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쓰기

쉬운 일이 어디 있겠나? 어려워도 해보는 거지.

by 또마스

'용기를 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작은 실패는 사소한 도전도 미루게 만든다. 게다가 내 실력이 그렇게 출중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난 뒤라면 더 그렇다. 글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 꽤 오래 생각하고 살았지만, 게다가 실제로도 뭔가를 쓰면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는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살았다.


아주 어릴 적에는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썼다. 친구들에게 쓴 편지에 좋은 답이 오면 그것이 기뻐서 썼고, 초등학교 중학교 때 선생님들께 편지를 보내서 답장을 받으면 그게 큰 칭찬처럼 기분이 좋았었다. 방학숙제를 미루다가 할 수 없이 여기저기서 짜집기해서 낸 독후감이 선생님의 눈에 띄었던 때는 당혹스럽기도 했고, 이렇게 쓰면 되는구나 하는 방법을 얻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때는 학교 백일장이나 군/도에서 하는 글짓기 대회에 보낸 원고가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혼자서는 꽤 놀랐으면서도 겉으로는 당연하다는 듯 우쭐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몇 번 상을 받으면 그때부터는 무슨 전속처럼 선생님들도 글을 맡기고, 나도 공부는 말고 이런 거나 하자고 시간을 허송했었다. 글다운 글을 쓴다기보다는 상을 받는 법을 알아버린 서툰 기술자가 된 기분이었다. 지나고보니 그렇다. 그래도, 고등학교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동인에 들어가서 꽤 혹독한 훈련(?)을 받은 것은 고맙다. 칭찬만 받거나, 어떤 피드백도 없이 그저 보내지고 그렇게 잊혀지던 투고 대신에 눈물 찔끔 나도록 퍼붓던 선배들이 있어서 글쓰는 일이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글을 쓰고 싶어서 대학도 국문학과로 갔는데, 우리 학교는 문학에 대한 전통은 없었다. 시작도 국어교육과로 시작했고, 시류를 따라 국문과로 갔다가 이제는 그마저도 외국인들을 입학생으로 받는 '한국어교육과'가 되었으니 글쓰기를 가르칠 선생님도 제대로 없었다. 그렇다고 욕망이 저절로 사그러드는 법은 별로 없다. 동인에서 받은 훈련으로 조금씩 관계를 넓혀가다가 나중에는 우리 학과에 글쓰는 무리 - 동아리를 만들었다. 위로 선배는 없이 후배들만 밑으로 받으면서 시작한 동아리였는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학과가 소멸하면서 그 동아리도 학교에서는 소멸했겠다. 여튼, 그 시절에도 꽤 즐거웠다. 글을 쓰는 일이며, 책을 읽는 일을 함께 할 동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나이를 먹고, 삶이 혼란스러운 20대를 마무리할 즈음에는 그 동아리 후배들과도 멀어졌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 누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는 일이 있다.


그리고, 30년쯤 지났다. 그 사이 아무 것도 쓰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무엇을 썼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내놓을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요즘 깨닫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인터넷의 흐름 속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들과도 글에 대해 얘기하면서 살고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그렇게 넉살이 좋지 못해서, 그리고 그런 자본주의적 글쓰기가 영 마땅하지 않아서 그렇게 글을 묶는 것은 죽어도 못할 일이다. 그래도, 글을 묶자는 욕심은 있다. 혼자서 해 볼 작업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스물 몇 살인가에 그때까지 썼던 '시나부랭이'를 묶어서 복사한 책을 묶자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양평군청 근처의 복사집을 다니면서 비용을 물었다가 꽤 나온다는 얘기에 포기했지만...

이제 책을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대학 후배 W는 대학을 졸업하고서 만났을 때 자기는 이제 시는 쓰지 못하고 '수필'을 써보고 싶다는 얘기를 했었다. 나도 나이를 먹으면서 그의 말에 속으로 동의했었다. 시를 쓰고 싶다는 욕망을 내려놓을 수 없어서 수긍하지는 않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그걸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할 수 있는대로 뭐라도 써보려고 한다. 꼭 책을 묶자는 결심은 아니다. 그냥 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뭐라도 덩어리를 하나 만들어보자는 욕심이다. 이 욕심이 과연 이루어질지는 모르겠다.

요절한 후배 - 내가 꽤 애정하는 S의 글을 묶어서 책으로 낸 것이 20년이 넘었다. 우리가 건대 후문 복사집에서 묶어낸 그의 책을 우리의 선생님 - 김정란 선생께서 출판사에서 건네시고 그렇게 정식출판한 것도 벌써 몇 년이다. 이제 없는 그도 책을 냈는데, 여기 살아있는 내가 그에게 보여줄 뭔가 하나 있으면 좀 그럴듯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렇게 또 내가 무엇을 쓴다기 보다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남기고 싶은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할 수 없다. 그렇게라도 덩어리를 오물오물 만져보고 싶다.


용기를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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