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이혼해줄래?
고백과 이별은 두 사람간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이 참 많이 닮았다. 더 절박한 쪽이 매일 어떻게 꼬셔야 할지 하루종일 잔머리를 굴리고, 거절당할까봐 조마조마해 한다.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양념도 친다. 상대가 좀처럼 넘어오지 않을 때는 자존심도 내려놓고 구질구질한 방법을 쓰기도 한다. 이혼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사랑을 쟁취하는 것만큼이나 위대한 설득이 필요한 게 이혼 프러포즈라는 것을. 연애를 시작할 때 서로의 동의 하에 사귀는 것처럼 이혼도 일단 양측에서 오케이 사인이 나야 법원 문턱이라도 가볼 수가 있다. 고백 직전 꽃다발을 들고 옷매무새를 정돈하는 마음가짐으로 우리는 완전무장을 하고 이혼이라는 전쟁터에 나가야 한다.
"나 이제 너랑 그만 살고 싶어."
처음 이혼 얘기를 꺼냈을 때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 꺼져 있는 TV를 바라본 채 멍하게 말했다. 한동안 집안의 공기는 둘의 한숨으로만 채워졌다. 매연도 없는 집안이 그렇게 매캐할 수가 없었다. 평소 이혼 얘기를 쉽게 하는 성격이 아니었음에도 그가 나의 말을 정말로 '진심'이라고 '받아들이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역시 모든 고백은 적절한 해석과 풀이가 필요하다.
국회에서 하는 필리버스터만큼 우리는 최대한 시간을 질질 끌어가며 상대방의 입을 막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데에 몇날며칠을 소비했다. 이혼이야말로 장시간의 토론이 필요했다. 각자의 입장은 분명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잘 할 수 있다는 사람과 이미 지칠대로 지쳐버린 사람의 창과 방패 대결. 나는 미친사람 널뛰기를 하듯 떼를 쓰기도 하고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하고 막무가내로 협박도 해 가며 그를 설득하는 데에 상당한 에너지를 투자했다. 지나고 나서 하는 말이지만 그래봤자 돌고 돌아 원점인 얘기들이었다. 설득의 재료 중 가장 중요한 건 확신이다. 무서우리만큼 묵직했던 이혼에 대한 확신은 그 어떤 말로도 흔들리지가 없었다. 오글거리는 말을 하면 병이라도 걸리는 사람처럼 표현에 서툴렀던 그가 세상 절박한 말투로 좀 더 가르쳐달라고, 노력해 보겠다고 했을 때 나는 그 문자를 두 번 이상은 읽고 싶지가 않았다. 그게 참 서글펐다. 이미 늦어버린 모든 것이.
이혼을 결심하고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주말이었다. 집 근처 농수산물센터에서 대게를 사 왔다. 게살이 좀처럼 잘 빠지지가 않아서 먹기가 어려웠다. 다리를 열심히 뜯어주던 그가 소주를 페트병으로 연거푸 마시더니 심각하게 취했다. 그는 식탁 테이블에 얼굴을 파묻고 ‘살고 싶지가 않다’고 중얼거렸었다. 유독 이런 말에 버튼이 눌리는 나에게 그 한마디는 일종의 필살기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가 아무생각 없이 내뱉는 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최대한 성심성의껏 한참을 어르고 달래서 침대에 눕게 했다. 그는 내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일까. 나 역시 그가 없이는 살 수 없을까. 고민이 들었지만 결국 이것도 지나가는 감정일 거라는 이성을 앞세워 봤다. 이렇게 한없이 이 사람을 어여삐 여기다 보면 제일 불쌍해지는 건 나 자신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그 날은 눈앞에 놓인 대게 껍데기를 어떻게 잘 치울까를 고민하는 것으로 마음의 고비를 잘 넘겼다.
연애할 때부터 이상한 촉이 발동할 때마다 대단한 사건들로 나의 뒷목을 잡게 했던 그를 나는 철썩 같이 믿었다. 비슷한 일이 있을 때마다 어안이 벙벙해져 우는 나에게 그는 코웃음을 치며 나를 의심 많은 쫄보로 만들었다. 그 흐름에 귀찮은 듯 편승해 스스로 합리화 해 가면서 잘도 속았던 것 같다. 하늘아래 흔해빠진 불쌍하고 평범한 와이프 같은 건 되고 싶지 않았으나 이미 거울 속 나는 많이 상한 후였다.
여름에 이 습한 전쟁을 시작했던 그와 나는 결국 가을이 되어서야 법원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법원에 가는 날짜를 잡는 것도 일이었다. 퇴근을 하면 틈날 때마다 달력을 펴 놓고 흥정하듯 서로 날짜를 제안했다. 시장에서 막무가내로 가격 흥정을 하는 우악스러운 손님들도, 어시장 새벽 경매도 그렇게는 치열하지 않았을 거다. 그는 신나게 날짜를 미뤄댔고, 나는 그가 짚은 날짜의 2-3주 앞 날짜를 손가락으로 문대 가며 합의를 해 나갔다. 달력 페이지가 수없이 넘겨지고 돌아오고를 반복, 우리는 10월의 어느 화요일에 법원을 가기로 결정했다. 막상 날짜가 다가오면 모른 척 딴소리를 할까봐 눈치를 보기도 하고, 그런 마음이 들킬까봐 아무 일 없다는 듯 센 척을 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불안한 한 달을 보냈다. 마치 새벽에 장황하게 쓴 연애편지를 보내놓고 어떤 답장이 올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리고 무사히 이별했다.
어떻게 보면 만남과 이별은 성질이 참 닮아 있다.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잘 만나느냐도 물론 중요하고 근사한 일이지만, 그만큼 잘 헤어지는 것도 못지 않게 중요하고 대단한 일이다. 그리고 둘 다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좋아하는 상대에게 고백하지 못하고 혼자만의 짝사랑으로 끝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헤어져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마음을 꺼낼 수 없어서 참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치만 감정에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고백해야 한다. 더는 아프고 시리기 전에. 남아있는 온 힘을 다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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