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님 가라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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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휘


살면서 가정법원에 가게 될 거라는 예상을 해 본 사람이 있을까. 나는 두오모 성당에서 꼭 사진을 찍을 거야! 체코에서 맥주를 마실 거야! 노르웨이에서 오로라를 볼 거야! 라는 생각은 해 봤어도 서른 여섯 살에 가정법원에 갈 거야! 라는 포부를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협의 이혼 신청을 마치고 나면 조정기일이 적힌 종이를 한 장씩 주신다. 날짜만 주면 시간은 조율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몇 월 며칠 몇 시, 그리고 몇 월 며칠 몇 시. 딱 두개의 타임 중 시간을 맞춰서 와야 한다. 해당 날짜에 둘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참석하지 못하면 협의 이혼 신청은 무효가 된다. 11월 22일과 11월 23일. 우리는 그 두 타임 중 한 타임에 반드시 법원에 출석해야만 했다. 남편은 연차를 써야 하고, 나 역시 팀에 양해를 구해야 한다. 우리는 오후 4시라는 어정쩡한 시간에 출석하기로 되어 있었다.


두 번째 방문은 첫 번째보다는 익숙했다. 주차장이 붐벼 주차가 무척 오래걸린다는 사전 정보를 알았으므로 버스를 타고 갔다. 가방 엑스레이를 통과 시킨 후, 2층으로 들어간다. 법원은 뭔가 큰 잘못을 해야만 올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곳의 공기를 두 번이나 마시니 처음 온 사람들 앞에서 텃세 정도는 부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는 별도의 분쟁 없이 협의이혼을 하는 부부였으므로 <사랑과 전쟁>이나 <신성한, 이혼>에 나오는 장면들처럼 변호사들을 다닥다닥 옆에 끼고 판사님과 가까이 대면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협의이혼 조정실은 엄청 붐비는 이비인후과 같은 풍경이었다. 복도 벽에 붙어있는 수많은 이름들 중에 내 이름을 찾았다. 프라이버시 때문인지 가운데 글자가 공란으로 비어져 있었다. 오후 4시 5분. 4시 타임에 들어가는 부부들이 20쌍 이상이었던 것 같다. 대기석에 앉는데 대부분이 5~60대 분들이셨고 객관적으로 봐도 얼굴들이 많이 상해 있으셨다. 저런 얼굴들을 가지기 전에 지옥에서 빨리 탈출하는 느낌도 났다. 오히려 그 분들 쪽에서 비교적 생기 있어 보이는 우리를 유심히 쳐다보셨다. 커피 여기다 둘까? 여기에 앉자. 그런 말들을 하고 대기했다.


우리보다 먼저 들어가는 분들이 정말 5분도 안 돼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줄 서서 이혼을 하고 대답만 잘하면 이혼시켜준다는 소문이 진짜였구나 체감했다. 언제쯤 차례가 올까 하고 기다리는데 배우자가 일본인이고 타국에 있어서 함께 오지 못했다는 한 남성 분이 실갱이를 하고 있었다. 이곳에 온 모두가 각자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이름이 불리면 신분증을 들고 조정실에 들어간다. 코로나 때문에 판사님과는 조금 멀리 떨어져 마주 앉았다. 마스크를 내려 본인임을 확인한 후, 몇 가지를 더 물어보신다. 아버님의 성함이 뭔지, 주소지는 뭔지, 같은 기본적인 정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물어보신다.


"두 분 협의 이혼 신청하신 게 맞나요?"

"네."

"지금도 협의 이혼 변함 없으시고요?"

"네."


두 번째 질문에 그가 너무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소심하게 대답했다. 나는 확신의 목소리로 대답했는데. 잠깐 속상했다. 자꾸 생각날 것 같은 순간이 됐다. 아마 이 기억도 점점 옅어질 것이다.


판사님 앞에서 그렇게 '네'를 두 번 정도 하면 과정은 끝이 난다. 그리고 설명을 듣게 된다. 이혼 신고서를 구청에 90일 안에 제출해야 이혼은 완료가 되고, 그 사이에 상대가 이혼 철회서를 내면 또다시 이혼은 무효가 된는 점. 구청에 이혼 신고를 마치면 일주일 안에 처리가 완료되고 그 일주일간은 가족관계증명서를 뗄 수 없다고 했다. 조정을 마치고 나오니 5시가 좀 넘어 있었다. 구청은 6시 안에 도착해야 한다. 서둘러서 구청을 가자고 하는데 그가 꼭 오늘 안 해도 90일 안에만 하면 되는 거 아니나며 또 게으른 소리를 한다. '오늘 연차 쓴 거 안 아까워? 그냥 오늘 다 처리하자. 그래야 나도 대출을 알아보든 집을 알아보든 하지.' 그렇게 어르고 달래서 구청에 데려갔다.


혼인신고서 작성도 혼자 가서 했는데 이혼신고서 작성도 혼자 척척 적어낸다. 그는 옆에서 "글씨 잘 쓰네. 한자 잘 쓴다." 같은 말만 건넬 뿐이다. 마음이 많이 속상했으나 우리는 괜찮은 척을 했다. 한참을 바쁘게 구청에서 이것저것 적어내는데 팀 카톡방이 마구 울린다. 오늘도 우리팀은 치열하게 회의를 하고 있고, 내가 없는 동안 또 수많은 것들이 뒤집어졌다가 다시 돌아왔다가 했나 보다. 또 괜찮은 척 답장을 해 준다.


아주 오랜만에 또 외식을 했다. 사이가 좋았을 때 몇 번 먹으러 가려다가 실패한 편백샤브샤브 집이다. '무슨 일 있거나 하면 종종 연락해.' 그가 처음으로 연락하라는 말을 한다. 다시는 안 볼 것처럼 굴었으면서. '잘 살아.' 그런 말들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헤어질 것 같은 모든 제스처가 끝나고 아직도 같은 집으로 돌아간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이제 집만 알아보면 된다. 하지만 당장은 12월에 9박 10일 동안 중요한 촬영이 있어서 그 전에 집을 알아보는 건 물리적으로 도무지 시간이 안 나서 무리였다. 12월 중순이 생일이라 만 34세 청년이 끝나버리기 때문에 그 전에 빨리 모든 법적 문제가 끝났으면 했지만 이별에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걸 알아서 기다려주고 갑론을박 하다 보니 저금리 찬스였던 청년대출의 시기도 지나갔다. 어쩔 수 없다. 사실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어쩔 수 있는 시기는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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