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워치가 쏘아올린 진실게임

BC 139일

by 이휘


조상님들은 대단하다. 온 우주의 기를 모아 남편의 페이스 아이디를 풀어줘도 기어이 내가 바득바득 결혼생활을 이어가자 이번엔 6개월만에 그의 애플워치를 박살내주셨다. 별로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었는데 그의 액정은 바사삭 깨졌다. 투덜투덜. 그러게 조심 좀 하지. 수리비가 많이 든다며 그가 워치를 집에 두고 다닌 것이 나에게는 신의 한 수, 그에게는 악수였다.


애플워치의 위력이 실로 대단하다고 느낀 것은 청소를 하던 어느날이었다. 침대 헤드를 닦다가 완충된 채로 놓인 애플워치를 툭 건드렸다. 초록불이 환하게 켜졌다. 심박수를 체크하기 위한 불빛이다. 괜히 거슬려서 뒤집는 순간 카톡이 지징- 하고 울린다. 저 멀리 20km 떨어진 곳에 출근해 있는 그의 아이폰과 이 집에 있는 애플워치가 이렇게나 끈끈하게 연동이 된다니. 이게 되네?


살면서 이런 유혹이 다 있을까. 카톡방으로 사고쳤던 남편의 애플워치가 무방비 상태로 나에게 있다. 언제든 그 지옥의 방을 들여다볼 수가 있었지만 참았다. 아유 안 봐요. 안 볼게요. 어련히 알아서 잘 하시겠어요.


그런데 하필 인간에게는 촉이라는 게 있다. 주말이었다. 365일 피곤에 쩔어서 쉬는 날엔 무조건 누워만 있어야 하는 사람이 별안간 궁딩이를 흔들며 파고든다. 분명 어제 회식하느라 술이 떡이 되어 들어왔는데 "자기야. 우리 뭐 할까. 놀러갈까?" 꼬리를 살랑살랑한다. 이상하다. 반갑지가 않다. 내 눈빛은 서슬퍼런 킬러처럼 변했다. 잠깐, 너 뭐 있구나.


그가 룰루랄라 담배를 피러 나간 사이 애플워치를 움켜쥐었다. 나의 엑스칼리버. 이걸 뽑아들 때가 왔다. 천천히 검을 들어올린다. 어제 회식한 멤버들끼리의 카톡방이 신설되어 있었다. 멤버들 중에 툭하면 남편에게 '좋은 데 가자'고 하는 팀장이 껴 있어서 싫었다. 어제 즐거웠다고 잘 들어갔냐는 안부 사이로 기분 좋게 놀아제낀 사진들이 올라와 있다. 노래방에 갔구나. 그런데 여자 두 명이 더 있네?


그 순간의 충격과 절망감은 표현이 어렵다. 어이가 두동강이 났다. 세상 화려한 안감 컬러로 리버시블 패딩을 뒤집어입은 그가 처음보는 여자와 나보다 친한 포즈로 사진을 찍고 있다. 옆에 있는 어린 여자애들이 뭘 알겠는가. 그들에게 정신팔릴 때가 아니다. 애플워치 화면을 캡처하면 그의 폰으로 사진이 자동 저장되기 때문에 내 폰으로 몇 장을 찍어두었다. 좋았니. 너는 이제 나랑 끝났어 이 새끼야.


담배 냄새를 풍기고 돌아온 그에게 다정하게 묻는다.

"어제는 누구랑 뭐 먹고 놀았어?"

그가 종알종알 대답한다. 팀장님이랑 후배 2명과 함께 술을 잔뜩 먹고 노래방을 갔다왔다고 신이 났다.

"그렇게만 놀았어?"

"아.. 상환이네(*가명) 초등학교 동창 여사친이 그 근처에 있대서 여사친이랑 여사친 친구도 같이 와서 놀았어."

"사진 찍고 놀았어? 봐봐."


거기서부터였을 거다. 남편이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기 시작한 건. 애초에 사진 같은 건 없다고 했어야 안전했을 텐데 페이스가 말린 그가 중얼중얼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놨다. 팀장님이 서로 다같이 친해 보이게 사진을 좀 찍으라고 해서 억지로 찍었다, 사진이 누구한테 있는지는 모른다, 별 일 없었다. 이럴 때 보면 참 정치인 같고 웅변가 같다. 남편이 또다시 담배를 핑계로 밖으로 내뺀다. 하지만 조급해할 필요 없다. 나에게는 워치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회식 카톡방에서 실시간으로 호소하고 있었다.


- 또 걸렸습니다

- 이번엔 뭡니까 형님

- 사진입니까?

- 하 촉에 당해부렀습니다...

- 내가 어쩐지 불안하더라

- 상환아(*가명) 내가 사진 보내달라고 하면 멀쩡한 걸로 한 장만 다시 보내주라.

- 넵!


참 눈물나게 체계적이다. 내가 판옵티콘처럼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채 안간힘들을 쓰고 있다. 드디어 그에게 카톡이 온다.


- 아나. 여기 있다.

(사진)

- 친해보이게 찍은 사진 있다며. 그걸 보내.

- 팀장님 아들이 코로나 확진이래. 근데 내가 그 카톡방에 어제 놀았던 사진 좀 보내달라고 보채? 누가 찍었는지도 몰라.

- 그만살자

- 그래라


현관문 앞에 서서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게 다야? 아니잖아."

"어. 이게 다야! 진짜 없다니까! ... 너 혹시 내 폰 봤냐?"

"내가 너 폰을 왜 봐. 너야말로 감추고 있잖아."

"사진 없다니까?"

"폰 안 봤다니까?"


남편과 나의 라이어게임은 그 때부터 시작됐다. 사진을 둘러싼 진실게임. 서로가 거짓말을 하는 걸 알면서도 먼저 굴복하기가 싫어서 침묵의 협박이 오고 갔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게 무슨 싸움인가 싶다. 당신이 먼저 말해, 아냐 너가 먼저 실토해. 무언의 줄다리기가 계속 되자 내가 먼저 지쳐서 사진을 보여줬다.


"내가 이런 걸 봤는데."

"누가 보내줬어? 하.. 팀장님이 보내줬구나. 팀장님이 보내줬지?"


다행히 나의 진짜 패는 들통나지 않았다. 애플워치로 카톡방을 봤으리라곤 전혀 상상을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쯤 되면 남편이 제대로 사과를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생존에 위협을 받으면 가시를 펼치고 몸을 부풀리는 동물들처럼 그는 세상 당당한 표정으로 역정을 냈다.


"내가 보듬기를 했냐, 뭘 했냐!"


둘이 부둥켜안고 보듬는 영상을 포착했어야 하는데 순전 또 내 잘못이다. 백 번을 물어봐도 노래방 도우미가 아니고 후배의 여사친들이라고 했다. '졸업앨범이라도 보여달라고 할까?' '어떻게 증명할까?' 그는 질문만 할 뿐 그 어떤 것도 증명해내지 못했다. 미안하다고 빌어도 봐줄까 말까 한 상황에서 또 한 번 적반하장을 택한 그를 더이상 꼴보기가 싫어서 그길로 밖으로 뛰쳐나왔다. 3월인데도 쌀쌀했다. 딱히 갈 곳도 없고 연락할 사람도 없었다. 찔찔 울면서 택시를 타고 조계사로 향했다. 그날따라 행사가 있어서 사람들이 많았다. 플라스틱 의자를 질질 끌고 어르신들 사이에 앉아 부처님을 보고 멍을 때렸다. 안녕하세요. 또 왔어요. 이젠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요. 믿어주고 싶은데 더이상은 그를 믿을 수가 없었다.


- 서류 뽑아놔. 오늘 정리하게.

- 니가 나간 김에 뽑아와.


주객전도가 끝이 없다. 기가 찬다. 상황도 마음도 정리가 덜 됐는데 도저히 추워서 더는 밖에 있을 수가 없었다. 왜 그는 저 따뜻한 집에 편안하게 있고 정작 나는 이 추운 길바닥에 앉아 질질 짜는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는데 한 법우님이 책을 건네신다. <금강불자수경>. 가져가서 집에 가서 읽어보라고 하신다. 두꺼운 책을 휘리릭 펼치자마자 얼마 전에 알게 된 트라우마 치료법이 떡하니 나온다. 아는 방법이네. 나는 언제까지 눈동자를 굴려야 할까. 나쁜 기억 말고 나쁜 사람을 지우는 방법은 없을까. 마음이 진정되지 않은 채 집으로 향했다. 나는 이 질긴 인연을 끊어낼 수 있을까.


또 나만 괴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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