자와 팀이 함께 말해주고 있었으니까요.


결국 볼 수 있었던 0.21%의 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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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결국 증권거래소까지 다녀왔습니다.

스톡옵션도 받았어요. 입사할 때 500개 중 1개 확률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을. 마냥 낙관적이었던 그 판단이, 결국 현실이 됐습니다.


근데 솔직히,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상장 날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따로 있어요. 처음으로 계약이 발생하던 날, 매출 그래프가 처음으로 꺾이던 날, 직접 만든 시스템이 처음으로 돌아가던 날. 직원이 열 명이던 회사가 백 명이 넘어가던 날.

그 순간들이 스톡옵션보다 값진 과정이었습니다.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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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스타트업을 첫 선택지로 고민하고 있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스톡이 의미 있으려면 회사가 성장해야 하고, 회사가 성장하려면 내가 기여해야 하고, 내가 기여하려면 여기서 뭔가를 만들어봐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쌓이는 것들 — 처음으로 만들어본 경험, 내 손으로 움직인 숫자들, 제로에서 시작해 어딘가에 도달해 본 감각 — 이건 어디서도 살 수 없어요.


가슴이 두근거리나요?

무엇을 위해 결정하고자 하는지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봐요.

그 답이 있다면, 충분히 좋은 결정일 겁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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