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학부생으로서의 마지막 1년 & Admission process
2020년은 내가 학부생으로서의 마지막 1년을 보낸 해이자, 실제로 대학원 입시를 겪은 해이기도 하다. 그 해 1월 초, 나는 이전 글(https://brunch.co.kr/@markwatney/9)에서 예시로 들었던 메일을 주신 분과 면담을 마친 후 겨울방학 동안 연구실에서 학부연구생으로 지내게 되었다. 다만, 내가 학부 과정을 보낸 곳이 아닌, 타대였기에 길을 헤맬 까도 걱정이 되었고 새로운 인연을 이제부터 바닥부터 쌓아나가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긴장도 되었다.
시간은 생각보다 느리게 가지 않았다. 초반에는 연구실에서 다루는 내용들의 기초를 닦기 위해 고참급 연구원들이 건네주는 논문을 읽기에 바빴고, 단순히 읽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쉽지 않았다. 학부연구생 때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나 변치 않는 신념들 중 하나는 바로 '공부를 잘 한다고 해서 연구를 잘 하는 건 아니지만, 공부는 연구의 기본이 된다'라는 것인데, 그 당시의 나는 연구의 기본조차도 버거웠던 셈이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흐른 뒤에는 다른 석사 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연구실에서 사용하고 있는 시뮬레이션 툴을 배워 나갔다. 당시 나는 열/유체 분야의 연구실에서 학부 연구생을 했었기에 computational fluid dynamics (CFD) 툴 중 하나인 ANSYS를 배울 수 있었고, 잘 다룬다고 자신있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CFD의 흐름이 어떻게 되고 어떤 점들을 주의해야 하는 지 정도는 감을 잡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각 논문들을 읽어보며, 논문에 주어진 각 형상들과 경계조건들을 직접 CAD를 그려보고 격자를 생성하고, 경계조건을 입력하여 해석을 돌려보면서 논문에 제시된 결과들과 유사한 결과가 나오는 지를 비교하는 연습을 했다.
더 나아가 해당 해석 결과들을 랩미팅에서 발표하는 기회도 주어졌다. 먼저 논문의 배경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어떤 점을 보기 위해 그 해석이 필요했으며 실제로 그 전산해석을 수행했을 때 나는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었고 논문에 제시된 결과와는 어떤 차이가 있었는 지 보였다. 다만, 그 당시 나는 그냥 결과를 보는 것에서 그쳤지만 정작 요구되는 것은 결과가 왜 같게 나오는 지, 혹은 왜 다르게 나오는 지, 그리고 그것의 underlying physics는 무엇인지였다. 단순히 '해석을 했다'도 물론 좋지만, 그보다는 '이 연구가 왜 필요하고, 나는 그 필요성에서 출발하여 어떠한 방법론으로 접근을 했고, 그 후 어떤 결과가 나왔는 데 그것은 이러이러한 physics에 의한 것이며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와 같은 storyline이 탄탄하게 연결될 수 있어야 정말로 내 연구를 이해한 것이고 남들에게 peer review도 받고 feedback을 받아 더 나은 연구, 더 심층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는 교훈을 배웠다.
물론, 해석이 항상 잘 되지는 않았다. 당장 다음날, 당장 몇 시간 후에 랩미팅 발표를 해야 하는 데 해석이 자꾸 터져나가는 경우도 많았고 각종 오류에 뒤덮였는 데 내가 어디서 무엇을 잘못 설정했는 지 감도 오지 않아 좌절했을 때가 많았다. 아직 학부연구생 신분이기 때문에 많은 것을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잘 하고 싶다'는 내 마음과는 달리 그 진척은 내 마음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중간에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발발하면서 전국적으로 대학들의 개강일이 밀리게 되면서 나 역시 조금의 여유가 좀더 생겨서 3월 중순까지 그냥 더 남아서 학부연구생으로서 연구를 수행했다. 마지막 출근날, 그간 했던 연구 내용들을 교수님 앞에서 발표드린 후 마지막으로 인사드렸고, 다행히 마지막 마무리만큼은 무난하게 마칠 수 있었다. 항상 매듭이 중요한 법이다.
학부 4학년 1학기는 모든 수업이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4학년이다 보니 거의 모든 학점을 이수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많은 수업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그렇지만, 여름으로 예정된 KAIST 대학원 입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은 KAIST 기계공학과 대학원 입시에서 필기시험이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내가 입시를 치뤘던 2020년만 해도, 기계공학과 4대역학(고체, 동, 열, 유체)와 더불어 공업수학 / 선형대수 필기시험이 존재했다. 아무래도 시험 과목 하나하나의 무게가 묵직하고 범위가 매우 넓다 보니 이전에 학점을 얼마나 잘 받았었는 지 여부와 전혀 상관없이 상당한 시간의 투자가 필요했다. 복습은 물론이고 어느 정도 깊이 있는 공부가 필요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4학년 1학기에 그 당시에 열렸던 구조역학 수업을 수강신청하면서 4대 역학 중에서 내가 약하다고 생각했던 고체역학을 복습하는 동시에 다른 역학들 교과서를 수시로 펼쳐보면서 이전에 공부했던 것들을 머릿 속에 넣고자 했다. 학기를 시작했을 때의 마음가짐은 하루에 최소 5,6시간 이상을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것이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수업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일정을 집안에서 해결하게 되면서 나태한 하루가 이어지고 제대로 공부에 신경쓰지 않았던 시간도 생각보다 많았다.
한편으론, KAIST 입시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른 학교들 입시에도 신경썼다. 서울대학교와 POSTECH에도 컨택을 유지했고, 그 중 한 곳의 교수님과는 연락이 잘 닿아서 ZOOM으로 미팅도 하고 4학년 여름방학에 학과에서 주최하는 대학원생 체험 프로그램으로 연구실에 합류해보라는 권유도 받았다. 그렇지만 코로나가 길게 이어지면서 프로그램은 열리지 않았고 그 대신 2,3주에 한번씩 논문을 읽고 교수님 혹은 연구실 인원들 앞에서 발표하고 discussion을 갖는 시간을 가졌다. 모든 것은 ZOOM으로 진행되었고, 아직 연구실 합류가 결정되지 않은 타 대학 지원자에게 그만한 시간을 쏟은 것은 나를 그래도 좋게 평가했기에 그랬다는 쪽으로 좋게 좋게 해석했다.
그렇게 나는 서울대, KAIST, POSTECH 세 학교에 지원했다. 가장 먼저 입시 일정이 진행되었던 KAIST에서 8월 즈음 필기시험을 치르고 난 후 그닥(?) 잘 본 것 같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을 놓고 있었는 데 예상과는 달리 필기시험과 서류전형을 통과하여 면접전형에 참여하라는 공지를 받았을 당시만 해도, 그냥 나머지 두 학교에는 지원하지 않는 게 스트레스도 덜 받고 좋겠다는 생각도 한 적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2020년 초반부터 모든 학교 컨택에 공들였던 것의 성과를 모두 보고 싶었고, 그렇게 2020년 1년이 대학원 입시 위주로 돌아가게 되었다.
많은 염려도 있었지만, 다행히 나는 합격했다. 그 다음에는 고민의 시간이었다. 석사로 합격한 곳, 석박통합으로 합격한 곳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석박통합으로 합격했던 곳이 좀더 마음에 들었다. 원래 좀더 하고 싶은 분야였고, 나와 매칭된 교수님의 실적도 매우 좋았다. 많이 참고했던 김박사넷 평가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대학원을 석사 과정으로 시작하는 것만의 엄청난 장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박사 학위에 대한 욕심이 있기도 했지만, 사실 기존에 논문 실적이나 김박사넷 평가만으로 교수님과 연구실에 대해 다 알고 갈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친구들에게도 정말 많은 조언들을 구했고, 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지인들, 특히 현재 교수로 재직 중이신 친척 분에게 매우 많은 조언을 구했었다. 분야에 대한 고민들, 석사/박사 학위에 대한 고민들, 연구실 생활에 대한 고민들, 각 연구실에서 받을 재정적 지원(월급, 인건비), 학교의 명성과 위상 등등 모든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 결과 나는 석박통합 대신 석사 과정으로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박사 과정은 일단 석사를 해보면서 결정하는 것도 충분히 늦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컸다. 그리고 2020년 말의 그 결정은 2년 후의 나에게 또다른 고민과 선택을 요구하게 된다. 그 결과 2020년 당시에는 조그맣게만 그렸던 그림이 2022년과 2023년에 걸쳐 현실화된다.
2022년 하반기에 나는 박사 과정 진학을 결심했고,
미국 대학원 박사 과정에 도전하게 된다.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로부터 출발해서 실제로 대학원에 합격하기까지 제가 걸어온 길을 담은 Road to Graduate school이 일차적으로는 일단락되었습니다. 6편까지 쓰고 7편 작성이 매우 늦었습니다. 다음 글부터는 이 Road to Graduate school 시리즈에 추가적으로 미국 대학원 도전기를 담을 지, 혹은 석사 과정동안 있었던 일들이나 생각에 대해 다룰 지 고민 중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새로운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