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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호야 Sep 24. 2024

위기의 마케팅팀

마케팅팀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합니다.


이제 막 웹사이트 리뉴얼을 끝내고 숨을 돌리고 있던 3월 어느 날. 갑작스레 마케팅팀 회의가 소집됐다.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 잠재고객 발굴을 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잘 안 되고 있다는 대표 구찌의 의견이었다. 아울러 다가오는 2분기 마케팅팀의 프로젝트를 직접 리드하겠다는 내용도 전달됐다.


새로운 시도가 부족했던 건 인정할 수 있지만, 어떤 활동을 새로운 시도로 정의할 것인지, 새로운 시도 횟수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전혀 합의가 안된 채로 전달된 내용이었기에 조금 당황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게다가 반 이상의 인력이 웹사이트 리뉴얼에 투입됐던 상황이 잘 전달되지 않은 듯해 보였다.


거기에 더해 새로 리뉴얼한 웹사이트에 대한 거침없는 의견도 전달됐다. 첫 화면에서의 행동 유도가 불분명하고 메시지가 뚜렷하지 않다는 의견이었다. 웹사이트는 회사의 대문 역할로, 사용자의 행동 유도가 분명해야 한다는 대표의 생각이 투영된 평가였다.



한 분기동안 매주 스프린트를 진행해 12개의 프로토타입을 제작할 겁니다.


대표가 제시한 방법은 스프린트였다. 실리콘벨리의 스타트업이 과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알려진 스프린트는 5일간 고객문제 발굴-해결책제시-스케치-프로토타입제작-인터뷰를 진행해 최종 결과물을 빠르게 만들어 내는 방법으로, 그동안에도 크고 작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가 써오던 방법이었다.


대표의 지휘 하에 3명의 마케터와 1명의 디자이너가 소집되었고, 대망의 스프린트 분기가 시작되었다. 매주 새로운 스프린트를 진행하는 건 회사에서도 처음 해보는 일이었기에 우려와 걱정이 동반되었다. 그렇게 2023년 2분기, 릴레이 스프린트가 시작되었다.



마케팅 활동만으로 1명의 유료 고객 만들기


2023년 4월 4일, 첫 스프린트가 진행됐다. 아직은 스프린트라는 방법이 익숙지 않아, 책을 미리 나눠 읽고 방법을 익혔다. 첫 스텝은 우선적으로 타깃 할 고객군을 설정하고, 그들이 겪는 문제 중 이번 프로토타입에서 해결할 부분을 정하는 것이었다.


칠판에 고객의 여정을 그려보았다. 맨 오른쪽에 구매라는 최종 목표지점을 적어두고 고객이 어떤 과정을 구매까지 오는지 세부적으로 살펴보았다. 고객도 여러 가지로 나눠서 살펴보기 시작했다. 직접 그려보자 항상 고객이라고 생각했던 의사도 생각보다 더 많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 유형의 고객이 유료 주문을 하기까지의 과정도 처음으로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환자와의 대면, 의심질환 확인, 최종 진단, 홈페이지 가입 등 고객의 여정을 그려보니 각 단계에서의 문제점이 눈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홈페이지에서 구매로 전환되는 과정은 어떤 경로를 통해도 해결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 첫 프로토타입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하나의 페이지에서 빠르게 결제를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그동안 사용해 온 쇼핑, 결제 시스템을 벤치마크하고 특징을 분석해 봤다. 분석 결과를 우리 제품에 적용해 하나의 페이지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프로토타입은 처음이라


프로토타입의 quality 은 실제 publish 기준이 100이라면 80 정도의 quality 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실제 동작은 어려워도, 외관은 실제로 돌아가는 제품처럼 보여야 했다. 전체 흐름을 잡는 담당과 자료수집 담당과 문구작성 담당, 디자인 담당, 인터뷰 담당으로 나누어 바쁘게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냈다. 담당을 정했지만 처음이다 보니 각자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불분명했다. 결국 자료수집 담당과 문구작성 담당은 계속 같이 고민하며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나갔다. 


그렇게 첫 회의 후 4일 만에 첫 프로토타입이 제작됐다. 스프린트의 마지막 단계는 제작한 프로토타입을 직접 사용하게 한 후 인터뷰 하는 것이다. 원래는 인터뷰를 위한 고객을 섭외해야 하지만, 실제 출시를 위한 프로토타입은 아니기 때문에 사내 인원 중 5명을 무작위로 골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는 구찌가 담당하고, 나머지는 온라인으로 사용자의 행동을 지켜보며 문제점과 개선 사항을 적어 내려갔다.


첫 프로토타입은 5명 중 2명만이 최종 행동을 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절반도 안 되는 인원이었지만, 일주일 만에 빠르게 만들어 낸 페이지를 누군가가 직접 활용하고, 평가까지 듣는 과정이 조금은 잔인하기도 했지만 굉장히 높은 효율성을 느낄 수 있었다.



스프린트의 굴레에 빠지다


구찌는 스프린트를 모든 일정 중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에 잡혀 있던 미팅과 회의도 스프린트 일정을 피해 재조정됐다. 사실 원래 스프린트는 5일간 모든 일정을 비우고 하루종일 해야 했지만, 현실상 모든 업무에서 제외될 순 없기에 업무와 스프린트를 병행해야 해야만 했다. 팀원은 기존 업무가 끝나면 스프린트를 진행하고, 다시 기존 업무를 하며 하루하루를 바쁘게 지냈다.


인터뷰에서 지적된 부분을 수정하거나 개선할 고민을 할 시간도 없이, 그날 바로 다음 프로토타입을 위한 회의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지속적인 새로운 시도를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인 만큼, 실행보다는 새롭게 기획해 나가는 것에 방점이 찍혔다. 


매일매일 회의실에 모여 열띤 회의를 하는 모습에, 전사적으로 많은 관심도 받게 됐다. 그 결과물과 성과에 대해서도 끊임없는 질문을 받곤 했다. 하지만 실행을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고, 내부 직원 5명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로 그 성과를 갈음했다. 팀원들도 결과물에 대한 성과가 없으니 보람을 느끼기 힘들어 지쳐가고 있었다.



대표와의 1on1


매주 쉬지 않고 진행되던 스프린트 일정에 더해 대표 구찌와의 1on1 미팅도 2주에 한 번씩 진행됐다. 올해 들어 새롭게 실시한 리더와의 1on1 미팅에 대표와의 시간도 추가된 것이다. 대표와 직접적으로 밀도 높은 이야기를 나눈다는 점에서는 좋은 제도였지만, 문제는 너무 신랄한 그의 피드백이었다. 


개인의 현상태에 대해 점수를 매기고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점을 가차 없이 전달했다. 솔직한 피드백이라는 이름하에 이루어진 대화였지만 업무에 스프린트까지 더해져 지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다양한 의견에 팀원들은 알게 모르게 내상을 입었다. 팀원들과 대표의 사이는 알게 모르게 점점 더 어색해졌다.


“답을 정해놓고 평가를 하는 게 아니고, 앞으로의 방향을 설정하고 같이 노력하는 방향의 회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표의 신랄한 평가가 반복되자 고야는 떨리는 목소리로 솔직한 의견을 전했다. 스프린트가 거의 끝나가던 무렵이었다.



스프린트가 남긴 것들


한 분기동안 연구자를 위한 견적 문의, 미진단 데이터 무료 분석, 웨비나 이후 특가 제안, 제약사 페이지, 공동연구 결과 리포트, 특정 질병을 위한 가이드, 증상 검색, 유통사 모집 등 12개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그중 세 개의 프로토타입은 실제 실행까지 이어졌다.


목표였던 1건의 유료전환도 이뤄냈다. 연구를 위해 무료로 서비스를 이용해 본 고객들을 대상으로 유료로의 전환을 계획했고, 스프린트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보낸 메일에서 온 반응이었다. 비록 스프린트만으로 만들어진 결과는 아니었지만, 스프린트가 큰 영향을 미쳤음은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스프린트가 남긴 것은 이 외에도 더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한 뒤, 다음 분기가 왔다.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이해와 조금 더 지친 모습으로 다시 평소와 같은 업무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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