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망천

AD 173일

by 이휘

“이건 내가 산 거니까 내가 가져갈게.”

“프로폴리스 반띵 할까?”

“가전은 뭐 뭐 가져갈 거야?”

“나 스타일러는 필요 없어”


이혼을 하고 살림을 찢는 일은 가랑이 찢는 것만큼이나 괴롭고 어설프다. 숟가락 하나, 충전기 하나까지도 어떻게 나눌지를 고민해야 한다. 다 버리고 몸만 떠나기, 모든 걸 다 챙겨 나오기 같은 옵션 같은 건 없다. 우리는 식탁에 앉아 집안에 남아도는 온갖 영양제들을 늘어놓고 니꺼 내꺼를 나누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사이 좋은 신혼부부 같다. 비타민은 너가 먹을래? 아르기닌은 반띵 해 주라. 킥킥. 이러고 있는 우리 모습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지금 생각하면 이렇게 꽁냥거리는 모습 자체가 조금 슬펐던 것도 같다.


애초에 이사를 아파트로 갈 생각이어서 가전은 필요했다. 그는 풀옵션 오피스텔로 갈 계획이라고 했다. 가전은 대부분 내가 가져가기로 했으나 이 과정도 말이 참 많았다. 그는 주요 가전을 내가 가져가는 대신 돈을 달라고 했다. 내가 위자료 청구를 안 한 것도 억울한데 돈까지 쥐어주고 집을 나와야 한다는 게 억울했다. 하지만 합의란 쉽지가 않았다. 결국 나 혼자 가전을 다 구매한 셈 치자 생각했다. 침대와 소파, 시스템 행거, 스타일러만 빼고 모든 가전 가구를 다 가져나오기로 하고, 나중에 그가 이사를 나가게 될 때 처분하게 되면 처분한 값은 절반씩 나눠가지기로 했다.


네이버 부동산 앱으로 집을 찾아 본 사람들은 안다. 원하는 옵션과 보증금에 따라 파란 풍선이 늘었다가 줄었다가 한다는 걸. 처음은 호기롭게 가격을 설정하고 멀쩡한 집을 구경한다. 그러다 치솟는 금리가 내 발목을 잡는다. 너 한 달에 전세 이자 얼마씩 낼 수 있어? 싱긋 웃는 금리의 소름끼치는 미소에 보증금을 낮춘다. 집이 이렇게 없다고? 이게 집이야? 그렇게 나도 모르게 점점 서울 외곽으로 지도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니 여긴 너무 멀잖아. 너 지금 상암까지 걸어서 출퇴근하는데 대중교통에서 보내는 왕복 두 시간, 견딜 수 있어? 다시 가격을 올린다. 멀쩡한 집이네? 그런데 금리가...? 이렇게 무한 반복을 하다 보면 서울에서 ‘적당한 가격’에 ‘제대로 된 집’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이혼하면 부천 망하면 인천이란 말도 옛말 같다. 부천도 삐까뻔쩍하고 인천도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이사 갈 집을 알아보는 시기가 하필 겨울이라 마음도 춥고 몸도 추웠다. 어딜 가나 아파트 단지에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즐비했고 건물 밖에서 혼자 중개인을 기다리다가 바람이라도 쌩하게 불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게 겨울에 집을 보러 다녀서 그런 건가 내 마음이 그런 건가’ 친구가 답했다. ‘둘 다’. 결국 돌고 돌아 마음의 드는 집을 찾아 가계약을 하고 집에 들어온 날은 그렇게 가슴이 뛸 수가 없었다. 뭔가 새로운 전환점이 막 시작되는 것만 같았다. 소파 위에 걸어두었던 웨딩 액자 사진을 조심스럽게 내려 침실 한 켠에 뒤집어두었다.


잔금일까지 한 달도 넘게 시간이 남았는데 내가 가장 먼저 시작한 건 살림을 구분하는 일이었다. 내가 가져갈 짐과 가져가지 않을 짐을 구획별로 나누는 것.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신발장부터 시작했다. 여름 신발부터 케이스에 담아 이삿짐 박스에 담기 시작했다. 지네도 아닌 게 무슨 신발을 그렇게 많이 샀는지 징그러웠다. 다이어리에 차근차근 적었다. 내일은 베란다, 다음 주는 안방, 거실, 욕실 순서로 짐 구분. 부엌은 밥 해먹어야 하니까 맨 나중에. 수건은 한 장도 가져가지 말아야지. 그렇게 조금씩 정리하다 보면 그와 나의 구역과 관계도 어느 정도 정돈이 될 것 같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도 찬란한 짐정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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