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7일
오전 8시 30분에 아침밥을 먹다가 소리 내서 울었다. 밥공기만한 눈물이 식탁에 뚝뚝 떨어졌다. 나는 이혼을 결심했고 부모님에게 그 사실을 통보했다. 가장 놀라웠던 건 두 분 모두 놀라지 않았다는 점이다. 차라리 '나 오늘 저녁 안 먹을래'라고 말했다면 더 대단한 반응이 돌아왔을 것 같다. 그동안 내색 한 번 한 적 없는데 마치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침착한 엄마 아빠가 그래서 원망스럽기도 했다. 나한테 좀 일러주지. 어른의 눈으로 한 번만 말려주지. 물론 적극적으로 말렸다고 해도 들은 척도 안 했을 나였겠지만.
조용한 식탁에서 혼자 밥을 먹다 보니 밥알보다 더 많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그동안 잘못 산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다 경솔했나 싶고, 그는 정말로 진실로 아무 잘못이 없는데 나만 이렇게 속이 썩어문드러지나 싶고, 결혼은 신뢰가 바탕이라는데 믿지 못하는 내가 문제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미치자 그렁그렁 고인 눈물이 한꺼번에 우박처럼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내가 본 텍스트와 사진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이제 그만 도망쳐.' 그게 번개 맞은 듯 냉철하게 돌아설 수 있었던 이유들이다.
어제는 전화를 걸어 "엄마 아빠한테 너무 미안해서." 라는 말을 내뱉으며 울었다. 밤에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홍대까지 걸었다. 홍대에서 또다시 집까지 걸었다. 경의선 숲길이 참 길고 조용하게 뻗어 있었다. 결혼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어 버티고 삼켰는데, 그렇게 꾸역꾸역 밀어넣었던 것들이 소화가 되지 못하고 터져버린 것 같다. 그 터진 것들을 잘 꿰매고 돌봐야 하는 시기가 도래하고야 말았다. 이 엉망진창인 감정들을 더는 너저분하게 놔두어서는 안 된다.
이혼을 결심한 이후로는 생각보다 마음이 고요하고 깨끗해졌다.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한다는 생각 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편안하고 여유로워졌다. 어떤 말을 들어도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가 하는 모든 말들은 실제로 나에게 아무런 영향도 없었다. 무서울 정도로 차가운 확신은 마음 깊숙히 뿌리내려 나를 점점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 어느때보다 가장 이성적인 시기를 겪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마음에 물기가 있는 날에는 몇 번을 다짐해도 내 탓인 것만 같다. 실수를 용서해주지 못한 나의 속좁음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는 내가 없으면 무엇도 해내지 못할 것 같다는 연민도 피어난다. 그렇게 몇 분을 울다 보면 다시 이성을 찾는다. 가장 불쌍히 여겨야 할 건 내 자신이라는 생각에. 나를 가장 잘 지켜줄 사람은 나라는 생각에.
더이상의 용서와 연민은 나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다. 그저 조속히 원만히 해결되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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