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2개월만에 받은 전화

AD 171일

by 이휘

지난했던 시간들이 지나고 서류 정리도 이혼 신고도 모두 끝났다. 이혼한 남편과 룸메이트처럼 사는 이상한 동거를 한 지 2개월.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070으로 시작되는 번호에는 자동으로 'OO 스튜디오'라는 발신인 이름이 적혀있다. 올 것이 왔구나.


- 안녕하세요, 신부님! 여기 OO 스튜디오입니다!


명랑하기가 그지 없는 목소리에 나도 힘을 쥐어짜내 가식적으로 대답한다.


- 아, 네! 안녕하세요!


웨딩 앨범을 장기간 찾아가지 않아 전화를 드린다며, 방문이 어려우시면 무료로 택배로 보내드린다는 친절한 안내에 어쩔 수 없이 주소를 불러줬다.


애초에 수요가 없는 앨범이긴 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주말에 찾으러 가자고 하면 그는 갑자기 피곤한 직장인의 가면을 쓰고 드러누웠다. 한 주 두 주가 지나고 그렇게 1년 6개월이 지났는데 우리는 이혼을 하게 됐다. 차라리 쓰레기로 버리게 될 거면 오히려 안 찾아둔 게 잘 됐다고 생각했을 무렵. 우여곡절을 지나 어떠한 끝에 다다른 나와 그의 한 때가 아무 연고도 없는 창고에 유령처럼 남아 있다는 사실이 찝찝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찾아갈까 말까를 고민하다 몇 개월이 지났고 어차피 버리게 될 앨범 그냥 잊어버리자고 놔두니 이 지경이 됐다. 친절하고 상냥하게도 웨딩앨범이 집까지 제 발로 찾아온다.


굳이 얘기하자면 나는 모든 일에 1안과 2안 이상을 생각하는 계획적인 편이고 그는 발등에 불이 붙어서 타는 냄새가 날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는 스타일이었다. 결혼도 그렇게 준비했다. 결정할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지만 그렇게 겨우 한 고개를 넘으면 나만 사람을 들들 볶는 조급한 사람이라는 모양새가 됐다. 치열한 싸움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룸메이트의 자격으로 '명절에 본가에 내려갔다가 언제 돌아오느냐'고 물으면 '가 봐야 알지' 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사람. 그 간극은 절대로 좁혀지지 않았고, 앞으로는 굳이 좁힐 일이 없는 남남이 됐다.


원래 남의 얘기에는 감도 놓고 배도 놓고 사과도 깎아주는 나지만, 이상하게 나의 연애와 나의 결혼에는 어딘가 모자란 사람처럼 덜덜거렸다. 뒤늦게 하는 얘기가 아니라 나는 그를 무척 좋아했지만 관계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몇 번이나 만나고 헤어지면서 합리화시켰던 글들도 참 많다. 행복만 한 것처럼. 게다가 나에게는 노력할 자신이 있었다. 최선을 다 할 자신이. 가정과 행복과 평화를 위해 나는 본업 외에 열 군데도 넘는 투잡 쓰리잡을 해 가며 프리랜서로서 소득을 올리고, 자기관리를 위해 운동을 하고, 집을 정돈했다. 태생이 다정한 사람이었고, 언제나 재미있는 사람처럼 굴었다.


물론 그도 좋은 사람이었다. 용서와 실수가 반복되고, 개선되지 않은 수많은 것들에 내가 지쳤을 뿐이다. 그걸 겨우 살아보고 결혼을 해 보고 나서야 안 것 뿐이었다. 사실 이혼하면서도 의문이 늘 있었다. 참지 못했던 나의 잘못인지, 내가 더 너그럽지 못한 탓인지, 더 좋은 방법은 없었을지에 대해서 강렬하게 고민했다. 잘못 풀이한 해답을 두고 혹시 맞을 수도 있지 않을지 이렇게 풀고 저렇게 풀어봤지만 오답처리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성을 찾고 보면 나는 그 어느때보다 선명한 확신이 있었다. 이혼이 좋은 선택이라는 확신. 두 달이 지난 지금, 다시 복기해 보면 어디가 틀렸는지가 정확히 보인다. 다시 돌아가도 나는 같은 선택을 했겠지만 지금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 완벽한 실행이었다.


여기에 더불어 이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울어준 수많은 주변 사람들이 있다. 각자 본인이 가진 만큼의 위로를 건네는데 그게 정말 감사하고 귀엽다. 옛날에는 내가 많이 보살피고 살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들의 품이 너무 따뜻하다. 뜬금없이 아침부터 '곧 봄은 올 거야' 라는 문자를 보내는 서툰 문장부터 '우리집에서 자고 가'라는 애엄마들의 다소 저돌적인 제안, 법적인 자문을 해 주는 사람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술을 사주는 친구들. 걱정 안 하는 척 하지만 누구보다 걱정하고 아파하고 아껴주는 부모님과 가족들. 일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자존감을 키워주는 직장 동료들. 나의 가장 사랑스러운 버팀목이다.


이제 이번 주는 집을 알아보러 다녀야 한다. 단순히 이사할 집을 알아보는 수준을 넘어서 신경 쓸 과정이 참 많아서 이 또한 다이내믹하다. 새 술은 새 잔에 담는다고 했다. 나의 마음을 행복하게 뉘일 좋은 집을 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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