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람, 여기에서 거기로 불 뿐
나는 바람, 여기에서 거기로 불 뿐,
애써 머무는 곳도 넋 놓고 머물 곳도 없네
그래도 마음 하나 가득한 바람이 있다면
네가 내 길에 함께 흘러가는 것
네가 나 있는 곳으로 와 주는 것
네가 나의 품에서 춤추는 것.
너는 넉넉한 바위, 여기에 또 거기에 있네
흐르지도 구르지도 않네
내 부르는 소리 듣기만 듣고
내가 오고 가는 것을 즐겨 반길 뿐
나 흘러가는 길은 애써 침묵하네
나는 바람, 너는 바위,
나는 너를 굴리지 못해
나는 너를 부르지도 못해
할 수 있는 것은 너의 고운 얼굴을
가만히 만지는 것
애꿎은 나뭇잎 몇 개 날려
네 넉넉한 어깨를 다독이는 것
그렇게 네 마음을 한알씩 한알씩
금빛 은빛 모래로 만드는 것
네가 나와 함께 가지 못해도
네 마음 한 조각 하늘에 띄워
나 지나는 길에 쌓아두는 것,
천년 만년 세월 속에 너의 마음 조각으로
자그마한 모래 언덕 만드는 것
그 언덕에서 네 마음 조각들 가만가만 까부르며
바위인 너를 그리는 것
나는 바람, 너는 바위,
나는 그대의 마음을 쓸어모아
그 부스러기들 속에 머무네
그 마음과 함께 흘러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