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운드 연애

by 이휘

가구를 살 때 가격대를 고르고, 색깔과 재질을 선택하고, 디자인과 크기를 가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는 쉬거나 누워있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나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줄자를 들고 군인처럼 각을 잡고 배치를 고민한다. 온라인 쇼핑으로 가방을 살 때는 모델 착용컷을 꼼꼼히 살피고, 옷을 살 땐 상세 사이즈를 꼭 체크한다.


사람을 배우자로 들인다는 건 어쩌면 가구를 들이는 일보다 더 신중하고 체계적인 과정이 필요했을 수 있다는 걸 이제 와서 생각해 본다. 수납공간은 넉넉한지, AS 과정에서 소비자 의견은 잘 반영이 되는지, 빛깔은 고운지. 하다못해 마트에서 물건을 하나 사더라도 수많은 브랜드중에 하나를 골라내 카트에 담는데 평생을 함께할 반려자는 왜 그렇게 내 자신을 합리화해 가면서 골랐던 것일까.


그렇지만 나는 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그렇게 이성적으로 측량하고 가늠할 수가 없다는 걸. 그래서일까. 나는 내 결혼을 정당화하는데 꽤 많은 노력과 심리적 정성을 투자했다. 재는 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굳이 말하자면 내가 살 집에 내 자신을 맞춘 느낌. 그렇다고 꼭 알맞은 느낌이 들게 한 것도 아니었으면서.


최근 나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들은 하나같이 마음이 착하고, 나를 들여다봐 줄 심적 시간적 여유가 충분한 좋은 사람들이다. 만나면 나를 편안하게 해 주고자 노력하는 그들이지만, 그 어느 누구와도 연애를 시작하고 싶은 감정은 없다. 그저 맛있는 걸 먹고, 좋은 공기를 쐬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다 집에 돌아오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어쩌면 오래 묵혀두었던 가구를 처분하고 새로 꾸민 집에 또다른 새 가구를 들일 준비가 아직은 안 된 것 같다. 그렇다고 대충 적당히 마음에 드는 가구를 계절별로 바꿔 갈아치울 생각도 없다. 빈 공간 그대로도 적당히 멋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고 보니 언제나 나에게 일상과도 같았던 연애가 벌써부터 밀린 방학숙제가 된 것 같다. 이제 겨우 시작된 방학인데 벌써부터 손대고 싶지가 않은 기분.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숙제는 계속해서 밀리거나, 또다른 방학이 올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남의 숙제를 어색하게 베끼거나 성급하게 어설픈 답안을 쓰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나보다 2~3년 먼저 겪은 돌싱 친구는 내게 리바운드 연애를 추천했다. 슛이 빗나가서 튕겨나오면 림에 맞고 튕긴 그 볼을 다시 잡아 다시 찬스를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친구는 그렇게 네 번 정도의 리바운드 연애 끝에 지금은 혼자서도 안정적인 시기를 겪고 있다며, 필요하면 편하게 만날 사람을 소개해주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나는 리바운드 연애가 싫다. 자꾸만 안 들어가는 공에 집착할 바엔 포지션을 교체하고 싶다. 공을 바꾸든지. 어쩌면 휴식이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다.


사람과 만남을 시작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건 싱글들도 마찬가지다. 오늘은 오래 알고 지내던 친구 한 명을 만나 카페를 갔다. 오늘의 화두는 '크레이지 러브'였다. 미친 사랑을 하기엔 너무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다. 분명 아직 젊다는 건 안다. 하지만 크레이지하기에 우리는 너무나 제정신이고 특히나 '러브'는 힘든 도전이 되고 말았다. 친구는 삼십대 중반이 지나자 그 어떤 여자에게도 거대한 열망이나 정복욕을 느끼기 힘들다며, 행여나 어떠한 분위기가 생겨 그럴듯한 하루를 보내게 될 것 같은 타이밍이 와도 생각보다 마음이 앞서지가 않는다고 덧붙였다. 관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 내일을 약속해야 할 것 같은 무게감. 벌써부터 손에 쥔 것도 얼마 없으면서 잃을 걱정부터 하는 시기가 된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쏘시개처럼 우리의 마음을 들쑤셔 불태워줄 누군가를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단 얘기를 나눴다.


"그럼 말이야. 이런 관계는 어때? 그 어떤 약속도 부담감도 없이 정말 육체적 관계만 허락하는 파트너 사이를 하겠다고 자청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정말 관계만을 위한 사이."


잠깐의 정적 끝에 친구가 말했다.


"그건 스포츠잖아."


"그렇지 스포츠지. 거의 1대1 헬스 트레이너랑 비슷한 느낌 아닐까? 고객님 금요일 3시 되세요? 아뇨 전 4시 이후 가능요."


우린 카페에서 박장대소를 했다. 그래 그건 거의 유산소잖아. 그렇지 당근 쿨거래 같은 거야. 사실 의미 없는 대화였다. 우리는 그런 피지컬적인 관계마저도 거부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그런 관계야말로 허전한 건 매한가지일 것이다.


한참을 웃고 떠들다 보니 카페 밖 풍경이 어두워졌다. 오늘 저녁은 비가 온다고 했다. 인생도 예보가 있어 흐린 날씨엔 우산을 갖고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치만 지금은 인생이란 예측할 수 없기에 더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것 같다. 그래도 언젠가 크레이지 러브가 폭풍처럼 들이닥친다면 그 전에 바람이라도 좀 불었으면 좋겠다.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친구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이는 눈빛이나 표정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아마 그런 표정을 볼 수 없는 사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 보니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하는 표정을 지어보인 지가 참 오래됐다. 그러나 잊지는 않고 있다. 언젠가 사랑이 시작되면 반드시 가장 다정한 눈빛으로 따뜻한 표정을 지어보일 것이다. 꿀이 뚝뚝 떨어지는 표정으로. 그런 달콤한 날이 늦지 않게 봄비처럼 왔으면 좋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신혼부부의 코딱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