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의 코딱지

언제까지 코딱지를 감출 건데? 너는 코 안 파? <코밍아웃>에 대하여

by 이휘

"나 코딱지 파는 걸 너무 좋아해서 어렸을 때 코를 파면 길거리에 있는 차 유리나 보닛에 몰래 묻히고 그랬어. 자긴 그런 적 없어?"


나는 정말로 코 파는 걸 좋아한다. 딱히 뭔가 내보낼 방해물들이 없어도 그냥 코를 파면 시원해서 좋다. 한 번 만지기 시작하면 종일도 만지고 팔 수가 있어서 그 때마다 엄마가 제발 코 좀 그만 파라고 할 정도였다. 심지어 독립하기 전, 충분히 성인이 된 이후에도 나의 코파기 신공은 더 날렵해졌고 멈출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심지어 자면서도 건조하면 코를 자꾸 파는데, 이건 나의 큰 고민이기도 했다.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는데 무의식적으로 코를 파는 모습을 들키면 어떡하지. 가뜩이나 생얼로. 가뜩이나 부은 얼굴로 한밤중에 어둠 속에서 코를 벅벅 파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배우자가 기겁을 하면 어떡하지. 그런 상상들 말이다.


얼마 전 우리 부부는 코밍아웃을 했다. 왜 굳이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명확하게 정리하긴 어렵지만 집이 건조하기도 했고 모든 이야기들이 그러하듯 어쩌다 나온 얘기였다. 그동안 딱히 밝힐 이유는 없었지만 결론적으로 나온 얘기는 우리는 코를 파는 걸 정말로 좋아한단 거였다.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코를 팔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무데서나. 언제든지. 그 이후로 남편은 내가 혼자 웃기만 하면 "왜그래? 코팠어?"라고 물어서 나를 웃게 만든다. 언제 한 번은 함께 소파에서 영화를 보는데 남편이 의식적으로 내 쪽으로 고개를 안 돌리더니 "코 파고 있었어?"라고 물었다. 그동안 나는 코를 판 게 아니라 손가락으로 건조한 입술을 쥐어뜯고 있었다. 정말이지 내가 코를 파든 안 파든 관심을 안 주었으면 좋겠는데 남편은 습관처럼 코딱지의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다른 것도 아닌 코딱지를 고백했다는 게 왠지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는데 그 이후로 남편은 열심히 코를 파기 시작했다. 어제는 몰래 싱크대에 뭔가를 버리는데 내가 그냥 넘어가주지 않고 '시리얼 굴러가는 소리가 난다'고 신나게 놀렸던 기억도 있다. 물론 그 정도의 마찰음은 들리지 않았었다. 남편은 제발 서로를 지켜주자고 모른척 좀 하자고 신신당부를 했다. (사실 먼저 코딱지 고백한 건 그쪽이었으면서 이렇게 태도를 취할 때면 어쩌라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나였어도 이렇게 반응했을 것 같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코밍아웃은 당연한 수순이었던 것 같다. 우리집은 침대가 굉장히 크고, 남편은 어떤 구조에서든 나를 꼭 침대 안쪽, 벽쪽에 재우는데 그렇게 되면 내가 자다가 코를 파도 어디에도 코딱지를 버릴 곳이 없었다. 나는 늘 코딱지를 모아서 한꺼번에 처리하고 들어오거나 심지어 코딱지 파는 걸 참기도 했다. 하지만 몇 십년동안 사랑해 온 코파기를 이제와서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파야만 했다. 그래서 침대 커버와 온열매트 사이에 코딱지들을 숨기기 시작했다. 아무도 찾을 수 없는 나만 아는 곳. 그리고 아침에 깨끗하게 처리하기로 했다.


그렇게 혼자만의 Hide & Seek을 즐겨 하던 나는, 어느 날 침대를 정리하다가 반대편 남편 쪽 커버쪽에서 비슷한 잔여물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뭔지 모를 반가움과 격한 흥분에 휩싸인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남편에게 물었다. "자기 침대에서 코 파?"


남편은 창피한 듯 그렇다고 대답했고 나는 무심한 표정과 정성스러운 손길로 그것들을 노련하게 치워냈다. 남편은 알까. 내가 코를 파 보았기 때문에 그것들이 뭔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는 걸. 나는 어제 회식하고 기분좋게 술이 취해 온 남편에게 너그러운 말투로 얘기했다. "자기야 여기에 숨기지 말고 차라리 자기는 바닥에 뿌려 그럼 눈에 잘 안 보이니까 내가 스윽 청소할 때 함께 사라질 거야."


남편도 사실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나의 무한한 코딱지 사랑을.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는 철저하게 모르는 척 해 주고 있다. 나는 그 점이 좋다. 무던한 점. 우리는 앞으로도 TV를 보면서, 웹툰을 보면서, 게임을 하다가 이따금 코를 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잘 모아 보이지 않는 곳에 깔끔하게 처리할 것이다. 여기는 그런 집이고, 그런 곳에 사는 우리는 부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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