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이 풀어주신 페이스 아이디

BC 339일

by 이휘


그 날은 모든 게 그렇게 흘러가기로 되어 있던 날이었다. 모든 소품들이 알맞게 세팅되고 어레인지도 완벽하고 연출과 대본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그런 날. 진실의 종이 울려버린 날.


그는 연애할 때부터 누가 자신의 폰을 들여다보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왜 다들 그럴 때가 있지 않나,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보다가 재미있는 짤이라도 발견할 때. 그래서 그 화면을 보여주고 싶을 때. 그럴 때마다 그의 악력은 마치 1등 당첨된 로또 용지를 빼앗기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과하게 폰을 움켜쥐고 있었고 나는 그게 참 불편했다. 하지만 나 역시 남의 폰을 동의 없이 보는 건 민폐라고 생각해서 굳이 상관하지 않았고, 일부러 더 관심 없는 척 해서 안심시켜 주려고 노력했다. “안 봐, 안 봐. 뭘 그렇게 꼭 쥐어?”


연애 초기, 그와 나의 화두가 ‘일베’였던 적이 있었다. 사귄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그는 나에게 ‘일베’ 커뮤니티를 자주 들어간 시기가 있었다고 얘기했었다. (나중 얘기지만 그와 나는 정치나 젠더 문제에서 가치관의 차이가 있는 편이었고 오랜 시간동안 싸우기엔 진이 빠져 서로 절충하는 방향이 아닌 상대의 의견을 인정하고 포기를 하는 쪽으로 평화를 찾았다.) ‘아직도 일베 해?’ ‘안 한다니까’ 그런 말을 농담처럼 하다가 어느 날 그런 글을 봤다.


[남자친구가 일베 하는지 알아보는 방법]


대충 요약하자면 상대방의 폰에 들어가 사파리를 켜고 주소창에 i를 찍어보면 답이 나온다는 것이다. 자주 들어간 사이트가 자동으로 생성되므로 ilbe로 시작하는 ‘그 사이트’가 뜬다는 내용이었다.


‘웃기군.’


나는 잠이 들어 있는 그의 폰을 가져다가 비번을 풀었다. 그리고 사파리에 들어가 i를 과감하게 눌러보았다. 일베 사이트만 나와 봐라. 내일 신나게 놀려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맞닥뜨린 건 전혀 예상치 못한 사이트였다. ‘아이러브밤’? 이게 뭐야.


영업을 하는 남자친구가 건전할 거라는 믿음은 그냥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나는 대한민국 하늘 아래 그저 그런 영업사원의 아내 따윈 되고 싶지가 않았다. 남편이 유흥과 접대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하지만 그걸 까마득하게 모르고 존중하고 아껴주는 불쌍한 비극의 와이프. 그런 건 내 장래희망에 없었다. 물론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하고 싶지 않은 말을 하고,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듣고,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보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영업직이라면. 그러나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화면은 유흥주점과 마사지, 안마방, 휴게텔 정보가 가득한 ‘광주 전라 유흥커뮤니티’ 사이트였다. 지역별 업소 현황부터 후기까지 아주 제대로 된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초성 단어들이 즐비해서 의미를 찾아보니 그것 또한 가관이었다. 평생 모르고 살 수도 있었던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유흥 정보의 바다에 뛰어들었고 거대한 데이터와 그가 보여주는 ‘진실’들에 당장이라도 익사할 지경이었다.


다음날 아침 그에게 따져 물었을 때 그는 당당하게 화를 냈다. 예상한 반응이었지만 너무나 당당해서 당혹스러웠다. 폰을 몰래 들여다 본 내가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는 차분한 변명 대신 적반하장을 택했다. 그는 도대체 내가 왜 자신의 폰을 봤는지에 대한 답변을 듣고 싶어 했다. 이것이 주객전도인가. 내가 설명하는 시간동안 그가 적당한 핑계를 찾았는지 마침내 변명을 해 주었다. 친구가 운영하는 안마방 때문에 그 사이트를 들어가 본 것 뿐이라는 것이다.


연애할 때에도 헤어질 절호의 찬스들은 많았다. 절친한 친구가 운영하는 그 '안마방'에 모여 술을 먹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작가생활을 하는 동안 청춘을 다 바쳐서 밤을 새고 구성안을 쓰고 촬영을 다니며 모은 천만 원을 빌려갔을 때, 유흥 업소를 한 번도 안 갔냐는 말에 친구 아무개 결혼식 전에 간 게 마지막이라고 했을 때, 그런데 그게 나와 연애하던 중이었을 때. 그리고 그저 폰을 본게 기분이 나쁘다며 도끼눈을 떴던 이 날에도 나는 헤어졌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나는 이 날도 그와 헤어지지 못했다. 심지어 서랍에서 마사지, 단란주점, 각종 업소의 전화번호가 찍힌 라이터들을 잔뜩 발견한 날에도 그는 ‘라이터의 유통과 순환’에 대해 내가 전혀 모르고 있다며, 식당이나 노래방, 술집에 가면 이런 라이터들이 쌓였다며 펑펑 우는 나를 앞에 두고 킬킬 웃어댔었다. 그런 그를 그저 무턱대고 믿었다. 참고 연애하고 결혼도 했다. 물론 좋아서 한 결혼이었다.


믿음은 실로 단단했다. 유독 회식이 잦았던 그에게 밤늦게 여직원이 전화가 와도, 전화를 받지 않자 ‘미안해요. 잘 들어갔어요?’ 라는 카톡이 와도 그런가보다 했다. 그리고 그 여직원이 결혼식에 와서 뭐 이딴 눈빛이 다 있나 싶게 나를 빤히 쳐다봐도 아무런 스크래치가 없었다. 회사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유흥은 해도 바람은 안 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 여직원과는 별 일이 없었던 것 같다. (회사생활이 힘들다고 울길래 회식자리에서 몇 마디 달래줬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한참이나 어린 여직원이 왜 ‘죄송해요’가 아니라 ‘미안해요’라고 말했을까가 의문이긴 하다. 그러나 믿음엔 여적 변함이 없다. 오히려 불안한 건 유흥 쪽이었다. 하지만 눈을 감았다. 언제나 그냥 그가 말하는대로 얌전히 2차로 자리를 옮겼겠거니, 3차를 가서 맥주를 마시겠거니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2021년. 조상님들도 더는 이런 꼬락서니를 두고 볼 수 없었는지 결혼을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의 페이스아이디를 풀어주셨다.


말하자면 그냥 어느 날 그의 아이폰 페이스 아이디가 고장이 났다. 어떤 방법을 써도 고칠 수가 없었고 매 번 비번을 쳐서 열어야만 했다. 결국 그는 귀찮다며 비번을 해제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살다 보면 문득 뭔가가 거슬리는 날이 있다. 그 날 내가 거슬렸던 것은 ‘유독 요즘 폰만 들여다본다는 것’이었다. 물론 장거리 연애를 할 때부터 나는 만날 때마다 그의 얼굴 대신 정수리를 보는 일이 잦았다. 그는 나를 앉혀두고 주로 게임을 하거나 유머방을 들어갔다. 신기해서 그 정수리를 매번 찍어뒀다. 오죽하면 사진첩에 ‘정수리’ 폴더가 생길 정도였다. 그치만 결혼을 하고 나서도 그모양인 건 싫었다. 둘이서 하는 가족회의 때 몇 번이고 얘기하고 나니 겨우 고치기 시작했지만 그에게서 폰을 떼어놓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가끔 힐끔 쳐다보면 고등학교 절친들이 모여 있는 18명 단톡방에 일거수일투족을 남기는 모양이었다. 뭔가가 맛있으면 맛있다고 얘기하고 웃기면 웃기다고 올리는 듯 했다. 그쯤 되니 저렇게 좋은 걸 내가 뭐하러 못하게 하나 싶었다. 나 때문에 뭔가를 억지로 고치는 느낌이 싫어서 됐다고 그냥 하던 대로 하라고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9월 9일. 그 날은 달랐다. 기분 좋게 회식을 하고 술에 취해 집에 들어가니 새벽 3시가 됐다. 그도 만취 상태로 자고 있었다.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자고 있는 걸 보니 꽤 많이 마신 듯했다. 거실에 그가 벗어놓은 바지가 8자 모양으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바지 주머니에서 흘러나온 폰이 내 눈에 들어왔다.


‘저걸 오늘 열어봐야겠다’


무슨 연유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잠금을 해제했다. 그리고 곧바로 카톡을 열었다. 그리고 가장 궁금했던 방으로 저벅저벅 들어갔다. 요지경 세상이 또 한 번 펼쳐졌다. 손이 떨렸다. 도저히 침착하게 읽을 수가 없어 화장실에 문을 잠그고 들어갔다. 바닥에 주저앉아 끝도 없는 말들을 빠르게 읽어 올라갔다. ‘딥 러닝’이었다. 그곳의 내 남편은 내가 알던 남편이 아니었다. 새로 학습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입에 담기도 어렵고 누구한테 전하기도 어렵고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문장의 말풍선 색이 하필 노란색이었다.


남자들이 카톡방에서 나누는 대화들이 다 그렇지 뭐, 라고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웬만큼 오픈마인드였던 나도 그 수위는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차라리 야한 사진이나 동영상을 주고받았으면 이해가 쉬웠을 것 같다. (물론 중요한 모음집들도 내 남편이 주도적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질퍽질퍽한 업소 후기를 비롯해 회사 탕비실, 지하철이 끊긴 신림동, 심지어 나랑 있는 순간까지도 하루 종일 ‘유흥 생각’만 하는 이 개 잡놈의 새끼가 내 남편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너 이 새끼 이런 놈이었구나. 내가 6년을 데리고 지내 온, 바득바득 이를 갈아가며 멱살을 잡고 끌고 온 사람의 수준이 이 정도였구나. 치가 떨렸지만 몇몇 대화들은 폰으로 찍어두고 모든 대화내용을 내 메일로 전송시켜뒀다. 메모장 파일 5개가 도착한 걸 확인하고 다시 모든 대화를 읽었다. 말 그대로 모든 게 다 터져버렸다.


“길동아.” (*이름 대신 가명으로 대신한다)

코를 골며 자고 있는 그의 옆에 다가가 조용히 이름을 불렀다. 그는 화들짝 깼다.


“내가 있잖아. 미안한데. 너 폰을 봤거든? 그리고 다 읽었거든?”

남편의 정신은 생각보다 빠르게 부팅됐다. 상황파악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너무 너무 창피하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 곳에 있는 모든 말들에 대해 사과했다. 그리고 그 카톡방은 헛소리만 해대는 방일 뿐이라고,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말 뿐이라고 계속해서 변명했다. 그렇구나. 업소에 간 적도 없고, 그 여자가 '담양년'도 아니며, 심지어 너네끼리 ‘사번’을 만들어서 누구랑 잔 게 누가 먼저였는지 순서를 두고 왈가왈부 킬킬거리는 꼬락서니도 다 그냥 ‘헛소리’ ‘놀이’에 불과한 거구나. 대단하다. 청산유수였다.


유흥 자체에 배신감을 느꼈다기 보단 여자로서의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우리는 보물섬을 찾는 게으른 해적처럼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한 항해를 해 오던 섹스리스 부부였는데 알고 보니 그의 음기와 양기는 실로 기호지세와 같았다. 메모장 파일을 열어 굳이 굳이 처음부터 다시 카톡 내용을 정독했다. 눈물샘에 누수가 생겼다. 평소에 워낙 관계에 무디고 무관심한 태도라 나만 좋아하는 건가 싶어 자주 울다 잤는데 이건 단순 신파가 아니라 개막장이었다. 결혼한 지 4개월, 혼인신고한지 한 달, 신혼집으로 이사 한지는 2주도 안 돼서 벌어진 일이었다.


며칠 사이에 살이 눈에 띄게 빠졌다. A4용지에 서로 섞인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를 적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카톡을 했다.


‘소파 산 거 환불할 수 있어?’

‘응 왜?’

‘그냥 집 정리해야 할 것 같아서’


신혼 가구가 도착하기도 전에 환불을 해야 한다니, 절망스러웠다. 남편은 퇴근하고 집에서 얘기하자며 나를 달랬다. 매일 매일 똑같은 대화들이 이어졌다.


“그동안 그걸 그렇게 좋아하면서 어떻게 참았니? 나야말로 여자로서 너무 자존심 상해.”

“사실이 아니야. 발령 받고 너무 스트레스가 많아서 뭘로든 풀어야 했는데 그냥 헛소리 하면서 푼 것 같애. 애들한테 다 물어봐. 애들도 진짜 안타까워 해. 자기가 그렇게 힘들면 내가 친구 다 끊을게. 나 걔네 없어도 돼. 너만 있으면 돼. 카톡방도 나왔어. 아예 다 끊고 너만 보고 살게. 나 너 하나 보고 서울 올라왔어.”


조상님들이 현수막과 플래카드를 들고 여기 좀 보라고 외치는 마당에도 나는 그의 말을 들어줬다. 생각해 보면 말만 있을 뿐 그가 유흥을 했다는 어떤 증거도 없었다. 워낙 마음도 약하고 다정이 병인 성격이라 '그 카톡방에 다시 들어가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에게 친구들이 얼마나 애틋한 존재인지 알아서였다. 내 처참한 폐허를 복원하는 것보다는 그가 즐거운 일상을 되찾는 게 배려라고 생각했다. 아마 지하세계 어딘가에서 농성 같은 게 벌어졌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은 주말, 함께 식당에서 설렁탕에 만두를 먹는데 그가 또 카톡을 한다. 명치가 쿵하고 갈라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물었다.


“다시 들어가니까 오빠들이 뭐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방에 너도 초대하라는데? 크크크크”


이 망할 놈의 철부지는 나와 어쩌다 부부의 연으로 얽힌 걸까. 평행우주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쩔쩔 끓는 설렁탕 뚝배기로 그 망할놈의 뚝배기를 쾅쾅 깨부수고 감옥에 갔어야 맞다. 그러나 나는 그러질 못했다. 그저 남자들은 다 똑같고, 하나같이 철부지고, 이런 건 언젠가 겪어도 겪을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혼자서 또 한 움큼을 삼키고 결혼생활을 이어갔다. 해프닝이라고 생각하는 쪽이 훨씬 편했다. 그러나 결국 아무것도 나아진 건 없었다. 달라진 건 내가 그만큼 확실히 더 우울해졌다는 것 뿐이었다.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문장들이 여전히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다 기억이 난다.

*어디에 내놔도 심의 부적격 판정을 받을 그 문장들은 그와 나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단 한 줄도 기록하지 않는다.

*그 당시에도 지금도 사실 모든 건 태도와 사랑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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