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가기로 마음 먹은 쎄한 면접 모음집
주변인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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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위와 같은 단계를 거쳐 현재 세 번째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공식적인 이직은 두 번이지만 그 과정에서 단기간에 약 서른 번의 면접을 봤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면접관과 회사가 파악되기 시작했다. 대놓고 민감한 질문을 한다던가 어설프게 떠보는 행위는 아니었고, 나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를 보는 눈이 길러진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안 가기로 마음먹게 만든 면접 케이스 몇 가지를 공유하고자 한다. 소위 말해 쎄이언스* 모음집이다.
*쎄이언스: 쎄한 느낌+사이언스 (쎄한 느낌은 과학이다)
1. 밥값 하니?
면: 현재 연봉과 희망 인상률이 어떻게 되시죠?
나: ####만원, ##%입니다.
면: 저희가 그 연봉 드리면 얼마어치 일할 수 있어요?
연봉은 이미 다른 곳에서 치열하게 정량적, 정성적 평가를 거치며 받아 온 나의 능력치를 대변하는 금액이다. 해당 질문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했다.
연봉과 실제 능력에 갭차이가 있음을 가정하고 간극을 물어보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내 귀에는 ‘밥값 하니?’ 정도로 들렸다.
나: 받는 만큼 하는 것은 디폴트 값이고 110%, 120%를 해내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게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면: 오호, 나는 일당백이다?
면접관이 실소를 터뜨리며 위와 같이 말했을 때, 정말 의아해서 물어보고 싶었다. 혹시 이 회사는 밥값을 못하는 사람들만 다니나요?
2. 엄중한 경고
면: 솔직히 말하면, 저희는 조직이 어느 정도 수직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업 문화가 보수적일 텐데 적응 가능하시겠어요?
조직이 효율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수직적인 형태를 띠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는 나 역시도 일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걸 면접 자리에서 공표하는 것은 무게가 다르다. 이 경우 높은 확률로 구성원들이 수직적인 조직을 만들고자 부단히 노력한다는 뜻이다.
바깥에서는 상호 존중이라는 기업 문화 정착을 위해 다들 노력하는 분위기다. 사원과 대표가 서로를 님으로 칭하는 님문화, 반바지와 쪼리를 신고 출근해도 이상하지 않은 자율복장 문화 등...
세대가 섞이고 융화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변화들을 천천히 받아들일 의지가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굳이 굳이 역행하는 것이 아니라.
3. 칼퇴 vs 성장, 택 1
면: 우리 회사는 칼퇴와 워라밸은 지향하지 않아요. 모두가 조직의 성장을 최우선으로 여깁니다.
왜 칼퇴와 성장이 나란히 언급될까? 정말 칼퇴를 하면 기업의 성장이라는 목표 달성이 어려워질까? 이건 지원자 측에서 워라밸이 없다고 아쉬워할 문제가 아니라 기업 측에서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이 많은 인원이 매일 8시간씩 일해도 성장하지 못하는 걸 이상하게 생각해야 한다. 초과근무하는 만큼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조직에서는 8시간 동안 집중해서 10가지 일을 해낸 사람보다 16시간 동안 집중해서 5가지 일을 해낸 사람이 더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생겨난 조직 문화와 분위기는 점점 더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우리‘ 자체에 고취되게 만든다.
직원을 50명으로 가정해도, 모두가 하루 8시간씩 일했을 때 매일 400시간, 매월 8,000시간의 노동이 발생하는데, 그럼에도 성장하기엔 부족해서 모두가 초과근무를 밥 먹듯이 하고 있다면 아래 두 가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1. 구성원 대부분의 업무 능력 or 효율이 떨어진다.
2. 현재 인원으로는 감당이 안될 만큼 업무량이 많다.
1번이 문제면 구성원들의 업무 능력 or 효율을 향상시킬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 인력 교체까지 감행하고서라도. 2번이 문제면 신규 인원을 채용해야 한다. 사람은 회사 컴퓨터처럼 전원만 꽂아두면 풀로 사용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쩐지 유난히 지쳐 보이던 그 회사 면접관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몸은 피곤해도 눈은 희망으로 가득 차서 반짝거리더라-고 말해줄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현실 속 우리는 몸이 피곤하면 그냥 피곤한 사람이 된다.
내가 입사하면 한 짐 덜어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했는지 합격 통보를 해왔지만, 난 그들이 푹 쉬었으면 좋겠다는 오지랖 넓은 생각을 하며 거절 의사를 밝혔다.
4. 어디까지 내려가는 거예요?
면: 이쪽 업계에 대해 분석해 보셨죠?
나: 네.
면: 그렇다면 업계 테이블이 낮은 편인 것도 아시겠네요.
나: 네, 대략 알고 있습니다.
면: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어디까지 낮출 수 있는지 말해주세요.
이직의 전제조건은 연봉 상승이지만 그게 불가한 경우 기업 측에서 근무 환경 개선이나 스톡옵션을 대안책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혹은 회사가 가진 잠재력만으로 설득하기도 한다. 이 경우는 이도저도 아니었다. 대안책도, 전망에 대한 설득도 없이 업계가 전반적으로 그러하니 발을 들이려면 응당 맞춰서 내려와야 한다는 뉘앙스.
인재 채용은 투자의 한 형태라 회사가 사업을 전개하는 방식까지 엿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곳은 기회가 왔을 때 예상보다 지출이 크거나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금액이라면 ‘저 포도는 실 거야’ 하고 지레 포기할 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나: 연봉 동결이 마지노선일 것 같습니다.
면: 협의의 여지가 전혀 없으시네요?
이미 갈 생각이 없어진 터라 연봉 동결이 마지노선이라고 대답했는데 그쪽에서는 살짝 서운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며칠뒤 의외로 합격 연락이 왔고, 당연히 거절했다.
연봉은 해당 기업이 나와 일하고 싶어 하는 정도를 나타낸다. 나의 가치를 알아봐 주고 적극적으로 다가와주는 기업은 언제나 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재 회사를 만나 이직에 성공했기 때문에 다시 한번 이곳에 안 가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5. 연봉이 60초 뒤에 공개됩니다.
면: 현재 연봉과 희망인상률 말씀해 주세요.
나: 여기서요?
입사 전 당연히 물어볼 수 있는, 아니 물어봐야만 하는 질문이지만 문제는 또래의 실무자가 들어와 있는 자리라는 점이었다.
연봉을 누설하는 것은 해고 사유에 해당할 정도로 예민한 정보이기에 보통 인사담당자만 남아 별도로 협의하는데, 이를 팀장뿐 아니라 실무자까지 있는 자리에서 물어본 것이다. 나와 비슷한 연차로 보이던 실무자 역시 갑자기 듣게 된 남의 연봉 정보에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추후 합격했다고 연락이 왔지만 차마 내 연봉을 다 아는 팀장, 동료와는 일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는 이런 판단 기준을 주관적이고 예민하다고 느낄 수 있다. 같은 상황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하며, 각자의 첫 느낌이 곧 정답이다.
‘내가 예민한가? 이 정도 일로 기분 나빠해도 되나?’라는 생각은 필요 없다. 그 순간 기분이 나빴다면 나란 존재는 이런 상황을 불쾌해하는 사람인 것이고, 거기서 판단은 종료되어야 한다. 내가 이상한가, 내가 예민한가, 내가 나약한가, 내가 배가 불렀나 등등의 셀프 가스라이팅은 지양하길 바란다.
세상은 넓고 회사는 많다. 1년에 한 번씩 이직을 해도 100개 회사를 채 못 다녀보고 죽는다. 이직을 두려워하지 말자. 잦은 이직으로 더 이상 이직이 안되면 어떻게 하냐고? 우리에게는 전직, 사업 그리고 더 많은 선택지들이 있다.
남들이 ‘회사 밖은 지옥이다‘, ’어딜 가나 똑같다’라고 초치면 어떤가? 그 좋은 회사 계속 다니라고 하면 된다.
나는 몽상가 취급 받더라도 끊임없이 더 나은 회사를 찾아다니기로 했다. 이직을 하든 회사 밖 다른 세상을 찾아 떠나든 나를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