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했던 마지막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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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휘

광주 출신인 그의 어휘는 재미난 것들이 많았다. 과자를 ‘반틈’ 먹었다든지, 이것 좀 ‘터 줘’ 라든지, 볶음밥을 보끔빱이라고 발음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여롭다', '해찰한다', '포도시' 같은 우리 외할머니가 쓸 것 같은 단어들도 자주 썼다. 워낙에 전라도 사투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모든 말투들이 귀엽게 느껴졌던 것 같다.


유독 그가 곧잘 쓰던 단어가 있는데 ‘서운하다’ 였다. 여행에 갔다가 가 보고 싶은 식당이 브레이크타임일 때, 관광 스탬프에 도장을 찍고 싶은데 하필이면 공사중이라 들어가지 못할 때, 요리를 하다가 양파를 떨어진 걸 알았을 때 그는 “서운하네..” 라고 읊조렸었다. 그게 참 귀여웠다. 나는 늘 어떤 '인물'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느낄 때만 그 단어를 썼는데, 그는 '상황'이 서운하다고 사용한다는 게 색다르게 느껴졌다.


그런 그가 엊그제 옷방에 들어가 물끄러미 허공을 보더니 "서운하네." 라고 말했다. 언제나 본인 마음을 열어보이지 않던 그에게 "(내일이면) 짐이 다 빠져서?" 라고 물었다. 그는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대꾸했다. 다시 물었다. "내가 나가서?" "그르지."


장거리 연애를 하면서 한달에 두번 만나는데도 만나기만 하면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느라 정수리만 보여줬던 그가, 오늘도 내 앞에 앉아 웹툰을 본다. 이제 그의 정수리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그리고 이렇게 친숙하고 당연한 공기 속에서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나는 한참을 서운해했다.




서울로 발령을 받아 내가 살던 오피스텔에서 1년 정도 살았을 때 우리는 참 많이 싸웠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서로 예민했다. 그치만 그가 서울 생활을 적응하는 데에 상당한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했을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참고, 알았기 때문에 싸우기도 했다. 우리는 좁아터진 슈퍼싱글 침대에서 너무도 불편하게 잠을 잤다. 퇴근을 하면 기절하듯 자고 아침이면 새벽같이 일어나서 털레털레 나가는 뒷모습이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었다.


오피스텔에서 벗어나 신혼집을 얻어 이사하는 날 우리가 직접 싸놓은 짐들은 용달차 한 대면 충분했다. 혼자서 다 들 수도 없을 것 같은 큰 짐을 용달 아저씨랑 그가 직접 나눠 들어 옮겼다. 조촐하지만 단란한 살림살이였다.


- 우리 마지막으로 여기서 뭐 맛있는 걸 먹을까?


화곡동 오피스텔의 마지막 만찬은 대창덮밥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집이지만 너무 맛있어서 바닥까지 싹싹 긁어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삿짐 박스에 짐을 다 싸고 나니 바닥에 겨우 두 사람이 누울 공간만이 남았다. 침대는 미리 무료나눔한 터라 바닥에 요를 깔고 잠을 잤다. 아침에 비소식이 있었다. 우리는 결혼한 날에도 비가 왔고, 이사한 날에도 비가 왔고, 이혼신고를 마친 날은 하늘이 참 흐렸다.



이혼을 하고 드디어 살림을 나누게 된 날. 이사를 앞두고 마지막 반찬은 뭘 먹을까? 그런 말들을 똑같이 나누며 상암동 낙곱새를 시켜먹었다. "여기는 부추전이 맛있어", 그런 말을 하며 카지노 마지막회를 틀어놓고 밥을 먹었다. 주방 쪽에 있는 4인용 테이블을 놔두고 굳이 TV 앞에 작은 테이블에서 먹으려고 바닥에 앉았는데 아파트가 중앙난방이라 거실 바닥이 많이 찼다. 불편했다. 그는 오후에 이직 때문에 면접을 보고 왔는데 잘 안됐다며 서운해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다는 그가 낙곱새를 절반이나 남겼다. 속상하거나 신경쓰이는 일이 있다는 뜻이다. 그게 하나는 이혼이고 하나는 이직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밥을 먹고 안방에 들어가 누운 그를 놔두고 넷플릭스에서 <독전>을 틀었다.


- 독전 재미있어?

- 이번에 새로 나온 건 결말만 보면 된다던데.

- 아, 아니. 나는 독전을 아예 안 봤어. 넌 봤어?

- 응. 그럼 원래 버전을 먼저 보고 이번에 나온 익스텐디드 컷은 뒷부분만 챙겨 봐.


독전을 틀었는데 울 것만 같아서 집중이 안 됐다. 내일이 이사인데 짐도 한쪽으로 몰아둬야 하고, 낙곱새 도시락 재활용 쓰레기도 잘 치워둬야 하는데, 또 내 몫이었다. 안방에 먼저 들어가 누워있는 그를 불러다 같이 한참을 치웠다. 웬일로 그가 벌떡 일어나 정리를 도와줬다. 기운이 없어 이번엔 내가 혼자 안방에 누웠다.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코를 팽팽 풀었다. 그가 나를 불렀다.


- 독전 안 봐? 이거 볼만 해 그래도.


내가 우는 걸 모르고 물어보는 질문이 아니다. 훌쩍거리는 소리를 듣고 나를 더이상 울지 않게 하려는 일종의 달램이다. 팔소매에 눈물을 잔뜩 묻히고 누워서 더 울었다.


- 나 이따가 전화 타로 볼 때 같이 들어준다며. 그만 울어.


전화타로는 내가 추천한 것이었다. 같이 일하는 후배들이 너무나 용하다고 해서 봤는데, 나를 포함해서 보는 사람들마다 그렇게 잘 맞힐 수가 없었다. 꽤 젊은 여성 분인데, CCTV처럼 생각도 맞히고 상황도 맞히고 비유도 좋아서 얘기하다보면 홀릴 수밖에 없는 분이었다. 이직 때문에 신경쓸 일도 많고 회사 내에 고약한 후배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있는 그에게 믿거나 말거나 해 보라고 했는데 대뜸 밤 11시로 예약을 해둔 것이다. 이사 때문에 내일 오전 6시부터 일어날 스케줄이지만 기어이 11시까지 뜬눈으로 기다렸다. 스피커폰으로 타로를 보면, 내가 노트북으로 받아적어주기로 했다. 사실 어제는 이직면접에 필요한 이력서와 경력기술서도 나란히 앉아 직접 첨삭해줬다. '누가 보면 사이좋은 사람들 같겠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퉁퉁 부은 눈으로 전화타로를 같이 들어줬다. 타로 선생님이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나에게 '와 진짜 소름이다!' 하는 표정을 음소거로 보내며 그는 신나게 타로 점을 봤다. 그 신나하는 모습이 마냥 신나보이지는 않아서 또 적잖이 속상했다. (우리가 정말 사이가 좋았다면 더 키득거리며 신났을 거라는 생각에 슬펐던 것 같다.) 그는 내 앞에서 연애 운도 보고, 전 와이프가 잘 지낼지 궁금하다는 질문도 했지만 대답들이 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정작 그가 묻고 싶은 질문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전 와이프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요'라고 묻고 싶었다고 한다.


타로를 보고 그가 담배를 피러 나간 동안 거실 수납장을 보다가 눈물이 쏟아졌다. 초록색 스타벅스 컵 때문이다. 대만을 갔다가 2개를 사 왔는데, 하나는 와인색 하나는 초록색이다. 그 컵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이루말할 수 없이 속이 상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사실 우리는 며칠 전 컵 문제로 며칠을 옥신각신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렇게 좋은 컵 두개를 다 줬을 리 없다고, 커플잔처럼 나눴을 거라는 생각에 몇 번이고 다시 물었지만 대답은 늘 같았다. 그의 태도가 너무 당당하고 기억이 정확해 보여서, 그리고 나는 딱히 기억보다는 정황상 그랬던 것 같다는 정도였기 때문에 그의 말을 믿기로 했지만 사실 초록색 컵이 꼭 갖고 싶었다.


- 스타벅스 컵 무슨 색 가질 거야?

- 그 컵은 두 개 다 너가 나한테 준 거잖아. 내가 전주에서부터 가져온 거고.

- 아닌데? 내가 너 초록색 주고 나 와인색 가져서 우리 서울에서 합칠 때부터 저 컵 두개가 합쳐진 거잖아.

- 아니 근데 말이야. 내가 이런 얘기를 계속 하는 이유는 뭐겠어? 그 컵이 갖고 싶어서일 거 아냐. 그런데 너는 어쨌든 컵 두 개를 다 갖고 싶다는 얘기야?

- 응. 두 개 다 내꺼야. 너가 나 준 거고. 내가 다 가질 거야.

- 나눠서 가진다면 무슨 색 가질 건데? 난 초록색이 좋아.

- 아니, 안 나눈다니까?

- 초록색 컵으로 마시면 물 맛이 좋단 말이야. 맛있다구...


서운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컵 자체에 대한 욕심보다도 멀리 여행까지 가서 기분좋게 사 온 컵인데 내가 가질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괜히 분하고 욕심이 났다. 그렇게 계속해서 소득없이 징징댔는데 어제는 갑자기 초록색 컵을 준다는 거다. 너무 기뻐서 당장 컵을 내가 가져갈 거실장 안에 놔뒀는데 그게 지금 나의 거대한 눈물컵이 되어 자꾸만 컵에 초록색 눈물이 찰랑찰랑 차오르는 것이다.


- 뭘 보고 또 그렇게 울었누


그는 놀리듯이 말했다. 부엌을 둘러보더니 거실장에서 컵이 사라진 걸 알아챘나 보다.


- 컵 가져간다더니 안 챙겨?

- 응. 그거 눈물버튼이야. 안 챙길래.


그는 딱히 더 대답이 없었다. 나는 저 컵을 가져갈 수가 없다.



오피스텔을 나오면서 먹은 대창덮밥처럼 최근 일주일간 그와 마지막으로 먹은 부대찌개, 피자, 낙곱새가 한동안 마음을 쿡쿡 쑤실 것이다. 내가 초록색 컵을 보면 울 것 같은 마음처럼. 그래도 언젠가는 그 컵에도 새로운 정의가 쓰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다행스럽게 모든 것이 지나가고 그 모든 것들에 새로운 의미가 생겨서 괜찮아질 날이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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