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웠다거나 마음대로 다 해본 삶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실패 또한 내 뜻대로 나아가다 얻은 훈장이라 여기며 후회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30대의 삶은 그렇지 못했다.
현실이란 벽 앞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잊은 지 오래였고,
하고 싶은 것보다는 누군가의 제안이나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선택하는 것이 우선이었던 것 같다.
남들이 옳다고 말하는 삶이
내 목표가 되었고,
그러다 실패하면 남 탓을 하지 못해
나를 자책하며 회복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그게 요즘 말하는 '회복탄력성'이었던 것 같다. 난 30대에 확실히 회복탄력성이 떨어졌었다.
하지만 분명 30대의 실패는
나에게 남긴 상처와 물음표가 더 많았던 건 사실이다.
까짓 거 툭툭 털고 다시 시작하면 그만일 것을
왜 그리도 오랫동안 주저앉아 있었는지,
왜 그 지친 마음이 회복이 더뎠는지..
서른아홉.
30대를 떠나보내는 지금에서야 조금 알 것 같다.
물리치료과에 입학 후,
자퇴 후 복학이라는 다사다난했던
나의 2년의 세월 덕분에
동기들보다 2년 늦게 졸업을 했던 나다.
남들보다 늦었던 시작이었지만
나는 꽤나 열정적인 물리치료사였다.
작은 정형외과의원에 처음 취직해서
1년이 채 되지도 않았을 때 도수치료사로서의 꿈을 꿨고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을 갔다.
그렇게 1년 차 때부터
나는 꽤 높은 월급을 받으며 일을 했었다.
그러다 지인의 제안을 받아
조금 더 전문적인 분야로 특수치료를 해보고 싶어
왕복 3시간 거리를 매일 출퇴근하며 일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그 후엔 한의원에서도 일해보자 제안이 들어왔고 그렇게 한의원에서도 일해볼 수 있었다.
결혼 전 짧은 경력임에도
나는 참 다채로운 경험을 해봤던 것 같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나를 도와주신 감사한 손길들로
마음껏 공부하며 도전해 봤던 사회인으로서의 첫걸음이었다.
인복이었는지 운이 좋아 그랬는지
새로운 기회의 제안들이 많이 찾아왔었고,
자신이 있고 없고는 중요치 않게 경험이 될만하다 싶으면
일단 하고 봤던 것 같다.
무모했지만 그땐 배우는 즐거움과
그걸 펼칠 수 있는 기회가 함께여서 해볼 만했던 것 같다.
한의원에서 일을 할 때였다.
임신을 알게 된 후 바로 일을 그만두었다.
뜸의 역한 연기 냄새가 혹시나 아이에게 해가 될까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던 것 같다.
뱃속의 아이가 당장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
그때만 해도 내 안의 트라우마가 아이를 지켜야 한다고 강박적인 생각들을 머릿속에 가득 채웠던 것 같다.
내 안의 나와 끊임없이 싸워가며 용기 내어 생긴 아이가
내 인생의 전부가 되어버린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렇게 시작된 엄마의 삶이 올해로 10년이 넘었다. 내가 선택한 엄마로서의 삶은 만족스러웠다. 내가 되어 주고 싶은 어른이 되어주려 노력했고, 공부했고, 다행히 뜻대로 되었다. 아이들과 충분히 함께 있어줄 수 있었고 참 많은 대화를 나누며 지내온 덕에 관계가 썩 좋은 편이다.
그래서였을까?
언제부턴가 아이는
평범한 가정 주부인 나의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엄마의 모습이
딸의 꿈이 되어버린 걸 알게 된 건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때였다.
학교에서 어느 날 30년 후의 내 모습을 일기로 적어오라는 숙제를 내준 적이 있었는데 딸의 일기에는 나의 하루 일과가 적혀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아이의 엄마로, 가정주부로서의 하루의 일과가 말이다.
그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의 모습이 아이의 미래구나.' 하는 무서운 진실과 마주한 순간이었다. 엄마로서의 삶도 위대하다. 하지만 더 큰 세상에서 꿈을 펼치길 바라는 엄마 마음으로는 걱정스러운 문제였다.
사실, 아이를 위해 곁에 있어야 한다 생각하고
꿈이란 단어를 잊은 지 오래였다.
나의 작은 수조 속에서 커가는 아이가
결국엔 내 수조크기밖에는 클 수 없을 수도 있겠다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나는 엄마로서의 삶만이 아닌
꿈 많던 나의 지난 20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다시 시작해야 했다.
엄마로서 단절된 건 내 경력만이 아니었다.
내 꿈도 거기에서 멈춰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30대의 도전들이 시작되었고,
또다시 물리치료사로서 일할 수 있는 제안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도전은 번번이 좌절되고 말았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열정만으로 시작해서였을까?
시작한 일을 꾸준히 밀어붙이지 못한 끈기부족 때문이었을까? 꼼꼼히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기회라 여겨 덥석 잡았던 나의 경솔함 때문이었을까?
나의 문제 때문이 아닌 상황에 의해 좌절된 경우도 있었지만 모든 실패의 이유를 찾다 보니 점점 더 나의 부족한 부분만 들춰내게 되는 자책의 연속이었다.
그게 반복되니 나는 무엇도 시작할 수 없는
겁쟁이가 되어 있었다.
그때 마침 이웃의 권유로 알게 된 두 번째 스무 살이라는 김미경 학장님의 514 챌린지를 알게 되었다. 참 신기한 타이밍이었다. 매달 14일 동안 새벽 5시에 기상하는 챌린지였는데, 그렇게 1년 가까이 새벽시간을 마주하다 보니 지나온 모든 나를 만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
나의 30대의 도전에는 정작 내 꿈이 없었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최선이라 여겼던 물리치료사의 길은 정작 내가 왜 이어나가야 하는지 나조차도 모르고 그저 나아가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택은 내가 했지만
선택하게 한 모든 이유에는 내 의지는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일을 마주할때면 나는 늘 긴장했었고,
결과가 나도 즐겁지 않았던 것 같다.
외벌이인 신랑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고,
경제적인 책임감을 함께 나눠야 할 때라는 의무감이 컸던 것 같다.
그래서 뭐든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나에게 들어온 제안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지,
진짜 원하는 건지 생각해보지 않고 일단 시작했던 것 같다.
그게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경험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자기 위로를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의지가 없는 일은 번번이 멈춰졌고,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 나의 한계는 나를 더 자신 없게 만들어버렸다.
내가 아이를 키우는 동안 신랑은 일을 했다.
나와 직업이 같은 신랑은
내가 아이들을 책임지는 동안
전공교육도 수시로 들었고 대학원까지 마쳤다.
나와 신랑이 나눈 역할은
우리 가족을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었지만
멈춰진 나와는 달리 점점 발전해 가는 신랑을 보며
나는 내심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둘 다 멈춰있을 수는 없으니
한 명이라도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억울해하지 말자 끊임없이 마인드 컨트롤을 했었다.
힘들게 가족을 위해 노력하는 건
돈을 벌어오는 신랑뿐만은 아니었는데
나조차도 나의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고
경제력이 없는 나를 한 없이 원망했던 것 같다.
맞벌이하는 엄마들을 보면
꼭 가정주부의 삶만을 고집하지 않았어도 되지 않았을까? 아이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과연 그 선택이 쉬고 싶어 가족 안으로 숨은 겁쟁이 같았던 나의 도망은 아니었을까 수도 없이 의심하며 말이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고 알아주지 않는
엄마의 삶은 나라도 알아주지 않으면 순식간에 무기력한 삶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 같다.
아이들 모습이 지난 내 세월의 결과라고 하지만
성취감보다는 끊임없이 나는 잘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게 하는 자신 없는 마음은
어쩔 수 없는 엄마의 무게인 것 같다.
어느새 아이들은 초등학생이 되었고
점점 내 손길보다는 경제적인 지원이 더 필요해짐을 느낀다.
어쩌면 다시 취준생이 된 지금부터가
엄마가 아닌 나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멈춰진 시간을 배움으로 채워나갈 것이다.
배우지 않고는 그 어떤 자리도 나에겐 총 없이 나선 전쟁터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신랑에게 혼자만의 여행을 다녀오도록 선물해 주고
일하는 고생을 충분히 알아줬던 것처럼,
이젠 나에게
그런 너그러움을 베풀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복학해서 남들보다 2년 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그때처럼
지금도 어쩌면 늦은 시작일지 모르나
다시 시작해 볼 생각이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찾아가며
배우고 싶었던 공부도 다시 시작해서
나에게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할 시간을 주고 싶다.
내가 선택한 길을 가야
멈춰지지 않고 한 발씩 더디더라도
나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이기적이라 보는 시선은
나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내가 나보다 소중히 여겨왔던 나의 가족만큼
나 또한 소중히 여겨줘야 한다는 걸 이젠 안다.
나에겐 내 삶도 이젠 너무 소중해졌기에
좋아하는 글을 쓰고, 책을 읽고, 하고 싶었던 타로 공부도 하고, 전공교육도 다시 신졸 때처럼 차근차근 공부해 볼 생각이다.
난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고,
나부터 그런 시간을 나에게 허락하지 않으면 나는 또 기회라는 유혹의 함정에 빠져 지름길이 아닌 돌고 도는 경로이탈을 해버릴지 모른다.
내가 모든 걸 쏟았던 엄마라는 경력이
내가 가는 길에 분명히 큰 무기가 되어줄 거라 생각한다.
사람은 저마다 꽃 피워지는 때가 따로 있다.
나에게 지금은 그때를 위해 준비할 시기인 것 같다.
언젠가 꽃 피워질 나의 때를 위해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한 번 살아보려 한다.
어떠한 눈치도 보지 않고,
해야 하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쫓는 삶을
살아보자는 욕심을 내보려 한다.
그 과정이 나에게 어떤 결과를 만들어줄지는 모르겠지만 내 뜻대로 살지 못해 생기는 후회보다는 더 큰 선물을 줄거란 확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