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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이 먹고 싶다는 남편의 말에 외식을 했다. 사실 고기 같은 건 쳐다보기도 싫었다. 샐러드를 먹고 싶은 저녁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2주 후면 법원에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고기가 먹고 싶은 사람에게 고기를 같이 먹어주고 싶었다. 비가 왔고 고기가 정말로 맛이 없었다. 내 입맛에 안 맞았던 게 아니라 그냥 형편없는 집이었다.
고깃집을 들어가는 길에 몇 번이나 차도에 차가 달려왔다. 차가 가까이 올까 봐 남편이 내게 주의를 주며 등에 손을 댔다. 아주 살짝 닿은 건데도 그 손길 자체가 엄청나게 느껴졌다. 싫지는 않았다. 그냥 그대로 두었다.
고기를 다 먹고 나왔는데 느끼하기도 하고 뭔가 기분이 좋지 않은 방식으로 배가 불러서 언짢았다. 사이가 좋았던 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도 잠깐 들었다. 둘 다 과일주스 같은 게 먹고 싶었는데 마침 집에 있던 키위와 바나나가 생각이 났다. 우유와 플레인 요거트가 있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슈퍼를 들렀다. 익숙한 동선과 익숙한 운전. 익숙한 목소리들이 차를 가득 채웠다.
맛없는 고기를 먹으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맛이 없고 불편한데 이걸 아무 거리낌 없이 드러낼 수 있는 사이는 이 세상에 남편이 유일하다는 걸. 밥을 먹으면서도 전혀 잘 보이려고 하지 않아도 되고(이미 서로를 잘 봐주고 있기 때문에), 나의 불만 불평 때문에 분위기가 깨지지는 않을까 눈치보지 않아도 되고 그냥 있는 그대로 표현해도 된다는 걸. 우리는 그렇게 7년 동안이나 만들어져 왔다는 걸. 그리고 그게 다 망가져서 이제 다시는 그런 사이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이렇게나 좋은 사이를 남편이 다 망쳤다는 걸. 그게 분하고 속상했다.
집에 왔는데 남편이 기분이 좋아 보여서 물었더니 와이프랑 외식을 해서 기분이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너가 다 망쳤잖아." "후회해?" 독한 질문들을 나눴다. 남편은 후회한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어색해서 이상한 농담들을 했다. 더이상 싸울 필요가 없는 사이였다.
남편이 '남이 된다'는 표현을 자꾸 쓴다. 이혼하면 번호도 바꿀 것이고 절대로 자신을 찾지 말라는 당부를 덧붙이며. 누가 보면 내가 큰 잘못을 해서 헤어지는 것만 같다.
혼자 안방에서 조금 울었다. 아직은 실감조차 나지 않는 미래의 나에게 최선을 다해 힘을 내라고 말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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