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Motivation
나는 학부 시절 끊임없는 진로 고민을 했던 학생이었다. 이전 글에서도 나와있듯이 언제 어디서든 나를 정말로 지킬 수 있는 건 나만의 무기, 혹은 제가 남들보다 잘하는 전문성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을 했고 학부 지도교수님들과의 수많은 상담을 통해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었다. 다행히 지원했던 학교들 중 한 곳을 골라 갈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고, 석박통합 과정 대신 석사과정으로 기계공학을 좀 더 공부하게 되었다.
사실 대학원 진학을 고민할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질문들 중 하나는 바로 다음과 같다.
만약 대학원을 간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 우리나라 학교? 아니면 해외 학교도 알아볼까?
이 질문에 확고한 답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다음에 꼬리를 물고 나오는 질문들도 있을 것이다. 만약 전자를 택한다면 국내 SPK를 비롯한 학교들 혹은 자대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연이어 나올 것이고, 후자를 선택할 경우 어떤 국가로 갈 것인지, 그리고 그 국가 내에서 어떤 학교들에 지원할 것인 지에 대한 질문이 뒤따를 것이다.
이 고민은 사실 학부 3학년 때 했던 고민이다. 결과적으로는 국내 대학원 입학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면서 이를 뒤로 미룬 셈이나 마찬가지이다. 결국 석사 2년 차에 닿아 다시 진로 고민의 시기에 도달하였을 때 박사 과정으로 진학할 것인지 아닌지, 그리고 박사를 하게 된다면 현재 연구실에서 할 것인지 아닌지, 다른 연구실로 간다면 그것은 현재 소속된 학교에서 할 건 지 타대로 갈 건지, 혹여 타대로 진학한다면 국내 다른 학교인지, 외국의 학교로 진학할 것인 지 등 수많은 질문들이 연달아 나온다.
석사를 진행했던 연구실을 돌아보았다. 연구실의 역사가 그리 긴 편이 아니었던 지라, 진로가 막 다양하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내가 재학했던 연구실은 석사 과정으로 졸업한 학생들은 주로 기업체에 취업하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박사로 졸업한 선배들 역시도 기업체 취업 외의 진로는 따로 없었다. 하지만, 우리 연구실에서 학부연구생으로 연구경험을 쌓았던 자교생들의 경우 최소 수개월 이상 학부연구생으로서 연구 경력을 쌓은 뒤 미국의 명문 대학 박사 과정으로 적극 진학하는 경우가 많았고 교수님께서도 서포트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학부 3, 4학년 때 여러 선택지를 두고 고민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 당시, 나는 같은 전공으로 학부를 마치고 카이스트에서 석사를 한 후 미국으로 박사 과정 유학을 간 선배를 만난 적 있었다. 활발한 학제 간의 연구 분위기 및 세계 각지에서 모인 도전 정신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그 다양성에서 오는 창의성을 좇아 학부 시절부터 미국 유학을 꿈꿨었다고 하셨다. 공대 내 다른 전공으로 학부와 석사를 마친 후 미국으로 박사 과정 유학을 간 다른 선배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눈 기억도 있었다. 유학은 돈 많은 부잣집 혹은 명문대생들 중에서도 손꼽히게 뛰어난 학생들만 가는 줄 알았으나, 유학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진입장벽이 낮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이야기부터 대학원생들에게 주어지는 펀딩 이야기까지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았다.
또 이왕 박사까지 할 거라면 더 넓은 세상에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만 갔다. 동시에, 미국에서 박사를 하는 것이 나의 커리어 전환에 있어서 중대한 milestone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박사를 한다고 해서 꼭 학계로 진출해야 하는 것도 아니거니와, 꼭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야 할 당위성도 딱히 없고 내가 차후에 job market에 나섰을 때 그 시장을 한국이 아닌 전 세계로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계를 선도하는 미국에서 학위를 받는다면 꼭 한국이 아니더라도, 꼭 미국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학위의 가치를 인정받고 내 무대를 넓힐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의 극히 저조한 출산율로 인한 하향세가 걱정된 것도 있었다.
다 좋다. 그렇지만, 확고한 결심을 내리기 이전에 가장 중요한 질문이 하나 남아있다.
나는 왜 박사를 해야 하는가? 박사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나는 박사가 될 자질이 있나? 나는 학문에 대한 그만큼의 열정적인 호기심이 넘치는 사람인가?
이 질문에 확실한 Yes가 나오지 않는다면, 해외 유학은 커녕 어디서든 박사를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결정은 단순한 결정이 되어서는 안 되고 향후 짧으면 3,4년 길면 5,6년을 좌우할 매우 중대한 선택임을 직감적으로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별 탈 없이 석사 과정을 잘 마무리해 가는 과정이었고, 연구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로부터 정말 많은 점들을 배웠고 또 즐거운 시간도 함께했다. 그리고 연구라는 것을 배우고 시행착오도 겪어 보았으며 때로는 결과가 잘 나오지 않아서 좌절의 순간도 적지 않은 빈도로 존재했다.
약간 질문을 바꿔봤다.
나는 공부하는 순간, 깨달음의 순간, 동료 연구자들과의 대화의 순간을 즐겼는가?
이 질문에는 적어도 Yes라고 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박사라는 학위 자체에 너무 큰 무게를 두기보다는 그 과정 자체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춘다면 이 질문에는 '그렇다'라고 답변할 수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경험해 보면서 그 확신이 생길 수도 있다는 약간은 위험한(?)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또 사실 석사 과정 동안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나름 공부도 했다고 생각했지만, 분야를 바꿔보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도 한몫했다. 학부생에서 석사로 가면서 분야를 바꾸는 것, 석사에서 박사로 올라가면서 분야를 바꾸는 것 중 굳이 따지자면 전자가 더 쉽지만 어떻게 보면 나의 전문 분야를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이 때라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박사를 딴다고 해서 그 분야에서만 종사한다는 건 절대 아니고 어느 곳에 자리 잡느냐에 따라 분야가 달라지는 건 다반사다. 하지만 거기까지 내가 지금 걱정할 필요는 굳이 없다고 생각했고, 기존에 대학원을 진학하면서 석사 vs 석박통합 과정으로 고민했던 그때로 심정으로 돌아가 박사 과정에 진학한다면 정말로 좀 더 공부하고 싶었던 분야에 한번 가보자는 결심을 했다.
그렇게 나는 미국 대학원 박사 과정 진학을 결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