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불행하다고 느낄 때마다

AD 46일

by 이휘


법원을 가기 전 어느 긴 일주일이었다.


목요일에 갑자기 아빠가 돈이 필요하다고 문자가 왔다. 이혼을 앞두고 괴로워하는 딸에게 2천만 원을 빌려달라고 하는 아빠는 어떤 아빠일까. 그때 아주 잠깐 내 삶이 절망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 절망감은 1분 정도가 지나자 황급히 사라졌다. 사실 별 일 아니었다. 몇 억의 빚을 대신 청산해달라는 호소문도 아니었고, 죽을병에 걸렸으니 앞으로 나를 극진히 모시라는 명령도 아니었다. 정말 중요한 회의 중이라 문자를 보고도 답장을 하지 못했는데 정말로 급했는지 재촉하는 문자가 몇 번 더 왔다. 적금이 여기저기 묶여 있어서 아빠에게 송금할 수 있는 돈은 5백만 원 정도였다. 괜찮았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돈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혹시나 하고 아빠에게 재차 물었다. 지출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언제 돌려줄 수 있는지. 아빠는 내일 연락하자는 말만 남기고 다른 대답은 없었다.


아빠와 같이 살지 않은지는 꽤 됐고 결혼이나 이혼 같은 중대사가 아니고서는 웬만하면 연락 같은 건 안 하고 지냈다. 그러던 아빠가 이혼 얘기를 듣고 매일같이 연락을 해 줬었다. 전화를 하면 칼같이 받고 내 안부를 물어왔다. 아빠는 당신의 위로를 적금이라고 생각한 걸까. 2천만 원을 만기로 탈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이런 못된 생각을 하는 나도 참 제정신은 아니다. 아빠는 그랬을 리 없다.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은 술을 먹으면 주체가 안 될 정도로 마시는 것 같다. 안주를 채우지 않고 소주만 들이부었다가 응급실까지 갔다. 길바닥에서 졸 정도로 마신 적은 20대 이후로는 없었는데 요즘은 정말 많이 취한다. 안 좋은 일을 계속 복기하고 생각하면서 마셔서 그런 것 같아서 술은 기분이 좋을 때 마시기로 다짐했다. 술을 마시면 나의 주변 풍경들이 더 서글프게 느껴지는 게 싫다.



금요일이었다. '나 빨래 좀 돌리고 나갈게' 라는 말에 펑펑 우는 친구가 생겼다. 그녀는 울며 내게 말했다.


"언니는 빨래를 한다고 하는데 언니 것만 빨래 하는 게 아니겠지. 이혼을 앞둔 언니는 얼마나 괴로울까. 나는 왜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나는 언니가 그 집에 그 사람이랑 같이 있는 게 싫어. 우리집에 잠깐 와서 지내라고 하기에는 육아하느라 우리집도 정신이 없는데. 한달에 우리가 들어오는 돈이 얼마고, 얼마를 지출해버리면 나는 언니를 도울 돈이 없는데. 나는 언니한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어서 서러운 생각이 들더라."


펑펑 우는 목소리를 듣는데 내가 정말 행복에 겨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녀가 서럽게 울수록 나는 더 행복해졌다. 나를 계속해서 들여다봐주고 궁금해해주고 괜찮은지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감사한 요즘인데 이제는 내가 그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호들갑 떨지 않는다. 내가 슬플지 밥은 먹었을지 이런 걸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슬프지 않고 생각보다 밥도 잘 챙겨먹기 때문이다. 이들 덕분에 요즘의 나는 그 누구보다도 강하다.



토요일에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나 봤다. 집에 돌아와서 이혼할 남편에게 공연 얘기를 꺼냈다. 왜 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너무 외로웠고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남편은 계속 TV만 쳐다볼 뿐이었다. 그가 물어왔다.


"그걸 지금 나한테 왜 얘기하는 거야?"


면전에 대고 한껏 쏘아붙이는 그의 모습에 나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물론 우리가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눌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이렇게 같이 한 식탁에서 밥을 먹을 사이기는 한가.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출근한다고 인사하는 사이이긴 한가. 결국 집구석은 매 순간마다 제멋대로 기분대로 행동하는 공간이 되어버린지 오래인데 '지금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느냐'는 피드백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서로에게 무례하지 말아야지' 라는 문장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처럼 굴지만 그 문장 뒤에는 시퍼런 칼같은 마음도 함께 있어서 위험한 관계다.


저녁을 먹는데 그가 감자전 같은 걸 해 뒀다. 사실 저녁도 같이 먹고 싶지 않았다. 발사믹 드레싱을 사와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밖에서 일을 하다 들어갈 건데 굳이 사 가야 하냐'고 대답했다.


"우리가 하루 일과를 공유하고 다독이는 사이가 아닌데 내가 왜 발사믹 드레싱을 사 가야 해?"

"나도 억지로 장 봐왔는데 알겠다. 저녁 먹고 일해."

"억지로 하지 마, 뭐든. 일단 드레싱 사서 들어갈게."


이혼에 정답도 매뉴얼도 없다. 발사믹 드레싱을 사와달라고 하려면 최소 법원 가기 5일 전이어야 한다는 규율도 없다. 하여튼 나는 발사믹 드레싱을 사 갔다. 그가 감자전을 하고 있었다. 평소 집밥을 잘 만들던 그가 감자전 위에 루꼴라를 얹고 발사믹 드레싱을 뿌리는데 그 모습이 꽤 엉망진창이었다. 감자전을 억지로 뒤집으려다 가스레인지에 감자전이 흘러서 타고 있고, 싸구려 키친타올 위에 감자전을 올려서 감자전이 들러붙을 뻔 하고 발사믹 드레싱은 흔들지도 않고 뿌리고 있었다. 모든 과정이 다 실패인 요리였는데 막상 맛을 보니까 괜찮았다. 그래서 정말 맛있다고 했더니 남편이 대답했다.


"나중에 느그 신랑 해 줘라."


이게 얼마나 무례하게 느껴졌는지는 들어본 나만이 가장 잘 안다. 밥을 먹으면서도 기분이 더럽네 어쩌네, 너는 화가 많네 어쩌네 그런 말들을 나눴다. 기분이 너무 나빠서 치우지도 않고 소파에 앉았더니 '기분이 더러워도 같이 치우는 척이라도 해달라'는 말소리가 들렸다. 누가 보면 평소에 밥먹자마자 상 치우는 깔끔한 성격인 줄 알겠네, 어차피 설거지 엉망으로 해서 내가 다시 손보게 만들 사람이. 참으로 공사판 같은 저녁이었다.



화요일이다. 전에 써 둔 글들을 보니 꼭 생리 첫날에 혼자 밥 먹을 때마다 펑펑 울었다. 밥공기만한 눈물. 그거다. 또 비슷한 시기가 찾아오고 내가 또 밥공기만한 눈물을 뚝뚝 떨구며 라면을 먹고 있었다. 울면서도 생각했다. 이건 호르몬이야. 눈물이 아니야. 슬퍼서 우는 건 아니었다. 그냥 기분이 그랬다. 가끔 생각과는 다르게 감정이 표출될 때가 있는 것처럼.



정말 긴 일주일이었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일주일이 토막토막 길게 느껴질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달려왔는지도 모른다. 그치만 나는 끝까지 최선을 다 할 거고, 마지막까지 집중해서 완주를 하려 한다. 나를 강하게 견디게끔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분명히 존재하고, 그들보다 내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드는 내가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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