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성냥팔이 소녀가 된 기분
친구인지 남편인지 남인지 가족인지 타인인지 지인인지 제대로 구분할 수 없는 관계인 채로 우리는 조정기간을 겪고 있다. 남들과 다른 점은 함께 저녁을 먹고, 같은 이불을 덮고 잔다는 것이다(침대의 끝과 끝에서 자 보면 이스턴 킹 사이즈가 얼마나 큰 사이즈인지를 체감하게 된다). 그래도 어떤 하루는 반찬을 만들고, 외식을 하고 들어가게 되면 보고를 하고, 밤에 자기 전에 마실 물이 필요하면 떠다 주기도 한다. 장어 덮밥이 먹고 싶으면 배달을 시키고, 라면을 먹다가 쳐다보면 한 입 줄까, 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절대 하지 않는 행동들도 있다. 안아준다거나, 손을 잡는다거나, 자다가 다리를 겹쳐 올린다거나, 주말에 어디론가 바람을 쐬러 놀러 간다거나, 외식을 함께 하지는 않는다. 누가 그렇게 정하자고 한 적도 없다. 다만 서로의 암묵적인 동의만이 있는 것이다.
어떤 날은 새로운 미래에 가슴이 부풀기도 하고, 어떤 날은 실패라는 쓴 맛을 혼자 느끼고 참담한 표정으로 울기도 한다. 누군가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애써 웃기도 하고, 표정관리가 안 돼서 모두에게 말도 안 되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서로에게 더 상처가 없기를 바랄 뿐이지만, 그와 동시에 별 잡음 없이 잘 마무리 됐으면 하는 냉정한 마음도 분명 있다.
그러나 오늘처럼 잠이 안 오는 밤에는 자꾸만 슬픈 생각도 든다. 이 세상에서 내 가족이 사라지는 게 분명하고, 나의 오랜 친구가 사라지고, 나는 외로워질 거라는 생각. 이 세상에서 절대적인 내 편이 사라져 버린다는 생각. 하지만 이것 또한 내가 속는 감정일 것이다.
요즘 일이 부쩍 힘들어지면서 느끼는 거지만 7년 동안 나는 엄청난 위로를 받았다. 그런 시원한 위로는 이제 살면서 다시는 받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 위로가 단단하게 굳어버리는 바람에 정작 그와의 관계를 위해 스스로를 구기고 애쓰는 과정들은 들여다보지 못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언제나 내 자신은 뒷전이었다. 아니지. 어쩌면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함이라는 목표 자체가 내 자신을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그 긴 시간동안 나를 언제나 웃게 하고 언제나 단단하게 만드는 그의 날카로운 위로가 무척 좋았다. 그의 또다른 단점들을 모두 보완할 수 있게 하는 문장들이었다.
예전에 연애를 하다가 헤어진 사람 사이에도 분명 이런 비슷한 감정이 있었다. 나는 다시는 이런 감수성으로 누군가와 대화할 수 없겠구나를 느꼈고 그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도 오랜 기간을 후회했다. 좋은 걸 보고 멋진 걸 보면 언제나 그 사람이 생각났다. 그게 좋아하는 감정인줄 모르고, 그에게 나를 좋아하는 감정이 남아있는 줄도 몰랐다. 하지만 무사히 작별했다. 이번 작별도 그렇게 무사히 지나갈 것이다.
오늘처럼 우울한 날은 이런 생각을 한다. 행복의 단계에 거의 다 왔던 것 아닐까. 정말 조금만 더 참으면, 조금만 더 갔으면 도착지가 있지 않았을까. 결국은 내가 버티지 못해서 도중에 하차하는 것일까. 7년을 더 가보자고, 조금만 더 가 보자고 하며 달려왔는데 정말 딱 한 발 전에 내려버리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가 그런 마음을 조금씩 없애준다. 정이 뚝뚝 떨어지는 어떠한 말들과 어떠한 행동들로. 그래서 나는 다시 한 줌 한 줌 이성을 찾는다.
그렇다. 하필 오늘처럼 괴로운 날이 있다. 참 외롭고 괴로운 날이.
그런 날은 하필 찾아와서는 내 친구들 중 아무에게도 연락하기가 망설여지고, 나를 빼고 모두가 행복한 것 같고, 모두가 내가 어떻게 되든 말든 별 관심 없는 것 같이 느껴진다. 어차피 본인들은 행복할 거면서, 본인들이 내 인생을 대신 정하고 살아주는 것은 아니기에, 그냥 그저 그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달콤한 말들을 할 뿐이라는 못난 생각이 들곤 하는 것이다. 언제나 나의 편이라고 믿게 해 주는 사람들이지만 사실 그들의 삶은 따뜻하고 풍요로워보인다. 그렇게 성냥팔이 소녀가 된 기분으로 추운 곳에서 창문 너머의 친구들을 바라보고 시샘한다. 내 맨발이 더 춥게 느껴진다. 그들이 행복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보다는 '거 봐, 너네는 행복하잖아' 라는 생각이 들며 자존심이 구겨져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다 다시금 깨닫는다. 지금의 내 기분이 그럴 뿐이라는 것을. 정말로 소중한 걸 알게 해 주는 내사람들은 한 치의 거짓됨 없이 나의 행복만을 바라고 걱정해주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아직도 멀었나 보다 하는 생각도 든다.
잊지 않아야 겠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나의 바보 같은 생각보다 미래는 훨씬 더 잘 알차고 행복할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반듯한 미래에 얼마든지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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