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말라가는 샘물
그렇게 비개발자들끼리 모여 ‘우리 선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로딩 시간 개선. 서버 용량은 작은데 고해상도 콘텐츠를 그대로 업로드 가능하게 해 놔서 페이지가 날로 무거워졌다.
개발팀에 ‘로딩 시간을 단기간 내 개선하려면 모든 콘텐츠 크기를 줄이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묻자, 그건 맞지만 우리 팀은 바빠서 못한다며 거절 의사부터 내비쳤다.
- 직접 할 테니 권장해상도랑 용량만 알려주세요.
- 이걸 직접 다 한다고요?
정말 하나하나 다 수정하려 들진 몰랐던 모양이다. 권장 스펙을 받아 들고 본격적으로 콘텐츠 용량 줄이기 작업에 들어갔다. 포토샵으로 파일 용량과 해상도를 줄여 재업로드하는 방식이었다. 단순무식했지만 여러 명이 야근하며 달라붙으니 일주일 만에 끝났다. 로딩 시간이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
로딩 속도는 제휴사 측에서 언급하지 않은 부분이라 조용히 처리하려고 했는데, 작업이 끝나갈 때쯤 제휴사에서 먼저 연락을 취해왔다.
- 저희 내부적으로 매일 들어가 보고 있는데 갈수록 로딩 시간이 빨라지는 것 같아요. 뭔가 개선되고 있나요?
당연히 꼼꼼하게 볼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들은 말 그대로 매일 모니터링 중이었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신규 서비스를 도입하려는 상황에서 그 정도 퀄리티 체크는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네, 전반적으로 고도화 중입니다. 말씀하셨던 부분들도 3개월 내로 보여드리겠습니다.
- 처음에 1년 걸린다고 했을 때는 내부적으로 말이 많았는데 3개월이면 제가 설득해 볼 수 있겠네요. 감사합니다, 담당자님.
우리의 노고를 같은 회사 동료가 아니라 외부에서 알아준다는 느낌이 들어 묘했다. 그 순간 1순위 목표가 '그들에게 쓸 만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바뀌었던 것 같다.
무모하고 무식한 방법으로 일주일 만에 로딩 시간 개선을 이뤄내자, 개발팀에서 또 뭐가 필요한지 물어오기 시작했다. 대용량 데이터 일괄 처리 기능이 필요하다고 답하자, 일주일 안에 해주겠단다. 솔직히 그렇게 빨리 될 거라고는 예상 못했다. 개발자의 능력과 필요성을 체감한 순간이었다.
개발팀은 이건 개발 없이 못하는 영역인데 어떻게 해결할 생각이었냐고 물었다. 우리는 일일이 다운로드 할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개발팀은 놀라더니 웃으며 왠지 그럴 것 같아서 먼저 도와주러 왔다고 했다.
그리고 처음과 달리 우리 일을 적극적으로 돕기로 마음먹은 이유에 대해 말해주었다. 처음에는 업무 던지기인 줄 알았단다. 그런데 매일같이 야근하는 걸 보고 진짜 개발이 필요한 건이었구나 체감했다고. 개발자 몇 명이 붙으면 금방 끝날 일인 걸 알기에 더 이상 두고 보기 미안했단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비개발자와 개발자가 고루 모인 어벤저스가 꾸려졌고, 여기에 정기 회의와 업무 프로세스를 갖추게 되면서 공식적인 TF팀이 되었다. 우리는 첫 제휴건으로 대기업과의 협업을 성사시켰고, 이 레퍼런스로 다른 큰 제휴 건들을 쉽게 따낼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양동이로 일제히 물을 퍼내기 시작하면 깊은 샘물도 금세 마른다. 이곳이 그랬다. 핵심 사업의 양적·질적 확장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였다. 그럴 환경도 되었고. 그때, 누군가는 외쳤다.
신사업을 하자!
세상에. 신사업이 태어난 지 1년도 안 된 시점에 또 신사업이라니. 신신사업이라고 불러야 하나? TF팀이 신사업을 잘 이끌고 있으니 이것까지 맡아서 하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출시 1년도 안 된 이 서비스도 아직 신사업이라고, 손 볼 게 많다고 제발 신신사업(?) 출시를 미루거나 다른 인원을 붙여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미 안정화되어서 영업도 잘만 되고 있는데 여기서 손 볼 게 뭐가 더 있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고객들이 퍼블 영역을 잘 구분하지 못해 버튼만 찾다가 이탈하는 비율이 70%에 달했다. 데이터 자체 분석 시스템이 없어 일일이 로우데이터를 뽑아 하루 온종일 가공해야 했다.
여기서 신신사업을 하자는 것은, 현재 진행 중인 서비스에 대한 고객들의 불편사항은 방치하다가 외면받고 서서히 사장되도록 내버려 두라는 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신신사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비즈니스 모델이 없다는 점이었다. 일단 사업을 전개하다 보면 보일테니 보도자료부터 내자는 것.
동료들이 한 명씩 떠나갔다. 다음 회사를 정하기도 전에 내린 퇴사 결정은 우리의 상실감과 허탈함을 증명하는 듯했다. 난 신사업 관련 100페이지 상당의 인수인계서를 편찬하느라 근 한 달 정도 더 늦게 퇴사해야 했다.
떠난 후 1년, 회사는 반타작이 나 있었다. 매출과 인원 모두. 특히 우리가 담당했던 사업은 관련자들이 모두 퇴사하면서 그 당시 온보딩 중이던 신규입사자가 가장 내용을 잘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회사에서는 내 이름이 종종 나온다고 했다. 내가 혼자 하던 세 가지 업무 롤을 세 명에게 재분배했는데 세 명 다 못하겠다고 했단다.
- 마케터J님 있을 땐 혼자서 다 했는데!
내 이름은 보통 이렇게 탄식 섞인 문장 속에서 등장했다. 통쾌함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업무 롤이 많고 힘들었던 만큼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곳이라 그런 듯하다.
인력이 부족한 탓에 자연스럽게 업무 자율성을 상당 부분 인정받았고, 덕분에 서비스의 방향성에 대해 마음껏 고민해 볼 수 있었다. 그뿐인가, 팀도 꾸려보고, 직무에 관계없이 여러 가지 문제 해결 방법을 시도해 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대기업의 틀에 박힌 업무 프로세스 안에서는 겪을 수 없었던 폭발적인 성장과 제너럴리스트가 되는 귀한 경험도 했다.
그래서 지금도 미운 마음 반, 잘 되길 바라는 마음 반인 애증의 X회사로 남았다. 가끔 주가도 찾아보곤 하는 이유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