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베 온라인 설전의 방아쇠는 지난 2월 25일 YTN의 한 단독 보도에서 시작되었다([단독] "자물쇠로 잠그고..." 다낭에서 격리된 우리 국민들). 자극적인 제목만큼 편향적이고, 사건의 단편만을 다루었던 보도는 국내뿐만 아니라 베트남에도 순식간에 펴져나갔다. 한국인 여행객을 감금하고 빵 쪼가리를 제공한다는 말초적인 표현에서 시작된 오해와 갈등은 코로나19라는 임박한 위기 앞에 서로를 향한 극단적인 분노 표출로 이어졌고, 상대국에 거주하는 교민들에게는 눈앞의 실체적 위협이 되었다.
그렇다면 베트남인은 왜 그토록 분노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 사태를 언짢게 바라보는 한국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영국에서 함께 공부 중인 베트남 유학생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한베 온라인 설전 기저의 갈등구조를 짚어보고자 한다.
보도 경쟁이 낳은 오해들, 폐(肺) 병원이 폐(閉) 병원으로
출처 - <YTN>
“코로나19 확산 차단을 이유로 베트남 다낭에서 격리된 우리 국민 20명이 사실상 감금된 채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지난 2월 24일 대구공항에서 출발해 다낭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관광객 및 교민 20명이 공항에서 현지 병원으로 즉시 격리 조치를 당하자 보도된 YTN 방송의 첫 코멘트이다. 격리된 한국 국민의 격앙된 목소리와 함께 자물쇠로 잠긴 병동을 비추는 영상은 명확하게 한국 국민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최초 보도사인 YTN뿐만 아니라 많은 언론에서 아무런 증세가 없었음에도 대구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일방적으로 한국인을 격리했다며 앞다투어 보도했으나, 해당 항공편에 동승한 베트남 승객 한 명이 발열 증상을 보여 탑승객 전원이 격리 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자물쇠로 잠겨진 열악한 폐병원이라는 보도가 한국 네티즌에게 폐쇄된 폐(閉) 병원이라는 오해를 불려 일으키도 했으나, 현지 교민 증언에 따라 베트남 상급 종합병원의 폐 전문 병동이었음이 밝혀졌다 (베트남 중부 한인회 <YTN 보도 관련> 입장문). 이처럼 오해의 여지가 있는 표현을 한문 병기나 한 마디 보충 설명도 없이 ‘시설이 열악한 폐병원’으로 옮겨 날랐던 기사들은 작성 전 기초적인 사실관계 여부를 확인하였는지도 의심되며, 만약 자극적인 보도를 위해 의도적으로 중의적인 표현을 한 것이라면 더욱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다.
과연 이 모든 게 빵 하나 때문일까
출처 - <Flicker>
보도 중 가장 큰 반발을 일으킨 내용은 한국 국민의 인터뷰였다. ‘아침에 빵 쪼가리 몇 개 주네요.’라는 아침식사에 대한 불만이 여과 없이 사진과 함께 방송되었는데, 이는 해당 음식이 베트남의 주요 식사인 반미(Bánh mì) 샌드위치였기 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이 베트남 대표음식을 부실하고 저급한 식사라고 표현한 것이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해석했지만, 단지 전통음식을 비하했다는 이유만으로는 지금과 같은 베트남인들의 분노를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항공기 도착 전일에 결정된 정부 차원의 급작스러운 격리 조치에 다낭 당국도 격리조치에 대한 준비가 잘 안되어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사와 시설 편의를 개선하기 위해 한식 도시락을 준비하고, 4성급 호텔시설로 전환을 노력하는 등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빵 쪼가리’라는 말에는 단어 그 이상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국의 기준으로 눈 앞의 시설과 음식을 예단하며 비하했던 이 말 한마디는 국경을 넘어 코로나19 확산으로 한껏 예민해진 혐오의 뇌관을 터트리고 만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혐오의 근원은 어디인가
출처 - <연합뉴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박항서 매직, 삼성전자 스마트폰 공장, 경제교류 확대 등 여러 가지 우호적인 소식 일색이었던 베트남이었기에 그들의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놀라울 수 있다. 박항서 감독 덕분에 베트남에서 맥주 얻어먹은 친구의 이야기부터 한국 기업들의 베트남 진출 소식까지 각종 우호적인 뉴스들을 접하고, 한베 민간교류가 늘어나면서 한국에서도 베트남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형성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일부 한국 네티즌들은 단지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갑자기 베트남이 등 돌린 것처럼 인식하며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베트남인의 한국에 대한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입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들은 베트남전을 경험한 노인세대와 한국 아이돌에 열광하는 청년세대가 공존하기 때문이고, 스윗한 한국 드라마 남주인공과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을 살해하는 한국인 남편을 함께 접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삼성전자의 베트남 내 경제 기여도는 매우 크지만, 한편으로는 베트남인들에게 단일 외국기업 의존도 상승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처럼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양극단적으로 느껴지는 역사와 문화, 경제 이슈 앞에서 한국에 대한 베트남인들의 정서를 어떻게 감히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을까.
우리가 미처 몰랐던 그들의 이야기
출처 - <페이스북, 2019년 7월 베트남 이주여성 폭행 사건>
지난 2019년 7월 두 살배기 아기 앞에서 한국인 남편이 베트남 이주여성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영상이 공개되어 많은 이들을 경악하게 했다. 이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은 비단 한국인뿐만이 아니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집계 결과에 따르면 2007~2017년 동안 언론 보도된 베트남 결혼여성 살인사건만 13건에 달했다. 베트남인들은 매 해마다 자국 여성이 한국에서 살해당하는 뉴스를 접하는 것이다. 우리가 서구권에서 겪은 동양인 인종차별 소식에 분노하듯, 베트남들의 염려와 분노가 축적되어 온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65,490명의 베트남 결혼이주자와 귀화자가 한국에 거주하고 있지만(여성가족부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 연구, 2018), 우리는 해당 문제에 대해서 너무도 무지하며 준비되어있지 못했다. 이를테면 성폭력, 살인, 강도, 강간 등 흉악 범죄자의 외국인 배우자 초청을 제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처럼 보이지만, 놀랍게도 해당 입국관리법 시행규칙이 개정된 것은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2020. 2. 21 개정).
출처 - <글로벌이코노믹>
한베 경제교류 확대 역시 복합적인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단순히 한국기업이 베트남 국내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민총생산(GDP)에 일조하기 때문에 베트남인들이 한국에 고마워해야 한다는 일차원적으로 논리는 갑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한국 정부와 기업이 앞다투어 베트남 투자를 진행한 것은 분명 호혜적 관계에 기반한 이익 창출에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중국 공장이 폐쇄되자 한 발 앞서 베트남으로 공장을 이전한 한국 기업의 선택을 신의 한 수로 평하는 보도가 얼마나 많았는가.
한편, 국제개발학을 전공하는 베트남 학생은 한국 대기업의 베트남 투자 확대가 베트남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장기적인 측면에서 지나친 한국기업 의존은 리스크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자국 경제와 시장이 특정 외국 기업에게 지나치게 의존되는 상황은 어느 국가라도 바람직하게 보지 않을 것이다. 한국 역시 최근 한일 무역갈등으로 반도체 소재 국산화와 기술 자립이 국가 어젠다로 부상한 것처럼, 경제적 상호의존관계에 있는 국가와의 감정이 악화되었을 때 더욱 비판적인 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
출처 - <연합뉴스>
이처럼 이번 한베 네티즌 설전은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일본에 대한 정서를 환기시킨다. 한 때 방일 한국인 관광객 수는 연간 750만 명이 넘고, 유니클로 히트텍과 아사히 맥주는 전 국민의 스테디셀러였다. 하지만 한국인의 반일감정은 무역분쟁과 같은 갈등 상황이나 원전 방사능 유출 등 실체적 위협 앞에서는 언제고 범국민적으로 다시 불붙을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베트남의 한국에 대한 정서 또한 비슷한 맥락을 가질 수 있다.
(필자의 한일관계에 비유한 설명에 베트남 유학생들은 베트남의 한국에 대한 정서가 해당 수준이 아님을 분명하게 설명했다. 오히려 2014년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 이유로 반중 정서가 훨씬 강력하다고 전했다. )
위기에 드러나는 민낯에 대하여
출처 - <Unsplash>
반대로 한국 네티즌들의 공격성에는 어떤 맥락이 존재하는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베트남 네티즌들의 도 넘은 혐오표현을 전하는 기사와 유튜브 방송을 살펴보면 은연중에 드러나는 선민의식이 있다. 한국인 관광객 수가 25%에 달하며, 베트남 총수출액의 3분의 1이 삼성전자 베트남 법인 수출액인데 이런 식으로 대하면 나중에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느냐는 식이다. 그리고 그 댓글에는 아주 오래된 반공 사상부터 동남아 국가에 대한 멸시, 양국 관계 맥락에 대한 무지, 한류 확산에 따른 오만까지 다양한 맥락이 어우러져 온갖 원색적인 혐오 표현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19 사태라는 범세계적 위기 상황에서 양 국민에게 내재되어 있던 혐오는 그 민낯을 드러냈다. 그러나 베트남 학생들과의 대화의 목적은 한쪽의 혐오는 정당화하고, 그 반대의 혐오를 그릇되다고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들은 자국 내 문제점으로 페이스북이 베트남 국민 60%가 사용할 만큼 최근 급속하게 국민 소셜미디어로 자리 잡았지만, 이와 함께 성숙하지 못한 베트남 네티즌 문화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처럼 서로의 마음속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생각을 나누고 난 뒤 더욱 깊어진 상호 이해와 포용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도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래스’를 우리와 동시에 본다.
출처 - <Unsplash>
마지막으로 베트남 학생에게 물은 질문은 ‘한국을 좋아하는 학생으로서 한국 관련 나쁜 소식들을 들었을 때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였다. 이미 많이 고민해본 문제였기 때문일까. ‘첫째는 이야기의 사실 유무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고, 둘째는 나쁜 개인을 집단으로 치환하지 않는 것’이라며 본인의 해결방안을 똑 부러지게 답해주었다. 당장의 날카로운 독설에 분노하여 상대 집단에 대한 혐오로 번지지 않기 위한 참 간단하고도 어려운 방법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이번 한베 네티즌 설전으로 드러난 민낯을 비난만 할 것인지, 양국의 갈등구조를 이해하여 한층 단단한 연대의 길로 나아갈 것인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 마치 거시적인 국가 정책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이는 우리 개개인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높아진 국가 위상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는 만큼, 세계는 우리와 더욱 가깝고 복잡하게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베트남인들도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래스’를 우리와 동시에 보는 것처럼 우리가 소비하는 콘텐츠와 트렌드는 더 이상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한국어를 할 수 있는 베트남인이 늘어 갈수록 우리가 작성하는 댓글 하나도 실시간으로 베트남에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손쉽게 혐오를 내뱉을 수 있는 먼 이방인이 아닌, 가까운 나의 이웃이라는 마음으로 양 국민들이 함께 국제적인 재난을 극복해나갈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