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223일
"왜 울어?"
이사하면서 대성통곡을 했다는 말에 다들 의아해한다. '당연히 눈물이 나지. 이삿날은 개차반이야.'라고 대답한 사람은 이혼한 친구 한 명 밖엔 없었다. 그는 슬픈 게 아주 당연하다며, 한동안은 이렇게 우울하고 눈물이 많이 날 거라고 했다. 친구는 내게 가족이나 친구들을 자주 만나고 혼자 있거나 술을 마시지 말라고 조언했다. 자신은 운동을 하는 게 아주 도움이 되었다고, 10km 정도 뛰면 너무 힘들어서 슬픈 생각이 날 새가 없다고도 말했다.
하고 싶어서 한 이혼인데, 이혼하고 이사까지 하면서 왜 우냐는 질문은 이혼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들은 나의 앞길이 이렇게나 창창한데, 날도 이렇게 좋고 봄도 오고 꽃도 필 텐데 왜 우는지에 대해 의아해하기도 하고, 펑펑 울어도 좋지만 그 슬픔이 오래 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며 담담히 위로를 전하기도 한다. 여전히 전 남편의 욕을 신랄하게 해 주는 직설적인 친구도 있다. 모두가 고맙고 그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다는 건 백번 말해도 아깝지가 않다.
이사를 하면서 텅빈 집에서 펑펑 울었던 가장 큰 이유는 한 장면 때문이었다. 이 집에 처음 들어올 때, 앞으로 잘 살아보겠다는 희망찬 마음과 설레는 마음으로 가득했던 나와 그의 모습. 어디에 어떤 가구를 놓을까 고민하고, 화장실만 들어갔다가 나와도 포옹을 해야 지나갈 수 있는 그런 귀엽고 단란한 가정 속의 그와 나. 그런 것들이 잔상처럼 집안 곳곳에 묻어있었다. 화장실에 있는 그에게 화장지를 줄 때 너무 문을 벌컥 여는 바람에 그가 메모 게시판에 '이휘에게 휴지 줄 때 빳빳하게 눈을 쳐다보면서 줄 것' 라고 적어둔 것도 너무 웃겼고, '나의 사랑 나의 안 사람 = 이휘'라고 술취해 적은 글자도 사랑스러웠다. 그런 것들이 이혼하는 과정에서 단 한 번도 나의 마음을 뭉근하게 만든 적이 없었는데 떠나는 날이 되니 유령처럼 모두가 내 발목을 붙잡는 것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미안하지만 난 가야해. 잘있어. 그렇게 혼자 속으로 되뇌이면서 발걸음을 옮기고 마는 것이다.
"아... ."
한참 울다가 눈물이 멈춘 건 주머니 속 그의 차키를 발견한 때였다. 귀중품들을 잠깐 그의 차에 실어놨었는데 그걸 꺼내고 차키를 그대로 주머니에 넣어서 이사를 왔다. 인생이 시트콤이구나. 어이없어서 웃음이 났다. 모두가 날 속이려고 작정한 몰래카메라 같다. '올라가서 백팩 챙기고 차키를 두고 와야지' 해놓고는 텅 빈 집이랑 눈물바람으로 작별인사를 하느라 차키 놓고 오는 걸 깜빡했다. 결국 또 내일 그의 집에 가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눈물이 쏙 들어갔다. 사실 짐이 서로 섞여 있을 수도 있고 앞으로 정리해야 할 재산분할 건이 있어 당분간은 연락을 계속 해야하는 상황이긴 했다. 물어보니 주말에 차를 쓸 일이 있을 것 같다고 해서 바로 다음날 가져다주기로 했다.
회식이 있다던 그가 밤에 연락이 왔다. 이제 곧 집에 다 와가는데 들어가기 싫다는 카톡이었다. 그는 문 열기 직전의 아파트 복도를 사진 찍어 보내왔다. '이제 들어가 봅니다'. 누가 보면 억지로 생이별한 사람들 같다. 집에 들어간다던 그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카톡이 왔다.
- 너 많이 울었겠구나.
또 눈물이 왈칵 났다. 그가 전화를 걸어왔다.
"집이 울리네, 우리집 되게 크구나?"
그는 멋쩍게 웃었다. 잘자라는 말을 나누고 그가 또 어색하게 한 마디를 한다.
"전화 해."
"응."
전화할 일이 없을 것만 같지만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오늘, 차키를 주면서 다른 섞인 짐들도 함께 줄 겸 쇼핑백에 이것저것 담았다. 혼자 아무것도 해먹지 않을 그를 위해 햇반이나 3분카레 같은 즉석식품들도 담고 라면도 담고 나무젓가락, 중식도, 이삿날 비가 온다고 해서 짐을 닦으려고 따로 챙겨뒀던 수건도 담았다. 쇼핑백 2개가 금방 찼다. 언제 오냐고 자꾸만 물어보는 그가 아예 저녁에 늦게 올 거면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나는 거절했다. 거기까진 안 될 것 같아서였다.
- 나 운동하고 갈 거라서 안 데려다줘도 돼
- ㅇㅋ
- 내려와
1층 경비실 앞에서 기다리는데 4층에서부터 엘리베이터가 내려온다. 그일 것이다. 얼마 전에 산 맨투맨을 입고 있다. 차키와 쇼핑백을 전해주는데 그가 짐을 받아들고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붙잡고 들어가며 나를 쳐다본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당연히 같이 올라가자는 관성의 제스처였다. 그는 내가 다시 그 집에 함께 올라갈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들어가."
나는 따라들어가는 대신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가 뭔가 깨달은 표정으로 엘리베이터 앞에서 멈췄다. 표정이 상당히 슬퍼보였다. 그의 표정에서 슬픈 티가 나는 건 너무 오랜만이었다. 인사하는 표정이 울기 직전의 모습 같았다. 홱 돌아서 계단을 툴툴 내려오는데 그가 따라내려온다.
"운동 끝나면 몇 신데?"
"모르지."
그가 담배를 한 대 문다. 오늘 이제 운동 끝나고 집에 가면 뭐해? 이런 질문들을 하며 그는 아쉬운 듯이 서 있었다. 차에 이제 짐은 없는 거야? 없지 다 뺐지. 그래 잘가. 잘 가라는 말만 몇 번씩이나 하며 그가 나의 등을 두드렸다. 담담하게 인사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또 눈물이 펑펑 난다. 같이 올라갔다면 어땠을까. 빈 집도 함께 둘러보고, 이사 후기도 얘기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 꽃이라도 피웠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 모든 게 이제는 당연하지 않은 사이가 됐다.
카톡이 계속해서 울린다. 뭐는 왜 가져갔냐, 뭐는 왜 두고 갔냐 하는 내용들이었다. 이 모든 것들도 결국은 사라져버릴 감정이겠거니 생각하니 눈물이 더 많이 났다. 결국은 지나가는 감정이구나, 내가 더 참았다면 어땠을까, 너무도 뜨거웠던 시간들이 이렇게 매정하게 나를 휘두를 수도 있는 거였구나. 그런 생각들에 잘 참아왔던 눈물이 또 뚝뚝 흐른다. 언제나 그랬지만 누가 쳐다보든 말든 길거리에서 우는 건 주특기가 됐다.
누군가는 '상대방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는 돼야 이혼을 하셔야 하는 거예요' 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가 잘 되기를 바란다. 오래오래 건강했으면 좋겠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도 딱히 관심이 없다. 그렇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그가 새 사람이 되는 건 싫다. 나한테 하던대로 똑같이 행동했으면 좋겠다. 똑같이 게으르고, 어떨 땐 답답하고, 어떨 땐 미워 죽겠을 행동들을 변함없이 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너는 변하지 마. 나는 너가 어떤 사람을 만나든 상관 없는데, 변하고 철드는 건 싫어."
"알겠어! 약속할게! 나 안 변할게!"
"영원해."
"응!"
정말이지 진지함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는, 아무 생각 없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이혼하고 나서도 이런 장난 같은 대화들을 나눴다. 그게 우리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하지만 그게 정말 이혼이 장난 같아서도, 진지하지 않아서도, 아무생각을 안 하고 살아서도 아니라는 걸 우리가 가장 잘 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어서, 괜찮은 척 이상한 말들을 해서라도 그 공기를 채우는 것 말고는 버틸 방도가 없어서, 그와 나는 농담을 밥먹듯이 해댔다. 이혼하는 마지막 날까지 친구야, 친구야, 라고 서로를 부른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아마 내일도 그는 어떤 핑계를 대서 나에게 연락을 할 것이고, 나는 바쁘지 않은 이상 답장을 줄 것이다. 그리고 이 간격은 점점 멀어져 결국은 거대한 공백이 될 것이다. 그 공백의 공기가 지금보다는 더 숨쉴만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졌으면 좋겠다. 어제는 꺽꺽대며 울었지만 오늘은 어제보다 덜 울어서 내일은 눈이 덜 부을 거라고 믿는 지금의 나처럼.
*구매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