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휘 Dec 12. 2023

독자님들께 전하는 안부

 “거의 감옥이지. 징역 7개월이라고 생각하면 돼. 다녀올게.”


 브런치에 거의 6개월 동안 자리를 비웠습니다. 새 프로그램이 들어와서 6월부터 12월까지 워라밸을 포기한 삶을 살았습니다. 무자비한 스케줄일 거라는 걸 알고 각오하고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저녁이 없는 삶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새벽 5시에 퇴근한 적도 많고, 아침 7시에 출근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퇴근한 적도 있습니다. 일을 시작한지 두 달 반 만에 저녁에 외식을 하고 스벅에서 커피를 사서 한강 주변을 산책했을 때 공기가 얼마나 달콤했는지, 그 반짝이는 가로등과 강물을 잊지 못합니다. 술이 많이 약해졌고, 친구들은 제가 바쁘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 퇴근했다는 사실을 인스타 스토리로 확인하고 나서야 연락이 옵니다. 음악 프로그램을 하느라 노래도 참 많이 들었습니다. 이제 이번 주에 마지막 녹화를 하고, 다음 주에 마지막 방송을 하면 또 한 프로그램이 끝나고 이력서에 한 줄이 더 생깁니다. 지독했던 시간들도 있었지만 여름은 뿌듯한 만큼 치열했고, 가을은 그럭저럭 할만 했고, 겨울은 어쩐지 시원섭섭한 무드로 잘 지나가고 있습니다. 늘 그랬듯 어떤 이도 저에게 서운해 할 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실 지난 6월, <잘 쓴 이혼일지> 브런치 북을 발간한 지 한 달여 만에 아주 훌륭한 출판사로부터 책 출간 제안을 받았습니다. 다정다감하고 예의바르신 편집자 분들을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계약서를 썼고, 초고를 보내드렸습니다. 좋은 소식은 언제나 붕 떠 있어서 괜히 소문을 내면 호호 날아갈 것 같아 두고두고 묵혀두다가 독자 분들에게도 전합니다. 부디 따끈따끈하고 좋은 책이 되어 더 많은 독자 분들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겨울에 먹는 호빵 같고, 여름에 마시는 아메리카노처럼 당연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한 해가 끝나면 꼭 12월에 저의 인생을 결산합니다. 그 해에 가장 인상 깊었던 올해의 영화, 올해의 책, 올해의 빌런, 올해의 인물을 반드시 선정하고 기록합니다. 20대 때 연예뉴스 프로그램을 2년 정도 했는데, 남의 가십거리는 열렬하게 결산하고 랭킹을 매기면서 내 인생은 왜 결산하지 않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생긴 습관입니다. 그렇게 매 해 저만의 엔딩크레딧을 만들어서 가운데 정렬로 정리해 보면 한 해가 지나간다는 게 제대로 실감이 납니다. 이 글을 보시는 독자님들도 2024년에는 한 번 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몇 년이 지나고 나중에 읽어 보면 웬만한 일기보다 재미있습니다. 



 연말은 책 원고를 수정하고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과 회포를 풀며 술로 보낼 것 같습니다. 언제나 제 인생이 시트콤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지독하게 웃긴 이야기가 있으면 또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오늘의 가장 행복한 일은 마지막 녹화의 대본 수정을 잘 마쳤다는 점입니다. ‘역시 똑똑한 사람만이 해낼 수 있어 난 뒤지게 똑똑해’ 그런 건방진 생각을 하며 희열을 느꼈습니다. 물론 내일 리허설을 하면 수정사항이 또 생길 겁니다. 오늘도 여전히 이 시간까지 퇴근은 못하고 있지만, 캄캄한 밤공기를 삼키며 집에 도착하면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어제 산 책을 읽으며 포근한 침대에서 달콤하게 자 볼까 합니다. 모두들 적당히 좋은 밤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말

독자님들에게 처음으로 말 걸어 봐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