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쿠나 Mar 05. 2022

소년의 기억 2

남자의 아주 가벼운 지난날, 아주 가벼운 이야기 2부

지금도 그렇지만, 90년대에는 3월이 되어도 여전히 추웠다. 통상 겨울을 2월까지로 셈하지만, 체감하는 겨울은 늘상 3월까지 연장되곤 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던 3월에는 옷을 여미기에 바빴고,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것도 왕왕 있던 일이다. 때때로 4월 초순까지도. 분명한 것은 90년대는 요즘보다 확실히 추웠다. 하지만 3월과 4월은 엄연히 달랐다. 겨울의 찬 기운들이 한 껏 몸을 숨겼다3월 어느 즈음부터 살살 눈치를 보다가 빼꼼히 조심스레 새어 나오는 모습이라면, 4월의 봄기운은 온 힘을 다해 스스로의 존재감을 당당하게 뿜어낸.  

추운 계절과 낯선 환경에 마주해야 했던 3월은 마치 겨울의 끝자락을 닮은 듯 학생들 마저도 신음 소리라도 새어 나올까 바짝 얼어 조심했다면, 4월은 풀어진 날씨만큼이나 가장 어린 청소년들의 마음까지 완전히 녹여 버렸다. 그렇게 생경함은 설렘으로 변하고, 낯선 환경에 방황하던 소년들의 눈동자는 예의 명랑함을 되찾고 있었다. 그야말로 봄의 신비, 시간의 신비, 생명의 신비였다.


인간은 어떻게 친해지는 걸까.


먼저 물리적 나이로 어른이 되었을 때의 내 경험을 고백해보자면, 회사에 들어가서 'ㅇㅇㅇ입니다'라고 때로는 씩씩하게 외쳐도 봤고, 어떤 때는 점잖은 고갯짓만으말을 터 보려고도 했지만 그 어떤 방식을 택하든 어색함과 무안함과 민망함, 그 언저리의 감정을 피할 수 없었다. 찰나의 시간에 주변의 모든 공기가 어색해지는 불편함을 몇 차례 마주하고 나서야 일정 부분 상대방의 다가옴을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다는 결론을 맺게 됐다. 

물론 그럴 때에도 이 편에서의 노력이나 수고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저 편의 상대방이 다가올 때에 자꾸만 내려가려는 입꼬리를 붙들기 위해 힘을 주고, 지을 수 있는 최선의 미소로 화답할 때에야 비로소 관계는 어설플지언정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물론 저 쪽에서 접근하는 이도 소주잔 한잔을 들어야 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몇 번의 짐짓 불편한 시간을 겪어내고, 저녁이면 인사불성 반말 욕지거리가 뒤엉키다가 다음날 아침이면 다시금 점잖은 도시의 사람들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기를 몇 차례. 그제야 어른들은 조금 더 편한 관계가 되지 않던가.


반면에, 소년의 때에 친구를 어떻게 사귀었던가.

어른들에게 친해질 수 있는 도구가 일반적으로 소주잔 한잔에 국한된다면, 아이들은 선택할 수 있는 무기가 참 많았다.


우선은 짜여진 대로 친해졌다. 제 아무리 대단한 인간이라 한들 자신의 힘으로 온전히 생을 살아내는 인간은 단언컨대 없다. 세상에 던져지는 조건에 기대기도 하고 반항도 해보면서 사는 것이 인생이다.

학창 시절의 반배정과 자리 배정이 이와 비슷하다.

학창 시절의 자리배치 생의 법칙, 세계의 구성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

기억을 떠올려보면 한 반의 총원은 사십 명은 조금 적고 오십 명은 조금 넉넉하다. 마흔 세명에서 마흔여덟 명, 그 중간 어느 정도가 익숙한 인원수였다.

또 하나 익숙한 건 내 번호였다.

늘 키 순으로 번호를 매기는 게 불만이었다. 유독 재수도 없어 뵈는 6번이 자주 걸렸다.

10706, 20206. 1학년 7반 6번. 그리고 2학년 2반 6번. 한 명만큼만 더 커도 7번이 될 텐데.

그렇다면 조금 운이라도 좋을까 싶었는데, 유독 6번을 자주 걸렸다. 마흔 명 조금 넘는 정원에서 여섯 번째 키. 작은놈부터 헤아렸던 건 물론이고. 창가 쪽부터 하나, 둘, 셋. 세 번째 분단 맨 앞줄 우측 자리가 매 학기 나의 시작하는 좌석이었다.

3 분단 첫째 줄에서 내가 가장 친해질 수 있는 녀석들은 3 분단 둘째 줄이다. 1 분단 다섯째 줄이나 2 분단 여섯째 줄에 앉아있는 녀석들과는 이미 신체구조부터 다르다. 오밀조밀 모여서 오밀조밀 떠들고 오밀조밀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아이들. 그게 주로 분단의 첫 번째, 두 번째 줄의 모습이다. 인간의 덩치는 중요하다. 작은 덩치의 아이가 크게 웃으면 허리가 넘어갈 것 같고, 그리도 경망스러워 보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뒷자리에 있는 녀석들과 이어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술잔을 들고 가지 않아도 술잔보다 더 효율적인 도구가 많았다. 빌릴 것도 많았고, 빌려줄 것도 많았고, 빌려주고 싶던 것도 많았다. 흔한 연필, 지우개부터 교과서, 도시락 반찬... 민망할 틈 없이 각자의 경계를 이따금씩 움푹 들어가 서로에게 다가갔던 그때. 경계는 와르르 무너지고, 무너진 경계에는 소년들의 마음이 자욱하게 쌓여갔다. 자욱하게 새카매진 목덜미로 돌아다니는 남아들의 교실은 3월 키순서와 함께 한바탕 서열정리를 하고 나면 평온함의 연속이었다.


평온함은 조용함과 동의어가 아니다. 평온함은 고요함에서 비롯하지도 않는다. 평온함의 시작은 그저 그 상태가 지속됨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반 배정, 그리고 자리배정을 마치면 아이들은 그 상태를 받아들이고 금세 평온해졌다.

늘 누군가는 싸우고, 어떤 녀석들은 말뚝을 박고 있었고, 웬놈들은 소리를 질렀지만 녀석들은 평온했다.


술잔이며 도구니, 무기니 했지만 어른과 아이의 차이는 마음에 있었음을 잘 알고 있다.

학창 시절 마음속의 장벽은 살았던 세월이 가벼운 만큼 장벽의 높이도 낮았다.

그때는 그랬다. 시끄럽지만 동시에 평온했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소년의 기억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