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커밍아웃

청첩장을 전하는 마음으로

by 이휘

청첩장을 돌릴 때 어떤 사람들은 꼭 만나서 직접 줘야 하고, 반면 모바일로 대신해도 서로 언짢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이혼 커밍아웃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청첩장을 뿌리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나의 소식을 전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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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이런 깔끔한 카드 한 장으로 소식을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 것인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쪽에서 어색함에 괴로워 죽겠는 얼굴을 하지 않아도 되고, 괜찮은 척 하느라 경련을 보이지 않아도 되며, “<나는 SOLO> 나가면 인기 많을 것 같아요.” 라는 기분 나쁜 ㅡ 물론 화자들은 절대 나를 기분 나쁘게 할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안다 ㅡ 위로를 듣지 않아도 된다. 인스타 게시물에 #나의두번째독립 이라는 태그를 달아 광고를 때려버릴지 고민한 적도 있었다. 그럼 남들이 선뜻 ‘좋아요’를 누를 수 있을 것인가. 반대로 나라면 그런 게시물에 댓글은 뭐라고 달아주는 게 적절할까. 파이팅? 힘내세요? 모르겠다.


다행히 나의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줬다. 사실 연애할 때부터 이어져 온 질긴 고민들이 끊이지가 않았었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나의 투덜거림이 잦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거대한 서사의 결과가 이렇게 될 거란 걸 예상이라도 하듯 그들은 묵묵히 잘 했다고 답해주었다. 다른 그 어떤 것보다 나의 행복이 가장 중요한 거라고 하면서. 그런 무미건조한 반응들이 참 좋았다.


위로를 하는 건 오히려 친구들보다는 친한 직장 동료들 쪽이었다. 언니는 젊고 성격도 좋으니까, 작가님은 매력적이시니까, 라는 말로 자꾸만 그 공기를 채우려고 하는 모습이 한 편으론 고마웠다. 그럼 나도 ‘봄이 오면 연하남이랑 연애할 거야’ 라는 시시껄렁한 말로 답해준다. 참 좋은 동료들을 뒀다는 생각이 든 건 생각보다 본인들끼리 비밀유지가 철저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다정하게 이혼한 이유를 물어온다. 나는 그게 가십거리를 소비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적당히 요약할 길이 없어 답을 많이 생략했다. 지금 생각하면 전혀 준비되지 않은 이들에게 내가 일방적으로 고백한 부분이 상당히 미안하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타인의 힘들고 사적인 소식들을 들어줄 준비가 안 되어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고.


그래서 생겨난 게 나의 동그라미 이론이다. 인간관계에서 나라는 ‘점’을 둘러싼 동그라미들이 마치 과녁처럼 퍼져 있는데, 가장 작고 가까운 원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고민도 없이 마음 놓고 얘기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점점 더 큰 원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할 때면 소식의 질과 양은 현저히 달라진다. 1시간 코스 30분 코스 5분 코스가 있는 것이다. 물론 한두 문장 정도로 끝내는 경우도 있다. 아, 저 얼마 전에 다녀왔습니다. 지금은 잘 지내고 있어요. 혹은, 혼자 삽니다. 미혼. 이런 짧은 말들로.


언제나 같은 기준으로 동그라미 멤버들이 결정되진 않을 테지만 이번 일을 통해서 분류기호를 나눌 수는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한창 술을 먹고 동그라미 속 친구들에게 마음을 전하곤 했다. 너는 정말 나의 가장 작은 원 안에 있어. 그게 참 고맙다. 그들은 본인들이 그 자리에 있는 게 당연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그 표정이 참 좋다. 세월이 흐르고 시간을 거치면 동그라미는 점선이 되고 수많은 이들이 들락날락할 거고 나 또한 그 과정 속에서 아마 염병첨병을 떨 것이다. 최선을 다해 지지고 볶을 것이다. 다만 또다시 이런 힘든 사연을 전하느라 서로 짠해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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