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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획자J Sep 22. 2023

두 번째 회사에서 퇴사한 이유 1

상장회사는 마르지 않는 샘물?


첫 번째 회사는 대기업이었다. 퇴사 사유는 코로나로 인한 업계 타격업무 과중.


그러던 중 만나게 된 두 번째 회사는 만족스러운 처우를 제안했고 면접관들의 태도도 나이스했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입사한 이곳에서 퇴사를 말한 것은 딱 1년 만의 일이었다.


사유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마르는 샘물 같은 회사였다.


상장회사는 마르지 않는 샘물?


이곳은 상장 IT 회사였다. 흔히들 상장사는 주주들이 있는 한 자본금이 마를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곳 역시 ‘우린 안 망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짧지 않은 업력에 자본금만 잠식하고 있으면서도,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대신 주가 상승에 도움이 될만한 기사를 내는 것에 더 관심을 가졌다.


서비스를 사용 중인 고객들의 요청 사항은 언제나 뒷전이 되었다. 우리 서비스를 쓰는 사람들은 주주일리가 없다는 전제를 깔고서. ‘이 정도면 훌륭하지, 어디까지 해 줘야 해?‘로 일관하는 분위기는 고도화를 제안한 사람을 내부 공수만 축내는 천하의 불평쟁이로 만들어버리는 힘이 있었다.


서비스는 점차 내부 구성원끼리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하향평준화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기존 서비스 보완이 자꾸만 밀리는 상황에서도 신규 서비스는 계속해서 출시되었다. ‘사업 확장’, ’성장 가능성’ 같은 것들만큼 주가 올리기 좋은 키워드는 또 없으니까.


이곳을 다니며 가장 많이 떠올랐던 말은 80년대 산아정책 표어였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IT 회사에서 고도화도 시키지 못하고 조만간 사장될 신규 서비스들을 덮어놓고 낳고 있었다. 태어난 서비스들에게 먹여줄 인력과 공수라는 밥은 언제나 부족했다. 현상태로는 내가 고객이라도 3초 이상 머물지 않을 것 같은 서비스였다.


그런데 이 회사는 서비스 퀄리티에 비해 지나치게 운이 좋았다. 새로 론칭한 신규 서비스의 첫 계약 상대로 대기업이 들어온 것이다. 이제 낮은 상품성을 단기간 내 개선시켜 초기 레퍼런스를 탄탄하게 구축하고, 서비스를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구성원들은 이 기회를 기꺼이 걷어차려고 하고 있었다.


- 우리가 그것까지 해 줘야 해? 1년 걸린다고 해.


세상 어떤 IT회사가 상용 배포 후 계약까지 성사시킨 서비스를 고도화시키는 데 1년을 부르며, 세상 어떤 제휴사가 이를 용인해 줄까? 올해 예산을 태웠는데 그 결과물을 내년 사업보고서에나 넣을 수 있다니. 게다가 제휴사 측에서 요구한 수정 사항들은 그들이 깐깐해서가 아닌, 고객 입장에서 충분히 불편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사안들이었다.


‘개선 작업에 바로 착수하겠지만 신중하게 하려다 보니 최대 1년까지 걸릴 수 있다’고 에둘러 전달했다. 당연히 제휴사는 헛웃음을 쳤다.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오래 걸리는 거냐고 물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본인들이 직접 하청업체를 구해서 시키면 몇 주만에도 끝낼 수 있는 일이었으리라. 내부 개발 일정이 밀려있어서 그러니 양해해 달라, 꼭 최우선 과제로 앞당겨 진행하겠다고 통사정을 했다.


다행히 나와 마음이 맞는 몇 명의 담당자들이 있었다. 우리는 함께 제휴사의 마음을 어르고 달래며 동시에 내부 구성원들을 설득했다. 이들의 요청 사항은 장기적 관점에서 우리 서비스에 꼭 필요한 개선 사항이라고. 하지만 대표마저도 ‘싫으면 쓰지 말라고 해라’라는 말을 남기고 회의실을 떠났다. 지지부진한 의사 결정에 고도화는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결국 제휴사는 위약금을 물고서라도 계약을 해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충격적인 건 다들 ’그래 그래 그러자~‘라는 식의 태도였다는 점이다. 정말 다들 이 큰 건을 불명예스럽게 놓쳐도 상관없단 말인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도입 사례 중 거의 최고인데 이걸 걷어차고 어디에 영업을 해서 서비스를 살리겠다는 걸까?


그냥 우리가 해요.


약간은 무모했다. 마케터와 AM(Account Manager, 제휴매니저)들만 모인 이 무리에서 빽단을 자유자재로 손댈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빽단: Back-End, 고객에게 보이지 않는 개발 영역


그러나 우리가 가진 무기가 있다면 이 제휴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무조건 되게 만들 예정이었다. 빽단에서 해결이 안 되면 앞단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뜯어고쳐서라도 고도화하리라 다짐했다.


다들 직무와 상관없는 피그마, 포토샵, 소스코드를 띄워놓고 개선점과 해결방안을 매일 같이 고민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누군가는 1년 걸린다고 했던 일이 2주 만에 윤곽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그만 변화의 물결이 일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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