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바이블 : 호칭정리

AD 77일

by 이휘


1장 1절 : 태초에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 있었다.


<A.D (After Divorce) + 60일>


이혼하는 부부들의 상당수가 수많은 정보를 교류하는 네이버의 어느 카페에서는, 과실이 있는 배우자를 '유책이'라고 부른다. 주로 유책이들은 바람을 피거나, 도박을 하거나, 빚을 지거나, 가정에 무책임한 이유로 유책이라 불린다. 유책이 때문에 못 살겠어요, 유책이가 전화를 안 받네요 등등. 회원수가 13만 명이므로 유책이들이 최소 6만 5천 명은 존재한다는 얘기다.


하늘이 두쪽으로 갈라질 정도로 거대한 사건이 없는 상태에서 우리처럼 이혼한 경우에는 배우자를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모든 것을 내탓으로 삼는 게 습관인 나에게는 그를 유책이라고 부를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내 휴대폰에 본인이 '이름'으로만 저장되어 있는 걸 발견하고 적잖이 서운해했다. 그는 마치 반격하듯 나를 '그사람'이라고 저장해야겠다며 폰을 만지작거렸다. 그 사람. 그래서 나는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아닌 '그 사람'이 됐다. 어떤 날은 술에 잔뜩 취해서 뜬금없이 나를 향해 "넌 나의 엑스니까!"하고 소리치고는 벌러덩 누워 자기도 했다. 돌고돌아 우리는 결국 최종적으로 두개의 호칭에 도달했다.


룸메. 친구.


우리는 7년의 세월을 견고하게 쌓아온 연인과 부부 사이에서 결국 룸메 이성친구로 전락했다. 이혼을 해도 당분간 같이 지낼 수밖에 없는 사정을 아는 지인들에게 3인칭으로 그를 부를 때는 '룸메'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다. 가끔 밤에 늦게 퇴근하게 되는 날에는 서로의 수면을 방해할까 염려하는 마음으로 카톡을 주고받는데, 그럴 땐 여지없이 '친구야' 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다.


'친구야 나 오늘 회식'

'친구야 혹시 내꺼 택배 잘 도착했는지 봐 줄래?'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친구야, 친구야. 익숙하면서도 뭔가 이상하다. 텍스트로 입력할 땐 에러가 나지 않지만 급하게 부를 때는 몇 번씩 '자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럴 땐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자, 친구야."

"그걸 자ㄱ.. 친구가 안 했어?"


그렇게 몇 번을 덜컹거리다 보면 뇌도 적응을 하는지 부드럽게 '친구야' 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렇다고 우리가 친구인가? 그렇지도 않다. 하지만 이보다 더 친한 친구가 있는가? 그것도 그렇지도 않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런 호칭 고민도 결국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더이상 서로를 부를 일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혼을 농담처럼 겪어냈다. 이혼을 앞두고 서로를 친구라고 부르고 챙기는 모습들이 누가 보면 이상하다고 할 수도 있고, 결혼도 이혼도 장난이냐고 물어올 수도 있지만 그렇게 거짓으로라도 즐거이 겪어내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모든 게 무너질 것만 같았다. 일주일 내내 눈 한 번 안 마주치는 냉전의 시기를 지나 결국 우리는 함께 밥을 먹고, 저녁도 해먹고, 인사도 하는 사이가 됐다. 사이 좋게 지내자, 그 한 문장만을 가슴에 담아놓고 룸메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다. 오늘도 룸메는 연락이 올 것이다. 회식을 하느라 늦게 들어온다는 연락을 하든지, 아니면 내가 저녁을 밖에서 먹고 들어올 것인지를 묻기 위해.



<B.C (Before Crisis) + 30일>


휴대전화에 서로를 지칭하는 이름을 바꿔 저장하는 건 가슴 떨리는 일이다. 누군가는 하트를 덕지덕지 붙이기도 하고, 웃긴 별명을 지어주기도 한다. 오글거리는 애칭도 둘만의 세계에선 당당하고 떳떳할 수가 있다. 우리는 일적으로 만나 업무용으로 서로를 저장했다가, 연애 초반에는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의 이름으로, 몇 년이 지나고 나서는 말랑이와 복댕이로 오랜 시간 저장되었다. 이름에서 애칭으로 애칭에서 호칭으로. 다시 이름으로 저장될 일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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