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에도 근력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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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휘


마음이 지칠 틈이 없게 집들이를 하고 술을 마셔댔는데, 결국은 몸이 지치고 말았다. 안 되겠다 싶어 금주를 한지 일주일이 넘어가자 외로움이 불편한 손님처럼 우리집에 방문했다. 나에게 주어진 건 평안하고 따뜻한 두번째 독립생활이라고 생각했는데 방심한 틈을 타서 외로움이 미행하듯 따라붙었다. 내가 나약해질 때만을 기다리다 갑자기 문을 열고 훅 들어온다. 도저히 맨정신으로 이 감정을 겪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술을 빌어 버티는 건 불법과외를 받는 것 같아서 싫다. 정정당당하게 외로움과 결투하고 싶었다.


한 번은 모두가 합심해서 숨바꼭질을 하는 것처럼 하루종일 아무도 나에게 얼씬도 하지 않는 날이 있었다.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날들. 딱히 할 일도 없는데 그렇다고 별다른 의욕도 안 생겨서 며칠을 지루하기 짝이 없게 누워있기만 했다. 내가 말은 할 줄 아나? 나 빼고 다같이 숨은 거 아냐? 청소년기 이후 졸업한 줄 알았던 '도대체 인간은 왜 사는 걸까', '사는 게 지루하고 의미도 없다', 뭐 이런 생각들까지 쫄래쫄래 따라온다. 이쯤 되면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참 두렵게 느껴진다. 자꾸만 조금씩 먹처럼 스며들어 내 마음을 온통 까맣게 물들일 것만 같다. 10억 주면 한 달 동안 집에서 스마트폰 없이 혼자 놀기 가능? 불가능. 무인도에 간다면 나는 반드시 사람을 데려갈 거야. 혼자서는 절대 살아갈 수 없지. 심심하다는 건 너무 괴로운 일이야. 그런 생각만을 잔뜩 하다가 문득 내가 참 프로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나는 겨우 이 정도에 겁을 먹는 쫄보가 아니다.


여성 스포츠 선수들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을 꼬박 2년 넘게 했었다. 수많은 종류의 운동 경기 게임을 촬영하면서 내가 배운 건 '지치지 않는 마음'이었다. 그들은 누가 봐도 불리한 상황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대충 하는 법이 없다. 현역 선수들은 컨디션이 좋거나 나쁘거나, 성적이 뛰어나거나 저조하거나 매일 훈련장에 향한다. 그들이라고 질문이 없었을까. 그래도 외친다. '해 보자', '더 가 보자', '할 수 있어'. 그 모습이 참 멋있고 좋았다.


"지치지 마."


물컵에 물을 채우며 혼잣말을 해 본다. 지치지 마.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강한 명령이다. 외로움도 버티려면 근력과 지구력이 필요하다. 녹은 치즈처럼 물컹하게 지쳐서 벌러덩 누워 있는 내 모습에 다시 한 번 악을 질러 본다. 해 보자. 일어나자. 거짓말처럼 기분이 나아진다. 이제는 내가 나를 양육하고 키워야 한다. 좋은 것들을 보여주고, 좋은 것을 먹이고, 좋은 생각들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전담 트레이너처럼 내 인생을 가장 잘 아끼고 분석하고 계획할 수 있는 건 내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자 지칠 여유가 사라졌다. 외로움? 배부른 소리 하네. 심심하면 나가서 러닝이라도 해.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인다. 괴로울 때마다 5km씩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 책도 읽고 글도 썼다. 미팅도 하고 일도 한다. 그렇게 나를 관리하기 시작하니 어제보다 오늘이 훨씬 수월하고, 외로움도 더는 꼬장부리지 않는 것 같다.


외롭고 괴로워도 버텨내는 힘. 나도 나만의 근력을 키워 나가 보기로 한다. 지금 당장 외로워? 당연해. 그건 누구나 겪는 감정이야. 일단 받아들이고 대신 그 자리를 좋아하는 것들로 채운다. 그게 긍정적인 사고방식일 수도, 운동일 수도, 일에서 얻는 성취일 수도, 주변 사람들과의 유대감일 수도 있다. 건조한 내 마음에 물도 주고 햇살도 준다. 매일 매일 운동을 하면 근육이 생기는 것처럼 나를 위한 연습들이 나를 조금씩 더 단단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줄 거라고 믿는다.


어떨 때는 인생에서 나만 점수가 뒤처지고 있는 것 같다. 이혼을 하고 돌싱이란 벼슬이 생기고 나니 어쩐지 남이 낸 파울에 나만 경고를 먹은 것 같다. 그러나 아직 나의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 집중해 보려고 한다. 하프타임이라고 생각하자. 이혼은 패널티가 아니고 나는 루저가 아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인생에서 그저 후회 없는 플레이를 하자. 묵묵하게 천천히 득점해 나가면 된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스포츠 정신이다. 조금 힘에 부칠 때는 잠깐 쉬면 된다. 가끔 지칠 때마다 나를 다독여줘야지.


지치지 마! 꺾이지 마! 누가 꺾여? 절대 안 꺾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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