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하는 날, '두고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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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휘


한참을 후끈하게 덥고 습했다가 내리는 비는 그만큼 굵고 묵직하다. 이사하는 날 짐을 나누고 이삿짐 트럭을 먼저 보내놓고 한참을 소리내서 펑펑 울었다. 살면서 그렇게 크게 오래 울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안방 침대 옆에 쪼그려앉아서 대성통곡을 했다. 수건에 눈물이 잔뜩 묻었다. 그 와중에도 이 집에 남을 짐들을 쓰기 좋은 동선으로 정리해 두고, 먼지를 훔치고 무릎을 꿇고 물걸레질을 했다. 그가 퇴근하고 돌아와서 혼자 이 넓은 방을 닦으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아서. 물론 안 닦겠지만.


오전 8시에 신청해둔 이삿짐 차가 7시 45분쯤 왔다. 직원 분들이 인상이 좋고 손도 빠르고 서로 사이도 좋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나는 직원 분들을 데리고 투어리스트처럼 가져가는 짐, 안 가져가는 짐들을 직접 안내했다. 가져가지 않는 짐에는 직원 분이 투명 테이프를 붙여 '두고감' 이라는 메모를 적어뒀다. 두고 감. 그 글자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며칠 전 출근한 그가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이삿짐 차량의 주차 공간 양해를 위해 세워둔 표지판이었다. 어색하게 답장을 했다.


- 바닥에 저건 눈물인가

- 그런 듯


이혼을 해도 가끔 그가 출근할 때 새벽에 같이 일어나 옷을 골라주었었다. 매일 입을 옷이 없다고 투덜대는 그에게 바지는 이게 어울리는데, 신발은 뭐가 좋겠다, 이건 양말이 문제네, 하는 식이었다. 신혼 때부터 늘 있는 루틴이었지만 이혼을 하고 나서도 옷을 골라줄 수 있을지는 몰랐다. 물론 이 과정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건 아니다. 헤어질 날짜를 박아놓고 '친구', '룸메'라는 호칭으로 살다 보니 뭐든 체념하고 사이좋게 지내게 된다.


오늘도 그가 입는 옷을 봐 주고, 출근길을 배웅해줬다. 적당한 인사를 나누고 그가 또각 또각 복도를 걸어가더니 다시 돌아와 번호키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잘 가, 그가 손짓한다. 그는 꼭 장거리 연애를 할 때부터 헤어질 때 아련하게 인사하는 버릇이 있었다. 영화 <괴물>에 나오는 변희봉 아저씨처럼, 드라마 <피아노>에서의 조재현 아저씨처럼 그는 그렁그렁한 얼굴로 손짓을 하며 나를 보내줬었다. 그런 그가 오늘도 꼭 같은 방식으로 인사를 한다.


이사를 하는 와중에도 이삿짐센터는 왔는지, 짐은 얼마나 빠졌는지 그는 수시로 물어왔다. 나는 사진을 찍어 틈틈이 보내줬다. 그냥 이것도 서로가 적응해 가는 어떠한 절차라고 생각했다. 허전하네, 짐이 은근 많네, 이런 말들을 하며 오전을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짐들이 조금씩 빠져나갔다. 주방에 있는 짐을 잘 구분해 두었었는데, 혹시라도 전부 다 싸버렸을까 싶어 확인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두고 가야 하는 칸의 물건까지 다 포장해두셨길래 이삿짐 바구니를 같이 확인해 다시 채워두었다. 그 안에는 초록색 컵도 있었다. '잘 있어, 너는 내가 못 데려가.' 속으로 한 마디를 건넸다.


집이 점점 비어가면서 눈물이 그 자리를 자꾸만 채울 것 같아서 정말 꾹꾹 참느라 혼이 났다. 안되겠다 싶어 바람이라도 쐴 겸 사다리차 직원 분까지 4명이 마실 음료수를 사러 나가는데 역시나 코 앞 횡단보도에서부터 펑펑 울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계산을 하는데 이 슈퍼도 다시는 못 오겠구나 하는 생각에 울음이 멈추질 않았다. 그가 담배를 사러 나갈 때 가끔 같이 따라나가기도 했고, 화해할 때 그 슈퍼 앞 평상에 앉아 잘 해보자는 말도 나눴고, 코인 때문에 3천만 원을 잃었다고 했을 때도 소주 한 잔에 털어버렸던 술집도 이 슈퍼 옆이었다. 그 좋았던 날들이 슈퍼 앞 고장난 자판기처럼 이제 더는 작동하지 않을 유물이 된 것 같아 마음이 한가득 물기를 머금는다. 마침 날씨도 비가 올듯 흐렸다. 다시 집으로 올라가 음료수를 나눠드리고 텅 빈 베란다에 서 있는데 '엄마랑 짜장면 사 먹어', 라며 그가 10만 원을 보내왔다. 우리는 이 정도의 거리가 딱 적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 딱 적당한 거리였을 때 헤어지는 게 가장 슬픈 사건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죽일듯이 미울 때 하루아침에 헤어졌어도 슬픈 건 매한가지였겠지만, 지난한 설득의 과정을 거치고 지지부진하게 몇 달을 보내고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마지막이라도 예쁘게 보내자고 참으며 보내온 시간이 길어서인지 마지막날이 지나치게 슬펐다. 사실 이혼을 준비할 땐 하루종일 한 마디도 안 하고 어색하게 보냈는데, 다 마무리하고 이사를 앞둔 상황에서의 우리는 친구처럼 다정하고 편안했다. 그게 오늘 이렇게 대성통곡을 하게 된 이유 같았다.


모든 짐이 다 나가고, 이삿짐 차가 먼저 출발했다. 너무 짐이 많이 빠져나가서 공터처럼 말이 팡팡 울려퍼질 것 같았다.


- 이제 나도 나가.

카톡을 보냈더니 그가 전화가 온다.


- 뭐 타고 가니, 엄마 오시라 하지. 점심 잘 챙겨먹어, 전화할게,

그런 말들을 어색하게 하는 그의 목소리가 서운하고 슬퍼보였다. 다시는 전화를 안 할 사람처럼.


어젯밤부터 펑펑 운 탓에 눈이 퉁퉁 부은채로 택시를 타고 이사갈 집으로 향한다. 가는 동안에도 굵은 눈물이 빗방울처럼 후두둑 후두둑 떨어진다. 7년의 공기는 너무도 묵직하다. 인생의 5분의 1을 한 사람과 보냈다. 언제나 서로의 옆을 지키던 사람과 고민하고 속아주고 속여가며 치고 박고 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 여전히 그 누구보다 친하고 그 누구보다 알 수 없는 그를 나는 이제 저 먼 아파트에 소파처럼 두고 떠난다.


이삿짐이 다 빠지고 난 집 (대성통곡할 수밖에 없었던 풍경)


삶은 뒤가 아니라 앞에 있어.


오늘 아침엔 그런 말을 되새기며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렸다. 몇 번이고 주저앉고 몇 번이고 술에 취해 울 것 같은 나지만, 그동안 극복해낸 모든 것들처럼 최선을 다해 이겨내기로 스스로와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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