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머리 파뿌리가 되면 나를 버릴 사람

by 이휘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애인이 아파 죽겠는데 덜덜거리며 뚝딱거리는 사람. 나는 그가 아플 때마다 응급실에 데려가 링거를 맞히고, 한밤중에 포카리스웨트를 사 오고, 수건에 물을 짜 이마에 얹어줬었다. 그런데 그는 내가 아플 때마다 아픈 걸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하고, 응급실에 데려다 달라고 했을 땐 소파에서 웃고 있기도 했다. “진짜? 진짜 구급차 불러?” 공감능력이 없는 건지, 누군가가 아플 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건지 정말 알 길이 없었다.


결혼 일주년 여행 때, 이상하게 많이 아팠다. 어떻게 아픈 건지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불편했다. 걷기도 힘들고 온 몸이 그냥 지치도록 아팠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어떻게 아픈지를 설명할 길이 없다는 거였다. “나 몸이 이상해.” “나 몸이 이상해.” 몇 번을 얘기해도 큰 반응이 없었다. 그는 ‘그래서 밤 산책을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결국 못 걷겠다는 말을 하고 차에 탔는데 분위기가 안 좋았다. 내가 원하는 건 정말 ‘적당한 걱정’ 이었다. 다음날 그가 똑같이 아프기 시작했다.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몸이 급격히 안 좋아지는 그 느낌. 그제서야 그는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알게 된 것 같았다. 우리는 한우 육회를 먹고 식은땀을 잔뜩 흘릴 정도로 크게 탈이 났다.


한 번은 이혼을 하고 친한 동생과 술을 먹다가 너무 취하는 바람에 어지러워서 남편을 불렀다. 아직은 부를 사람이 같이 사는 이혼한 남편 밖에 없었다. 안주를 거의 안 먹고 술만 먹어서였는지, 이혼한 얘기를 풀어놓느라 정신을 쏟아서 그런지 겨우 소주 두 병에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취해버렸다. 문제는 집에 왔는데도 정신을 놓을 것처럼 힘이 들었다는 점이었다. 물을 마셔도 토를 해도 진정이 안 되고 기절할 것 같았다.


“나 구급차 좀 불러줘.”


어리둥절했던 남편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남편은 119를 부르다가 전화를 끊었고 재차 물었다. “진짜 불러?” 화장실 앞에 옆으로 드러누워 괴로워하는 내 앞에서 그는 어이없다는 듯 소파에 앉아 웃고 있었다. 그게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 배가 너무 아파요.” 이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고 자는 동안 링거를 주렁주렁 세 통이나 맞고 나서야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올 수 있었다. 혈관을 찾을 때였는지 링거를 뺄 때였는지 피가 푹푹 많이 나서 옷에 피가 많이 묻었다.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아프면 안 되겠다고 느낀 건 남편 상사들과 술을 먹었을 때였다. 한 시간 만에 소주를 몇 병씩이나 비워내는 술고래 상사는, 내가 테이블 밑으로 버리는 소주까지 잡아내며 술을 먹이기 시작했고 결국 두 시간 만에 KO가 되어 택시 안에서 내내 토를 해야 했다. 다행히 기사님께서 봉지를 주셔서 큰 민폐는 피할 수 있었다. 집 앞에 내리는데 도저히 혼자 걸을 수가 없었다. 남편이 나를 부축하다가 포기했는지 힘을 놓는 바람에 차가운 겨울 아스팔트에 온 몸이 꽈당 하고 넘어졌다. 다음날 팔이 까맣게 멍이 들었다. 남편은 나를 들쳐업고 갈 힘도 의지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현관에 널부러져 누워있는 내 모습을 사진 찍어 몇날 며칠을 놀렸다. 그게 그 때는 재미있는 건 줄 알았다. 아침에 눈 떴을 때 혼자 거실에서 이불 덮고 있다는 걸 감사하게 여겼었다. 나중에 그 사진을 보면 누워 있는 내 모습이 참 처량하다. 거기까지가 딱 내가 대접받을 위치구나 싶어서.


정말 소름끼치게 무서웠던 적도 있었다. 남들 다 걸리는 코로나를 3년 동안 안 걸리다가 막차를 탔을 때였다. 집 구조상 내가 안방에서, 그가 거실에서 자야 했다. 여기까진 원만했는데 가습기는 좀처럼 합의가 안 됐다. 온갖 증상을 다 겪어가며 괴로워하고 있는 코로나 환자에게 가습기는 필수였고 그는 집안의 모든 가전 중에 가습기를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결국 안방과 거실 사이에 가습기를 뒀고 안방 문을 조금 열어두는 것으로 조속한 합의를 마쳤다. 코로나 자가 격리는 나라에서 허락한 합법적 별거였다.


아파 죽겠는 코로나 환자에게 집안일이란 사치였다. 그런데 그가 주말동안 어질러놓은 테이블은 정말 가관이었다. 먹다 남은 라면 국물이 흥건한 컵라면 용기, 배달 음식을 먹고 남은 음식 쓰레기, 쓰레기통까지 20cm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흩뿌려둔 휴지조각들과 비닐들, 그걸 보는데 난 이만큼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아줌마는 코로나에 걸려도 청소를 해야 하는구나. 인격적으로 존중받지 못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반대로 그가 코로나에 걸렸으면 난 또 극진히 모셨을 것이다. 그게 그와 나의 차이며, 내가 ‘다음번에 좋은 사람을 만난다면 그냥 내가 하는대로만 따라해. 나한테 받은 사랑, 정성만큼만 누군가에게 베풀면 너 사랑받을 수 있어’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다.


코로나는 생각만큼 정말 아팠다. 칼을 삼키는 기분, 오한, 두통, 몸살 같은 모든 증상이 한꺼번에 왔고 특히 가래 때문에 숨 쉬기가 괴로웠다. 물을 많이 먹고 잠을 많이 잤는데, 40분마다 한 번씩 잠에서 깨 기침을 해 대느라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한 번 시작하면 기침이 멈춰지지가 않아서 힘들었다. 문제는 안방 문이 열려있어 거실에 있는 남편이 내 기침소리를 신나게 듣는다는 점이었다. 혹시 내 기침소리에 잠을 설쳤을까 싶어 미안했다. 아침에 출근을 준비하는 그에게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쇳소리로 물었다.


“미안. 기침 소리 때문에 잠 못 잤지?”

“어. 존나 시끄럽던데?”


그 말이 참 무섭고 서러웠다. 그는 며칠을 더 ‘될 대로 돼라’ 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온열매트를 뜨끈하게 틀어도 오한 때문에 덜덜 떠는 나에게 그는 ‘추우니까 겨울 이불을 내가 덮고 싶다’고 말했다. 조금 두껍게 입고 자 주면 안 되겠냐는 말에 ‘답답해서 벗고 자야 한다’고 말하는 그를 이길 수가 없었다. 나는 따뜻한 안방에서 온열매트를 틀어놓고 자기 때문에 두꺼운 이불은 본인이 덮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결국 내가 봄 이불 1개와 담요 2개를 겹쳐 덮고, 그가 겨울 이불을 덮고 잤다. 그는 반팔에 팬티 차림이었고, 나는 내복에 두꺼운 옷을 겹쳐 입고 잤다.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 걸까, 라는 생각은 코로나를 걸렸을 때 처음 한 것 같다. 마치 남편이 전세 보증금 중 내 몫을 안 돌려줄 것 같고, 갑자기 이혼을 취하하겠다며 소송을 할 것만 같고, 나를 더욱더 못살게 굴 것만 같았다. 그런 상상들이 점점 커져 괴로워져 갈 때쯤, 다행히 코로나 증상은 멎고 몸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고마운 기억보다 서러운 기억이 더 오래가는 것 같지만 이 정도면 두고두고 곱씹을 만한 것 같다. 그와 나의 관계는 그래프로 따지면 코로나에 걸렸을 때가 최저점이었다. 남보다 못한 사이. 그럴 때마다 이혼하길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검은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서로 사랑하고 보살피기로 약속한 사람들은 더 이상 세상에 없었다. 잘한 결정이라고 혼자 합리화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알아서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그 이후로 어떤 과정으로 다시 사이가 회복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 이상의 최악을 만들기엔 서로가 많이 지쳤던 걸까. 아직도 내가 아플 때마다 그가 어딘가 불편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모습들은 이해가 가질 않지만 더 이상 이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되는 사이가 된 마당에 그냥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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