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 와서 살아도 양말은 꼭 한국에 가서 산다. 아니, 종종 투툼한 양말은 여기에서 사기도 하지만, 일상적으로 신는 양말은 홈플러스나 롯데마트에서 묶음으로 파는 것을 잔뜩 사와서 다음에 한국에 갈때까지 신는다. 주로 사는 양말의 색은은 너무 밝지 않은 색깔, 그렇다고 검은 것도 아닌 진한 회색 계열인데, 이게 때를 잘 안타서 좋다. 양말은 매일 갈아신어 때를 잘 타지는 않지만, 그냥 내 기분에 어두운 색이라야 덜 티나겠다는 생각을 한다.
종아리를 가리는 긴 양말은 신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주로 복숭아뼈를 가리는 정도의 짧은 양말이면 좋다. 여기에서 입는 옷들이 격식을 갖추지 않아도 되니까 더 그렇다. 그렇다고 긴 양말을 아주 사지 않느냐면 그런 것은 아니다. 가끔 양복을 입어야 할 때가 있으니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검은 양말도 두어개 곁들여 갖춘다. 그럼 그걸로 양말 더 사지 않고 한두해는 잘 지난다.
한국에 가면 아버지는 어느 날, 무심하게 새 양말 두어개를 툭 내게 던져주신다. 양말의 브랜드는 거의 정해져 있다. 닥스. 이걸 아버지가 다니시면서 사는 것은 아니니까 큰누나나 다른 누군가가 사다 드린 것일테고, 아버지의 옷장에 오래오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아버지는 막내 아들이 올 때 맞추어 꺼내놓으신다. 나의 다른 형제들, 나의 조카들도 이런 양말을 아버지께 얻어 신을 일은 이제 별로 없다. 아버지조차도 이 양말들을 더 신으실 일은 없다. 아버지는 언제 모아두셨을지 짐작하기도 어려운 이 양말을 두어개 내게 주신다.
주일예배에 옷을 갖춰입고 가는 때가 있는데, 아마 그때 양복에 맞춰 신으라는 마음으로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있는 동안 한 켤레 정도 신지만, 한 켤레도 신지 않을 때도 있다. 그냥 잘 두었다가 짐가방에 넣어 돌아온다. 그럼 짐을 풀 때 다시 내 양말 서랍의 한쪽에 잘 쌓아둔다. 그런 양말이 아직 몇 상자 있었다.
루이스 임직예식을 하는 주일 아침, 아버지가 주신 양말을 꺼냈다. 몇 해 전 아버지가 양복 맞추라고 주셨던 돈으로 동대문 시장의 양복점에서 맞춘 제법 괜찮은 양복에 닥스 검은 양말을 맞춰 신었다. 아버지 여기 계시지 않지만, 아버지께서 예배에 갖추라고 주신 것들로 차려입고 임직예식을 치렀다. 쉰 살 넘은 아들이 백 살 가까운 아버지와 검은 양복에 검은 양말 갖추고 함께 여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