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지금 같이 살아?"
"응..."
"아직 집 정리 안 됐어? 안 나가겠대?"
"응."
이혼할 남편과 같이 살고 있다는 말에 답답해서 돌아가시겠다는 표정을 하는 건 꼭 상대방 쪽이다. 나는 8월에 남편에게 이혼하자는 간청을 했고, 그 후로 8개월을 더 같이 살았다. 그동안 우리의 장르는 코믹이었다가, 호러였다가, 의미를 알 수 없는 예술영화였다가, 꽁트였다가, 격한 액션이었다. 어쩌다 웃음이 날 때에는 매운 맛에 중독된 사람처럼 좋았던 시절이 그립고, 도끼눈을 뜨고 악을 버럭버럭 쓸 때에는 이혼이 잘한 일 같았다. 물론 이 모든 과정에서 이혼을 하겠다는 의지 자체가 꺾이거나 이혼을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혼할 남편과 살면서 한 가지 바뀐 것이 있다. 음식이 아까워졌다는 것이다. 내가 사 둔 라면을 그가 끓여먹으면 그게 그렇게 밉고 아까울 수가 없었다. 내가 먹으려고 재화와 시간을 들여 사 온 음식들을 아무렇지 않게 아무런 노동과 감사함 없이 주워먹는다? 이게 그렇게 용서가 안 됐다. 컵라면 한 개에 이렇게 사람이 치사하고 옹졸한 생각이 들 수가 있나 싶어 괴로웠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시기는 남편이 밥 먹으면서 쩝쩝대는 소리가 싫어서 안방 문을 닫아버릴 정도였으니 이건 라면 한 개의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미움의 척도가 문제인 것이다. 언제나 함께 먹고 싶은 것들을 냉장고에 채우고, 요리를 곧잘 하는 나와 그가 신나게 간을 봤던 추억의 부엌이 언제부턴가 휴전선을 그어놓고 총질을 하는 전쟁터가 됐다. 퇴근해서 먹으려고 놔둔 음식들이 비어있으면 분노가 하늘로 치솟았다. 게다가 먹고 난 설거지들은 국물조차 제대로 버리지 않고 싱크대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었다. 나는 청소아줌마인가. 엄마인가. 그런 생각들이 들기 시작하면 싱크대를 뜯어서 쾅쾅 내리치고는 대기권 밖으로 내던지고 싶었다.
한 번은 내가 직장 후배들과 1박 2일로 여행을 갔다 왔는데, 내가 조금 더 비용을 많이 내는 대신 남은 종이컵과 컵라면 1개, 와인 따개 같은 것들을 집으로 가져왔다. 그런데 컵라면을 집으로 챙기는 순간부터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컵라면을 그가 뺏어먹을 거라는 생각. 나는 더 치사해지기로 결심했다. 컵라면을 찬장이 아닌 안방 이불장 쪽에 슬며시 숨겨두는 것이다. 완벽한 카모플라주다. 이 정도면 완벽하지.
그러나 나의 치밀함보다 그의 먹을것을 향한 탐험 욕구가 더 컸던 것일까. 퇴근을 하고 현관 문을 여는데 개수대에 왕뚜껑 컵라면이 놓여있다. 먹다 남은 국물을 머금은 채. 나는 절규한다.
"이거 먹었니?"
남편은 소파에 앉아 세상에서 가장 순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퇴근하자마자 없어진 컵라면의 행방을 묻는 내가 이상했을 것이다. 평소 라면이 한 개씩 없어질 때마다 싱크대를 벅벅 뜯어 쾅쾅 내리치는 상상을 하는 나의 분노를 그가 알 리 없는 것이다. 그래서 컵라면 하나에 흥분하는 내 모습이 너무 웃겼을지 모른다. 그러나 컵라면을 해치운 것도 모자라 대충 개수대에 놔둔 저 한결같은 무던함과 게으름은 나를 폭발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의 옹졸함을 고백하고 만다.
"이거 너가 먹을까봐 내가 숨겨둔 건데 찾아 먹었니?"
남편은 웃는다. 내가 이렇게 발끈하는 것 자체가 웃긴 모양이다. 그리고 다시 그러려니 모드로 돌아간다. 그는 또다시 찬장에서 라면을 꺼내 먹을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라면 스프 껍데기와 봉지를 쓰레기통까지 30cm도 떨어져 있지 않은 가스레인지 옆에 그대로 두고, 먹고 남은 라면국물이 찰랑거리는 냄비를 그대로 개수대에 놓아둘 것이다. 내일 치울게, 라는 다섯글자를 가훈처럼 내뱉으며. 그리고 나는 내일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저 라면 냄비를 박박 닦을 것이다. 마치 연필과 지우개처럼 그가 지나간 자국들을 내가 박박 지우며 내 영혼이 깎이는 경험을 언제까지나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나와 그가 동거를 하는 데에는 수많은 요소들이 있었다.
첫째로 함께 사는 전세 아파트가 절대 나가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전세가 하락으로 인해 우리가 들어왔던 가격으로는 아무도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집주인이 아직 만기 전이니 원래 가격으로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달라고 하는 바람에 주변과 시세 차이가 크게는 7천까지도 났다. 집주인 마음도 이해는 됐다. 그러나 두 달씩이나 아무도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이 집이 나가야 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가 있었다. 대출을 제외한 보증금 중 2천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돈은 내 돈이었다. 게다가 대출은 그의 명의였으므로 말 그대로 복잡한 사정이었다. 허리 디스크가 올 정도로 악착같이 벌어 모든 돈은 싹싹 긁어모아서 집과 가구, 살림에 쏟아부은 나였으므로 수중에 여유자금이란 풀옵션 원룸 오피스텔을 얻을 정도밖엔 없었다. 하지만 집 만기까지 단기임대 오피스텔에서 살기가 싫었다. 주변의 만류도 있었다. '걔가 나가야지 너가 왜 나가냐.' 맞는 말이다. 도대체 누구 때문에 이혼하는 건데 정작 내가 나가서 빌빌거릴 것인가.
둘째로 그가 집을 나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애초에 집을 구할 때 나의 직장과 가까운 곳으로 집을 구해서 늘 강남으로 출퇴근을 하는 그가 아침 저녁으로 짜증과 불만이 심했다. 나만큼 반갑게 이 집에서의 탈출을 꿈꿀 줄 알았으나 정작 그도 대출이 묶여 있어 이 집이 나가야 새로운 집과 전세 대출 계약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이혼하면 원룸 오피스텔에 살 거라는 그의 말에 2천만 원을 먼저 줄 테니 어디 월세라도 얻으라고 설득해보았지만 통하지 않았다. (사실 이렇게 한두줄로 정리될 정도가 아니라 오랜 시간 설득에 공을 들였다.) 그도 그만의 사정과 계획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더이상 얘기를 꺼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계속 같이 살았다. 8월에 이혼을 얘기하고 10월에 처음 법원을 간 우리는 3월까지 동거를 계속했다. 내가 12월까지 너무 바쁜 프로젝트가 있어서였다. 그리고 내가 무리를 해서라도 먼저 이사를 나가기로 했다. 결국 절박하고 간절한 사람이 더 바쁘게 되는 법이다. 1월에 집을 알아보고 2월에 계약을 하고 3월에 이사를 하기까지 서사가 또 한 바닥이다. 조금씩 풀어보기로 한다.
*구매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