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 대한 신앙심

BC 120일

by 이휘


그 날은 눈에 뭐가 씌인 날이었다.


신도림에 술을 먹으러 다녀오겠다는 남편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쫓아나갔다. 검은 모자 검은 롱패딩에 슬리퍼를 끌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무장을 하고 택시를 타고 따라나섰다. 오히려 너무 무장을 해서 의심스러운 행색이었다. 만나기로 했다는 횟집 앞에서 두리번거리는데 남편은 어디에도 없었다. 혹시나 해서 인근 식당들을 더 탐색했다. 그 와중에 담배를 피러 나오는 아저씨들이 다 남편의 일행인 것만 같아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는데 노래방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노래방에 갔구나.'


그 때부터 나의 모든 감각은 잘못된 종교를 믿는 사람처럼 한 가지 신앙에 빠졌다. 그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노래방에 있을 거라는 맹신. 골목 전체가 한 집 건너 한 집이 노래방이었다. 여기서 남편을 찾아야 한다.


지하로 통하는 노래방이 많아 한 곳씩 차례로 다가가 입구에서 귀를 기울여 보았다. 열심히 노래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밖으로 퍼져 나왔다. 그렇게 차례차례 나만의 검문을 하던 찰나, 남편이랑 비슷한 목소리가 들리고 말았다. 하필 최근에 같이 들은 트롯 노래였다. 아무리 믿음을 저버리려고 해도 이건 그분의 음성이었다. 한참을 서성이며 고민하다 눈을 질끈 감고 몰래 들어가보려고 결심을 했는데,


띠잉도옹!


센서가 작동한다.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설치해 둔 초인종 안내음이다. 너무 깜짝 놀라서 잘못한 사람처럼 뒷걸음질쳤다. 기다리면 언젠가는 나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주정차 구역에 털썩 주저앉았다. 술먹다 담배를 피러 나온 사람들이 힐끔 힐끔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겠다. 초조하게 여기저기를 살피는데 저 멀리 4명의 남자 무리가 마사지샵 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꼭 뒷모습이 남편 같은 사람이 걸어간다. 전화를 건다. 남편이 받지 않는다. 저 사람도 받지 않는다. 발걸음을 맞춰 뛰어가다가는 들킬 것 같다. 그때 남편이 전화를 받는다.


"어, 잘 놀고 있어? 오늘 날씨 추운데 뭐 입고 나갔어?"

"나 패딩이랑 츄리닝 입었지."


남편이 아니었다. 신도림 술집 골목에서 내가 착각한 그 어느 누구도 내 남편이 아니었다. 나의 잠복근무는 그렇게 마사지샵 앞에서 겨우 마무리가 됐다. 택시를 타고 돌아오면서 하루종일 의심했던 내 자신에게 실망했다. 허깨비에 홀린 사람처럼 아무도 아닌 사람의 목소리가 남편 목소리로 들리고, 모르는 사람의 뒷모습이 남편의 뒤통수처럼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의 무리는 횟집을 가려다가 피자집이 보여 피자를 먹었다고 했다. 실제로 횟집 옆에는 피자집이 있었다. 우리 사이에 신뢰라는 게 남아있긴 한 걸까.


시간이 지나고 창피한 일이지만 이 날의 일을 고백했다. 당신을 너무 믿어주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역시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남편은 웃겨죽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신나게 놀렸다. 어떤 지점이 그렇게 재미있는 포인트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나의 모든 의심과 고민과 괴로움이 순식간에 우스꽝스러워졌다. 이제 이 정도로는 실망스럽지도 않다. 믿지 못하는 건 내 탓인 것만 같아 속상해서 조금 울었다. 믿음이란 쌓는 것보다 무너지기가 더 쉬운 걸까. 간신히 시멘트를 들이부어 굳히려고 하는데 좀처럼 마르지가 않고 흘러내린다.


<우리 남편은 절대 그럴 리 없어! 우리 남편 말이 다 맞아.>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거 하나가 안 돼서 헤어졌다. 무조건적으로 한 번만 더 믿음을 가져 보기에는 기존에 내가 가진 데이터들이 너무 엉망진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한 내가 잘못된 건지, 믿을 수 없게 만든 그의 잘못이 큰 건지 아직도 잘은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건, 다시 확신을 갖게 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돌아보면 그는 나의 고민에 전혀 공감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이 단단한 응어리를 용해하는 것도 온전히 내 몫이었다. 과실로 따지자면 백대빵인 것 같은데, 내가 피를 철철 흘리며 상대방 차량의 보험 접수까지 해 주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하필이면 그 자리에 있어서 들이받히고 말았네요. 다정도 병이라더니 가끔은 나같은 아내가 있는 그가 부러울 지경이었다.


결국 그의 그런 나태함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떠나서 행복한 결혼생활에 대한 믿음조차 희미하게 만들었다. 살면서 부부끼리 예기치 못한 사고가 생길 수도 있고,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치만 그 과정에서 서로 학습하고 극복하고 틀린 점들을 반성하고 개선해 나갔으면 했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나고 훈장처럼 생긴 흉터들을 보고 킬킬대며 웃을 수 있기를 바랐다. (사고쳐놓고 혼자 비웃는 것 말고.) 다시 돌아가면 나는 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줄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하면 여전히 마음은 힘들지만 나의 대답은 바뀌지 않는다.


믿습니까?

아뇨? 믿고 싶어도 믿어지지가 않는 걸 어떡해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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