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 My thoughts
나는 본질적으로 '초격차'의 저자 권오현 (現) 삼성종합기술원 원장, (前) 삼성전자 회장을 연구자 출신 경영인으로 인식하고 이 책을 펼쳤다. 그렇기에 어찌보면 선배 연구인이자 나보다 한참 먼저 대학원을 경험하고 인더스트리도 경험하고 여러 사람들을 두루 거친 사람이기에 내게 많은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 대학원생으로서의 '초격차'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 지, 어떤 삶의 방식이 가능할 지 궁금했다. 아직 학문을 이제 갓 다루기 시작한 학생의 입장으로서는 사뭇 어불성설에 가까운 호기심이라고 여겨지기도 했지만, 뭐 어디까지나 읽는 사람이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니겠는 가.
이 책의 서문에는 저자가 박사 학위를 취득한 Stanford 대학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곳에서는 다음을 매우 강조했던 듯 하다.
어떻게(how) 문제를 푸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why)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 지, 무엇(what)을 위해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지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잡아먹힌다.
이는 사실 연구에도 그대로 통용되는 이야기다. 자기가 얼마나 뛰어나고 오묘한 방법으로 문제에 접근해서 기가 막힌 솔루션을 도출하였을 지라도, 그게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진다는 보장은 없다. 나는 이 서문을 '문제를 정의(define, address)'하는 것에 대한 것이라고 인식했다. 단순히 해결해야 할 객체로서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문제의 해결책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같이 이 문제에 접근할 팀원들, 동료들과의 cowork에 있어서도 모두가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지를 볼 수 있는 이야기라고 느꼈다. 현대의 연구개발 역시 한 명의 연구자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의 협업으로 이뤄지는 한편 대학 연구실에서도 역시 혼자 하는 연구도 물론 존재하겠지만, 각 개인의 강점과 중심 연구주제에 맞추어 서로 합을 맞춰나가는 과정이 매우 빈번하게 이뤄지므로 문제의 정의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문제의 정의에 따라 본인의 접근 방식 혹은 관점을 설정하고 어떤 해결책이 가능할 지 고민할 수 있으며 그 해결책이 정말로 실현가능하고 이론적으로 가능한 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고 실제로 실행하여 본인의 예측 혹은 기존 이론과 일치하는 결과가 나오는 지를 볼 수 있겠다.
논문 작성의 측면에서도, 단순히 '어떠한 문제를 해결했다'라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introduction에서 기존에 산업계 혹은 학계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 지를 서술하게 되어 있고 기존 연구가 어디까지 진행이 되어 왔는 데 어떤 한계가 있었으며, 어떠한 접근방식들이 있었는 지를 설명한다. 문제를 왜 해결해야 하고 어떤 물리/화학적 현상을 반드시 봐야 하는 지를 잘 설명해야 논문을 읽는 reviewer는 물론이고 후대 연구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다. 혹은, 문제를 정의하는 것 자체가 단순히 솔루션 도출 뿐만 아니라 논문 작성의 핵심적인 기작이 되며, 그 정의에 따라 생각보다 단순하게 생각했던 전제 자체가 흔들려 논문의 생명줄을 좌우할 수도 있겠다. 논문을 저널에 투고하고 나서 reviewer들에게 받는 코멘트들 중 하나가 바로 novelty가 부족하다, 즉 새로움이 없다는 리뷰를 받는 경우가 있다. Novelty는 새로운 접근 방식의 제시에서 나올 수도 있으며,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문제 해결법 그 자체에서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것들은 결국 문제의 정의, 그 모든 이야기들의 근원으로 수렴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outline의 뿌리는 결국 자신이 그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시작했느냐에서 출발하며 본인 스스로도 그 일련의 과정을 납득할 수 없다면 논문을 읽는 다른 사람들도 설득할 수 없을 것 같다.
1장에서 저자는 리더에 관련된 덕목들을 이야기한다. 진솔함, 겸손, 무사욕으로 대표되는 본성과 통찰력, 결단력, 실행력, 지속력 등으로 대표되는 '훈련'으로서 얻어질 수 있는 능력들이 잘 조합되어야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본 듯 하다. 나는 본성보다는 후자의 '훈련' 쪽을 좀더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해당 능력들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훈련해야 할 까?'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딸려 나오게 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feedback'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feedback에는 자기 성찰(self-discipline)과 다른 동료들 혹은 선후배로부터 받는 peer review가 있겠다. 먼저 자기 성찰적 측면에서 생각해보니 질문이 쏟아져 나온다.
나를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보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지?
나 스스로의 평가를 위해서는 그 평가기준 및 항목은 어떻게 구성해야 하지?
각 능력은 어떻게 정의해야 하지? Ability 기준으로 볼 것인가 competance 기준으로 볼 것인가?
완벽주의적 성향은 이런 평가에 있어 과연 도움이 될까 혹은 오히려 강박관념에 휩싸여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하게 될까?
대학원생으로서 자기 평가와 peer review, 그리고 지도교수님으로부터 받는 코멘트들은 어떻게 조화시켜야 좋을까?
자기 평가를 하는 것조차도 정의의 문제로 돌아갔다. 어쩌면 내가 너무 '정의' 그 자체에 몰입한 거일 지도 모르겠다.
저자도 1장의 후반부에서 '현재 상태에 대한 냉정한 평가 및 업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꼭 던져봐야 한다면서 이와 같은 맥락으로 서술한 듯 했다. 그러면서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실력을 키울 시간을 늘리며 본인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한편, 최대한 간단 명료하게 일을 정의 및 보고하고 하지 않아도 될 일 리스트를 만들며 자기도 모르게 여느 생산성 없이 시간을 소모하는 일과를 줄일 것을 권장했다. 대학원으로서 연구실에서 보내는 수많은 시간 역시도 이와 같은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연구실에서는 연구만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잡무들도 하게 되고 때로는 행정 업무에 시달리기도 하고, 교수님의 예상치 못한 지시가 있을 수도 있고 상당히 다양한 일들을 하게 된다. 대학원 진학을 기획할 때만 해도 학문적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열망에 넘쳐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의외로 그 열망이 꺾이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다. 결국 초심을 잃지 않으면서 본인이 목표로 했던 것들, 본질적인 실력을 키울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에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같은 관점으로 볼 수 있는 내용이 2장에 나온다. 2장의 주 요지는 조직에 관한 것인데, 모든 지시는 심플하고 명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연구자 스스로 뚜렷한 소신과 연구 철학이 존재한다면, 그 방향성과 하루 하루의 일과에 대해서 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같이 연구하는 동료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고 명확하지 않은 목표는 결국 에너지의 소산을 불러올 뿐이다. 어찌보면, 대학 연구실의 리더는 각 연구실의 지도교수가 될 터인데, 지도교수로서 본인만의 연구철학과 궁극적으로 보고자 하는 물리적 현상 혹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명확하지 않다면, 지도 학생들에게도 정갈한 방향 제시를 하지 못하게 되지 않을 까 싶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교수님을 바라보고 대학원에 진학하고 그 연구실에 진학하게 될 텐데, 사실 교수님의 연구철학과 지도 방식은 입학하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파악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결국 대학원생이 할 수 있는 것은 조직에 대한 이 질문을 살짝 비틀어서 자기 스스로의 하루를 조직하고 어떻게 자기 자신을 한단계 성장시키고 발전할 수 있을 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겠다. 박사 과정 학생의 경우 특히 더 그럴 것이고, 석사 과정이라 한들 2년의 시간이 흐른다면 결국 졸업은 하겠지만 그 2년이 과연 뜻깊은 2년이었냐 자문했을 때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3장의 전략 역시도 대학원생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든든한 베이스 캠프, 즉 자기 영역에서 출발하여 핵심 역량 core competance를 최대치로 키워서 실력(기술)의 압도적 1등을 목표로 하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때 연구개발 목표 설정 및 방식, 제조라인 운영, 시스템, 문화 등의 모든 영역들에서 종합적으로 압도적 1등을 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초격차를 이룩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내 개인적으로는 박사 과정에 임하면서 자기만의 전문 영역을 탐색하고 깊이 탐색하고 고찰하면서 자기만의 전문성을 점차적으로 갖춰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여기서 내가 박사 과정 동안 풀고자 하는 문제의 설정, 즉 정의와 그것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 지에 대한 접근 방식, 그리고 다른 동료들과의 cowork, 하루 일과의 조직, 스스로의 자기 평가 및 개선 등 이 모든 것들에서 성장을 실현해 나갈 때마다 더 좋은 대학원생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느꼈다.
각설하자면, 결국 모든 질문은 '나'에게로 돌아간다. 현재의 나는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 지, 대학원생으로서 나는 초격차를 어떻게 바라보는 지, 내가 맞닥뜨린 문제를 나는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나의 핵심 역량은 무엇이고 내가 현재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또, 내가 더이상 '학생'으로 존속하지 않을 때 나는 그 변화를 잘 인식하고 그 다음 단계에 제대로 발을 내딛으며 새로운 초격차로의 발걸음을 자신있게 내걸을 수 있을 지. 그 때의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시야와 통찰력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 지.
어쩌면 저자가 이 책에서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내가 생각하는 그것과 다를 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정말 많은 질문들을 떠올릴 수 있었고 아마 이는 현재의 대학원생 신분과도 매우 큰 연결고리를 갖고 있음일 수도 있겠다. 나중에 '사회인으로서의' 나는 초격차를 어떻게 바라볼 것이고, 그 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달리 어떤 시야와 통찰력을 갖고 나를 어떻게 평가할 지 궁금해 진다.
책에 대한 첫 글입니다. 많이 부족한 글이고, 정제되지 않은 생각을 담은 미약하게만 정리된 글입니다. 책의 모든 내용을 담은 글도 아니며 오로지 제가 읽고 느낀 부분만을 적은 글입니다. 사뭇 이상적인 이야기만 담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쪼록 제 생각을 글로 옮기며 저 스스로도 성장하고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분들의 생각도 여과없이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