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에 관한 것들

AD 172일

by 이휘

세상에 수많은 미신들이 있다지만 사실 그 중 대부분은 별 것도 아닌 게 태반이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괜히 뭔가 거슬리고 신경쓰이게 한다거나, 맹목적으로 믿고 싶은 미신들은 있기 마련이다. 일종의 징크스처럼. 그래서 다들 소금을 뿌리고 고사를 지내고 팥주머니를 숨겨 두나 보다.


침대 바깥쪽에 남편을 재우면 남편이 겉돈다? 뭐 그런 이야기를 이혼 얘기가 오간 후에 뒤늦게 본 적이 있다. 몰랐던 얘기는 아니었으나 다시금 보게 되니 그럴듯 했다. 그런데. 그럼 내가 바깥쪽에서 잘 땐 내가 겉도나? 바람난 사람들은 애초에 침대 바깥쪽도 아닌 집 바깥에서 자고 들어올 텐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관상도 사주도 통계학이라는 말이 다 결과론적인 말이기 때문인 것만 같다.


금리 때문에 모두가 아비규환이고 전세가는 점점 내려가는 판국에 우리는 이혼을 했다. 당연히 집주인은 다음 세입자를 구한 뒤에 나가달라는 답이 왔다. 그것도 원래 우리가 처음 들어왔을 때의 가격으로. 새로운 세입자가 구해질 리 없었다. 어차피 급한 건 저 쪽이 아니라 이 쪽이다. 만기까지 7개월. 앞이 캄캄한 순간이었다.


부동산에 연락한 후 2개월 동안 단 한 명도 집을 보러 오지 않았다. 당연하다. 시세보다 많게는 6천 정도 비싼 집을 어느 누가 용감하게 보러 올 리 없었다. 자선사업가나 기부를 하러 들어오는 게 아니라면 성사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던 중 며칠 전 엄마의 한 마디가 나의 관심을 샀다.


"현관에 가위 거꾸로 걸어놓으면 집이 빨리 나간다던데."


도대체 왜 귀가 쫑긋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엄마에게 저돌적으로 질문세례를 하기 시작했다. 거꾸로 거는 게 손잡이가 위로 거는 거지? 꼭 현관에 걸으래? 진짜 신기하다. 게다가 나의 마음에 쐐기를 박은 엄마의 한 마디.


"우리 왜, 옛날에 주택 살았을 때 그 집이 하도 안 나갔었단 말이야. 몇 달을 내놔도 계약이 안 됐었는데 가위 걸어놓자마자 나갔잖아. 갑자기 우리처럼 급하게 이사와야하는 가족이 있어서 그 집이 들어와서 우리가 아파트로 나간 거야."


사람마다 믿고 싶은 미신이 있다. 나는 그길로 집에 오자마자 가위를 현관 앞 벽 고리에 걸었다. 찾아보니 잘 되는 장삿집이나 고깃집 가위를 얻어서 걸어놓으면 집이 더 잘 나간다는 썰도 있었다. 남이 썰던 가위보다 그냥 내 집 가위가 편해서 가위를 걸어놓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음날. 여기서 갑자기 누가 집을 보러 왔다는 이야기로 흘러가면 이 흐름이 얼추 맞을지 모르겠으나 다른 미신(?)이 나의 발목을 잡는다. 홍대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나도 모르게 구제숍에 들렀다. 소위 명품 옷들을 잘 케어 관리해서 파는 가게였다. 여기에 내 옷은 없어, 라는 생각이었지만 이상하게 홀린 듯이 두 벌을 샀다. 영수증도 받지 않고 계산하고 나왔는데 버스에 타자마자 후회를 했다.


'중고 옷을 왜 샀지.'


평소 중고거래에 관한 큰 거부감은 없다. 다만 성격상 중고로 물건을 팔아본 적은 많지만 구매는 하지 않는 편이다. 새 제품을 사서 쓰는 기쁨과 만족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환경 문제 때문에라도 중고 물품을 사고 파는 건 정말 중요한 화두지만 남이 입던 옷, 쓰던 물건을 직거래도 아니고 구제숍에서는 절대 안 사는 내가 그 날은 이상하게 두 벌이나 사고 만 거다. 그리고 수많은 미신들이 떠오른다. 주워온 인형을 어디다 뒀는데 그 인형이 어쩌고 저쩌고. 남이 입던 옷을 주워다 입혔는데 애가 아프고 어쩌고 저쩌고. 애초에 나는 그 옷이랑 안 맞았던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자마자 그냥 헌옷수거함에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현관 근처에 방치해뒀다.


그리고 어제. 이사갈 집을 알아보러 갔다가 이상한 집을 가계약 할 뻔 했다. 부동산 중개사 두 명이 나를 들들 볶아서 애초에 판단 자체를 침착하게 할 수가 없었다. 하루종일 마음이 너무 깝깝했다. 집에 와서 마음을 다잡았다. 휘둘리지 말고 차분하게 판단하기로 마음먹었다. 일이 있어 밤에 작은 방에서 작업을 하는데 저놈의 옷이 거슬리기 시작한다.


'저거 내일 버리고 내일은 내가 진짜 내 집 찾는다.'


오늘 눈 뜨자마자 버릴 옷을 챙겨서 헌옷수거함에 말없이 구겨넣었다. 사실 그 옷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너무 급하게 서둘러서 계약을 하려고 했던 내 마음가짐의 문제였을 뿐. 다른 날보다 더 씩씩한 발걸음으로 부동산으로 향했다. 보폭이 커지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도착해서 만난 중개사님은 더없이 친절하고 편안하게 대해주셨고 다섯 군데 집 중에 그냥 '여기가 내 집이구나' 하는 집을 만나 가계약을 완료했다.


"집이라는 게, 직접 보면 정말 딱 느낌이라는 게 있어. 들어갔을 때 아 여기가 내 집이구나, 하는 편안한 마음이 들면 그게 너의 집인 거야."


독립하고 집을 알아볼 때마다 되새기는 엄마의 문장이다. 다행히 오늘 그런 집을 만났고, 다음주에 계약을 하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 기분좋게 웃었다. 현관 옆에 걸린 가위를 보고 꾸벅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잘 준비해서 나가겠습니다.


뭐든 지나치면 마음과 머리를 갉아먹겠지만 가끔은 바보처럼 이런 미신들을 믿고 지키고 싶을 때가 있다. 미신이라는 게 별 게 있을까. 안 믿으면 그만이고 신경쓰이면 없애고 믿고 싶으면 지키면 그만이다. 만약 정말 마음에 드는 옷을 중고로밖에 살 수 없다면? 나는 지구와 환경을 수호하기 위한 중고거래용사가 되어 그 옷을 일백퍼센트 구매할 거다. 다 각자의 기호와 가치관에 맞게 지키면 된다. 기우제를 해서 비가 오는 게 아니라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니까 결국 통하고 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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